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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환수 교수의 손자병법(36)세상살이는 기 싸움의 연속이다
장광호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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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14  18: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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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주말 안방극장을 차지해 온 ‘넝굴(덩굴) 채 굴러 온 당신’이 끝났다. TV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넝굴당’은 오늘을 사는 한국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함께 울고 웃으며 싸우고 화해하며 반년을 살았다.

넝굴당의 무엇이 이렇게 평범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세상사는 게 다 그렇듯이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주는 연기자가 바로 나라는 생각 아니었을까.
시어머니에게 당하고 살았더니 이번에는 똑똑한 며느리를 만나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 시대의 어머니들, 그리고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절대 시집살이는 못하겠다는 이 시대의 며느리들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 아닐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기면 살고 지면 고달프다. 잡초도 성장이 늦으면 햇빛을 못 받아 죽는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근본적으로 지배를 당하기보다는 지배를 하고 끌려 다니는 삶보다 이끌고 사는 세상을 살고자 한다. 이렇듯 우리는 세상을 산다는 것은 나의 기를 세우고 상대방의 기를 꺾는 그런 기 싸움 속에서 기를 다스리고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세상사는 어려움은 기를 다스리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손자는 군쟁편에서 기를 다스리는 방법을 이렇게 말했다. 朝氣銳 晝氣惰 暮氣歸 故善用兵者 避其銳氣 擊其惰歸 此治氣者也라 했다. 아침의 기세는 예리하며, 낮의 기세는 게을러지고, 저녁의 기세는 돌아갈 생각을 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굳은 의지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벌일 때는 기본적으로 기가 살아있는 아침과 같은 적은 공격하지 말고, 서로의 기가 팽팽한 낮과 같은 상태에서는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구상하고 있다가 기가 쇠약한 저녁과 같은 적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세상사는 것 모두가 이런 기 싸움의 연속인 것 같다. 경쟁에서 이겨야 승진도 하고 사업권도 따내고 물건도 팔 수 있다. 아침과 같은 강한 상대에 막혀 좌절도 맛보고 기가 약한 나를 키우기 위해 억척같이 살아 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황혼과 함께 有限하듯 돌이켜 보면 덧없는 것임에도 오늘 아침 나는 여전히 기 싸움을 하러 나간다.

중국을 제패한 모택동은 이런 기 싸움을 잘했던 인물이다. 국민당의 장개석에 밀려 하염없이 도망만 다니던 그가 어느 날 전세를 역전하면서 파죽지세로 중국을 제패하고 장개석의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을 평정한다.

敵進我退 敵退我追 敵駐我擾 敵疲我打 적이 진격하면 퇴각하고 적이 퇴각하면 아군은 추격한다. 적이 주둔지에 머무르면 쉬지 못하게 괴롭히고 적이 피로해지면 공격한다는 그 유명한 모택동의 16자 전법이다.

손자는 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此治力者也라 했다. 나는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고 적은 멀리서 오게 하여 피곤하게 만들고, 아군은 편하게 쉬면서 적군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고, 아군은 잘 먹으면서 적군은 못 먹게 하는 것은 곧 힘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강한 적과 싸울 때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정면대결을 피하여야 하고 적을 피로하게 만든 다음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는 모택동이니 당연히 손자의 영향을 받아 저런 16자 전법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수군의 대표적 장수는 이순신과 원균이다. 두 분 다 용감하고 지략 있는 장수였지만 하늘의 기를 전쟁에 이용하는 계책에는 차이가 있었다. 1592년 7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의 수군을 대파한다. 한산도 대첩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이 지형과 조류, 날씨 등을 전술과 전략에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불리한 상황에서는 결코 전투를 벌이지 않았고, 기가 약한 상태의 무모한 싸움은 상대의 기를 역이용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은 와카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의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학이 날개를 펼치듯이 적을 좌우로 포위하면서 공격을 가하는 전법)으로 대파했다. 다음날 안골포(현 진해)에 도착한 구키 요시다카가 이끄는 일본 전함은 바람이 강하게 불자 공격하지 않고 온천량에 정박했다. 조선군은 날씨가 나쁘면 전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쉰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예상과 달리 이순신은 기습적인 공격을 가해 일본수군을 궤멸시켰다. 일본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조선의 화력에 진 것이 아니고 날씨와 조류와 지형을 철저히 이용한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에 졌다고 한다.

이순신을 모함하여 해군지휘권을 박탈한 일본군은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키면서 600척의 대 선단으로 재차 공격해 왔다. 이번에는 소규모의 선단으로 공격한 후 도망치는 ‘히트앤드런’ 작전을 구사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본수군의 공격에 지쳐 있던 조선수군은 심한 풍랑이 겹치자 완전히 녹아웃(knockout) 됐다. 그럼에도 당시의 조선 수군을 이끈 장수 원균은 지친 부하들을 이끌고 무모하게 공격을 했다. 결국 대패하여 겨우 12척만 살아남았고 패장 원균도 전사하고 말았다. 승리의 대첩과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쟁은 무기가 사용되지만 결국 그 무기를 사용하는 인간이 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기도 중요하지만 병사 하나하나의 기가 모여 큰 기를 이룰 때 승리한다. “나는 이 바다에 수많은 부하와 백성을 묻었다. 누구 하나 아깝지 않은 목숨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목숨과 바꿔서라도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노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다. 전쟁에서 부하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정성이 없이는 함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킬 수 없다. 그리고 승리하기도 어렵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리더십 한 가운데에는 부하를 사랑하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갈등 속에 있던 두 사람의 관계가 하루 한 가지씩 칭찬하는 삶으로 바뀌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듯, 오늘 새로운 방법으로 기를 세우고 또 그렇게 자신의 삶을 이어갔을 때 결국 나는 이기는 삶을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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