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석(강빛마을 추진위원장)

얼마전 전남대학교가 임권택 영화감독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자리에 초대장을 받았다. 세계적인 감독이 전라도 사람인데, 이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드린다고 하니, 유쾌한 일이 아닌가?

다른 일들을 젖히고 참석하였는데, 보람이 컸다.
유명인사와 자리를 함께 했으니 그 자체가 보람일 것이다. 그런데 나를 정말 뿌듯하게 한 것은 김윤수 총장과 임권택 감독의 인사말이었다. 김 총장의 인사말은 축사이고, 임 감독의 인사말은 답사의 성격이었는데, 둘 다 멋이 있으면서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김 총장은 미리 준비해온 꽤 긴 인사말을 통해서 임권택 감독의 예술세계를 다양한 측면으로 깊이 있게 천착하였다. 훌륭한 인사말로 김 총장은 나를 포함한 다수의 오찬 참석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임 감독의 부인도 지금까지 축하인사를 받는 자리가 많았지만 오늘처럼 깊은 이해가 담긴 축사는 처음이라며 고마워했다.

그런데 내겐 뒤늦게 울려온 또 다른, 더 깊은 감동이 있었다. 임 감독이 약간 어눌하게, 길지 않게 한 인사말의 두 가지 핵심이 귀로의 내 마음에 자꾸 되새김질 되었다.
하나는 고향을 팔아먹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는 자평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화를 가지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데, 젊어서는 거짓말도 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거짓말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었다.

‘고향’과 ‘리얼리즘’이라는 두 마디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종합적으로 그려 보인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렇다. 임 감독의 인사말씀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간결하게 종합한 한편의 작품이었고, 김 총장의 인사말씀은 이를 심층분석한 해설이었다. 두 분의 말씀으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쓴 시간의 값을 보상받고도 남아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