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세상밖으로 나가기에 너무 부족함이 많고 준비돼 있지 않은데.... 좀더 내공을 쌓아 스스로 부족하고 어색함이 없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얼굴을 내밀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마음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열정과 혼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더 열심히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한지공예와 지호공예가로 지역에 잘 알려진 김미선(44)씨.
창평 면소재지 중앙로 우체국 앞에 위치한 그녀의 작업공방 ‘금하당’을 찾아간 기자에게 던진 그의 첫마디였다. 아울러 지난 몇 달 전 취재요청에 응하지 못했던 게 바로 그런 이유였다면서 조심스럽게 미안함을 표현했다.

지호공예가 김미선씨는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한지공예에 입문했고 나아가 지호공예까지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유명 화장품 회사 직장인으로 12년째 근무중이던 어느날 知人의 집에 놀러갔다가 한지(韓紙)로 만든 휴지케이스를 발견하고 ‘너무 예쁘다’ 는 생각이 ‘나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취미생활로 이어졌고 곧바로 그 생각을 보다 전문적인 실천으로 옮겼던 게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취미로 배웠고, 배울수록 그 깊이를 더하고 싶어 여성회관 등의 무료강습에서 더 나아가 전문가에게 사사 받기까지 남다른 열정으로 한지공예를 좇다보니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 그 자신도 아마추어가 아닌, 남들이 모두 인정하는 한지공예가 이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한지공예에 한창 빠져 열심히 배우던 중, 여성회관 등에서 무료로 쉽게 배우는 것은 그저 규방의 그런저런 소품이나 만드는 수준에서 더 발전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조금 비싼 수업료를 내더라도 제대로 한번 배워야 겠다는 생각으로 한지공예 전문가를 찾아 몰입을 했죠. 한지공예의 깊이를 알아야 정말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였죠. 그래서 더 배워야 겠다는 일념으로 전문가에게 개인교습을 받는 한편 호남대학 디자인과에 등록하고 공예분야(섬유 한지)를 본격적으로 전공했어요”

김미선씨의 한지공예에 대한 열정과 자긍심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단순한 취미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한지공예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소양, 그리고 보다 다양하고 진보된 기술과 기법 등을 통해 전문가적 입장으로 韓紙를 만나고자 했던 것이다.
한지공예를 접하고 시작한 첫 계기야 어찌됐든 현재의 김미선씨는 지역뿐아니라 광주 근동에서는 이제 꽤 잘 알려진 한지공예, 지호공예 작가 이자 선생님으로 통하고 있다.

김미선씨는 현재 창평 그의 작업공방 ‘금하당’에서 창작활동은 물론 수강생들에게 한지공예를 전수하고 있다. 전문가반, 창업반 교육은 물론이고 광주의 여러 여성회관 이나 복지문화회관 같은 곳에 출강하기도 하고 학교나 어린이집 아이들의 단체체험도 자주 진행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죽향문화체험마을에서 주말이면 관광객과 학생들을 위해 한지공예체험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있다. 죽향마을 한옥체험관 각 방마다 비치돼 있는 한지공예 작품인 ‘금성산성(스탠드燈)’ 등이 모두 그가 만든 것들이다.

한지공예, 인테리어분야 접목 가능성 높아
고급벽지 및 벽면 입체디자인 향후 각광 받을 것
담양에 한지체험관, 한지박물관 건립 꼭 필요

“현재 한지를 쓰는 벽지분야에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일명 ‘포인트벽지’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한지에 황토나 갯벌흙을 염색해서 고유의 독특한 한지벽지를 만드는 것이죠. 이 포인트 벽지를 이용해 아파트나 가정에서 ‘나만의 공간’을 연출하는 등 일반 벽지로 사용해도 되지만 호텔이나 전시공간, 또는 공공시설 등에 한지벽지를 활용,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인테리어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대단히 각광을 받는 내장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건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한지체험관 또는 한지박물관을 지역에 건립, 운영하는 게 가장 바라고 있는 소망이자 꿈이다. 담양은 ‘종이’와 관련된 유래가 밀접한 것도 그가 담양에 한지박물관 같은 것을 지으려고 하는 이유중 하나이다.

