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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박환수 교수의 손자병법(43)칭기즈칸의 용기(勇氣) (1) 박환수(조선이공대 교수)
장광호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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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21  19: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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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지금 이제는 우리나라도 세계 강국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천년 영웅 칭기즈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중국의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侯傳)에는 한신(韓信)이 인용한 병법이 나온다. 함지사지이후(陷之死地而後)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致之亡地而後)에 존(存)한다. 즉, 죽을 마당에 이르러야 용기를 내서 다시 살아나게 되고 망할 경지에 이르러서야 다시 일어선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세상을 살아도 한참 많이 살아서 필자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과거 고단한 삶을 통하여 뼈저리게 느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그래도 용케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무엇보다 용기와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참다운 용기와 결심과 노력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최후 단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극복하려면 이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유발할 수 있는 동기는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함지사지이후(陷之死地而後)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致之亡地而後)에 존(存)한다는 것은 바로 이 원리를 말한 것이다.

용기는 대담함이다. 적을 눈앞에 두고도 위축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적과 내 실상을 직시하는 능력이 용기다. 인생을 살아가는 싸움에서 중요한 요소는 나(我)라고 하는 장수(將帥)다.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장수가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 손자(孫子)는 딱 5글자를 제시했다.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 이 5글자로 장수는 위로는 전쟁을 결심하고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로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여 싸워 이겨야 하는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장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하나하나가 장수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오늘은 칭기즈칸의 용(勇)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不戰而勝을 최고의 방법으로 쳤고 그 다음이 공성(攻城)으로 직접 싸움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싸워 이기라 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달랐다. 싸움에서 명예를 찾지 않고, 이기는 것에서 명예를 찾은 사람을 대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칭기즈칸을 이야기 한다. 그는 황량한 벌판에 버려졌고 배우지 못했고 오로지 살아남는 방법만을 스스로 깨우쳤다.

서양인들은 칭기즈칸을 잔인하고 포악한 정복자라고 부른다. 그는 손자의 병법을 듣거나 배우지 않았지만 위대한 전략가였고 전술가였다. 칭기즈칸이 다른 정복자보다 위대했던 것은 명예보다 철저하게 실리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했다. 적이 강할 때는 일부러 도망치면서 보석들을 땅에 떨어뜨렸다. 보석을 줍기 위해 적의 전열이 흐트러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무섭게 돌아와 공격했다. 그는 듣고, 보고, 몸으로 체험하면서 스스로 자기만의 싸우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그는 싸움을 할 때마다 새로운 전법(戰法)을 개발하고, 다음번 전투에서는 그것을 실험했다. 보완된 전법으로 완벽한 자기만의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승리해 나간 것이다.

몽골은 인적 자원도, 경제적 자원도 별로 없는 나라다. 중국이나 호라즘 제국이 몇 십만에서 몇 백만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 때 몽골은 10만이 조금 넘는 병력으로 전 세계를 제패했다. 국가의 지도자 한 사람의 탁월한 영도력이 국가의 불한 점을 극복하고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도대체 몽골의 위대한 지도자 칭기즈칸은 누구인가?

영화 칭기즈칸의 필름을 다시 돌리면서 그의 일생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칭기즈칸은 몽골족 한 부족의 부족장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독살 당한 아버지의 부족을 다시 규합하고 칸으로 올라서기까지 그는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그의 어릴 시절 이름은 테무친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친척들마저 테무친과 그 가족들을 저버렸다. 그의 가문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그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다른 부족들을 피해 끝없이 도망치며 방랑의 시절을 보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고 말았을 험난한 삶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기 부족을 부흥시켜 몽골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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