빛, 바람, 색상, 흔적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알고 시어로 읊을 줄 아는 이가 바로 아름다운 사람, 바로 그 사람이다. 한 없이 감성적이며, 한 없이 이성적인 존재가 또한 사람이다. 그리고 정적이며, 합리적인 사고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가 사람이다. 그러나 이처럼 철학적인 지혜자가 어느 한때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의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낯선 모습을 하고 있는 때가 있다. 어느 동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낮에는 아름다운 모습의 사람으로 그리고 밤에는 상상하기도 싫은 모습으로 변하는 그러한 연출을 하고 살아가는 두 가지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또한 사람인 것 같다.
고대 유대 사회에는 여러 계층이 살고 있었다. 토라(구약성경의 5권의 책)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바리새인들과 필사를 담당하고 율법의 범위를 확정했던 서기관들과 로마로부터 민족의 독립을 대망하며 살아가는 열심당원들 그리고 사두개인파의 사람들과 제사장들 등의 사람들이 그 당시의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중에 유대 탈무드나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계층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유대 율법에 보면 제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다. 그래서 부모는 그 사회에서 율법으로 정해진 효(孝)를 받을 권리를 부여받고 있었다. 그런데 율법을 초월하는 신앙적 전승이 있었는데 서원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삼손이라는 장사는 그의 힘이 하늘로부터 왔다. 그리고 그의 부모는 그를 주신 신(GOD)에게 그의 생을 바칠 것과 그의 머리카락에 삭도(칼)를 대지 아니할 것을 서원하게 된다. 이 서원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약속이었다. 그래서 이 서원은 율법으로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몇 가지의 예외 조항이 있었지만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부모를 마땅히 잘 섬기고 율법의 5계명에 있는 공경하는 일을 다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부모를 섬겨야할 그 재물에 대하여 “고르반”하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 고르반은 "성전에 드림"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곧 부모를 섬겨야 할 재물이 성전 재물로 드림이 되었다고 서원하면 그 재물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재물로 부모를 섬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제재를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후기 랍비들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율법의 내용 곧 부모 공경을 실현하기 위해 고르반을 취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이러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이들은 사회 지도층들이었고, 얼마든지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얼마든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가르치고 선도해야 할 율법을 요리조리 피해갈 명분들을 만들어 피해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고, 말하는 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행위에는 명분이 있었고, 정당화라는 작업 곧 율법을 초월하는 서원이란 서약을 이용하여 ‘고르반’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위가 정말로 합법적이냐 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그것을 예수께서 지적하시면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하면서 그들의 불의함을 질타하였다. 이러한 지적에 그들의 심기는 무척 불편해졌으며 기회만 있으면 눈에 가시 같은 그를 잡아 죽이려 하였다.
이러한 일은 약 이천년 전의 있었던 이야기다. 그러나 무수한 세월이 흐른 오늘날도 사람 사는 이치는 거의 매 일반인 것 같다. 최근 죽녹원(죽록원)의 명칭 문제로 시시비비가 있었는데 그 명칭을 특허출원하는 선에서 일단락 된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대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두 가지의 일 곧 위로는 신(GOD)을 잘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잘 선도하여 백성들이 행복해하는 일들을 도모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르반이란 서원제도를 이용하여 불효의 화살을 피해갔다.
민의(民意)는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설령 백성들이 우둔하고 어리석다하더라도 리더들은 그 백성들이 있기에 자신들이 있는 줄 알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야 했다. 그래서 군민들의 뜻을 모아 그 이름이 죽녹원이 되게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분명 어법이 틀렸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측의 입장도 옳고, 특허출원한 고유명사로서의 죽녹원도 맞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특허출원한 고유명사입니다'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민의를 수습하려 한다면 훗날에 시대를 풍자한 유행어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것은 고유명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