그는 “담양읍 지침리(紙砧里)만 해도 옛날 우리 조상들이 종이와 관련한 일을 하던 곳이여서 지명이 붙은 것이고 대덕 운산마을도 그와 유사한 역사적 유래가 있으니 담양에는 반드시 종이와 관련된 상징적 전시관이나 박물관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김미선씨는 훗날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작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만드는 한지공예 작품은 주로 주문을 받아 판매도 많이 하고 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팔지 않고 하나 둘씩 모아두고 있다. 나중에 한지공예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서이다.

한지공예 중에서 가장 백미로 꼽히는 것이 바로 지호공예(紙戶工藝).
김미선씨는 이런 한지공예 중에서도 지호공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작업에 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호공예로 완성한 작품은 더욱 소중하게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작업실을 가득 메운 여러종류의 한지,지호공예 작품과 집에 보관중인 작품만 200여점이 넘는다고 한다. 이중 각종 공예대전이나 미술대전에서 수상한 작품만 100여점이 넘는다고 하니 그가 만드는 한지공예품의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가늠할 수 있겠다.

한지공예는 색지공예, 지승공예, 지장공예, 후지공예 등 여러형태로 나뉜다.
그중 지호공예는 쓰다버린 종이나 글씨 연습을 한 학습용 휴지, 파지 등을 잘게 찢어 물에 풀어 녹인 다음 밀풀이나 찹쌀풀을 섞어 반죽하면 끈기있는 종이죽이 된다. 이것을 만들고자 하는 그릇 골격에 조금씩 이겨 붙인다. 말리고 덧붙이기를 반복하면 딱딱하게 굳는데 마지막으로 골조를 떼어내면 그릇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취향에 따라 바탕에 색지를 바르고 무늬를 장식하여 호화롭게 꾸미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옻칠을 하여 마무리 하는데 이 때 들기름이나 콩기름을 먹여서 충해를 막고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예로부터 지호공예는 주로 반짓고리, 과반, 상자, 상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이 기법을 자주 썼고 그릇이 귀한 농가에서는 함과 함지, 표주박 등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닥종이 인형, 종이탈 등도 일부 지호기법이 활용된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가 고스란히 담긴 한지를 이용한 생활소품들을 만드는 이런 소소한 작업들이 현대에 와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 계승되면서 실생활속 예술의 한 분야로 소중하게 자리잡게 된 것은 어쩌면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정말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 생활속에서 그 쓰임새로만 따지자면, 그리 필요하지도 않았고 소중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던 그저그런 종이 조각들이 한지공예가들의 손을 거치고, 김미선씨의 손을 거치면 아름다운 변신을 통해 아주 품격 높은 예술품으로 탄생한다.

지호공예가 김미선씨가 만드는 다양한 형태의 장롱, 찻상, 서랍장, 화장대는 물론 심지어 간단한 휴지케이스라 할지라도 그의 공예품들은 단지 일상에서 쓰이는 생활소품이나 물건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만큼 작업 하나하나, 작품 한점한점에 쓸 수 있는 모든 氣와 열정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그녀만의 긍지와 자존심까지 소중한 재료의 하나로 사용, 작품을 완성한다는 일념으로 작업에 임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의 손길을 거친 지호공예품에는 뭔가다른 열정과 혼, 그리고 정지된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살아 숨쉬는 어떤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미선씨는 여러차례 회원전 및 그룹전을 가진 바 있으며. 1년에 꼭 한번은 담양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국제미술대전 금상, 한국종이공예공무대전 금상, 한국현대미술대전 우수상,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상, 전남미술대전 특선, 광주시미술대전 입상 등 국내 유명 공예대전에서 100여차례의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전통공예문화연구회장, 전라남도공예조합원, 혜림복지재단 지호/한지공예 강사, 문화예술지원강사, 대덕면주민자치회 한지공예 강사로 활동중이다.

그가 창평 중앙통에 작은 가게를 얻어 공방으로 쓰고 있는 작업실의 이름 ‘금하당(琴荷堂)’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거문고의 깊은 음률이 널리 퍼져나가듯 그런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라는 의미로 잘 아는 스님이 지어주신 堂號”라고 답했다.
금하당의 뜻과 의미처럼 앞으로 그의 창작활동과 한지공예 작품들이 지역을 넘어 그 외연을 크게 넓혀서 모든이들에게 사랑받고 깊은 감동을 주는 예술로 승화되길 기대해 본다.
/ 장광호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