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공예가 김정행(여,68)을 만난 첫 느낌은, 그녀가 3년의 짧은 경력임에도 왠지 모르게 아주 오래전부터 전통 한지공예를 전승해 온 장인으로 생각되어졌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것이 김정행은 젊어서부터 전통한복, 수예, 바느질 등에 타고난 손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담양에 터를 잡은 이래 처음 규방공예를 시작했고 나름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이름이 알려지면서 뒤이어 한지공예를 접하게 된 것이 지금은 숨길 수 없는 그의 타고난 손재주 탓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공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다.

한지공예가 김정행은 68세라는 적지않은 나이에 규방공예,한지공예 사범증(일종의 교육전문 자격증)을 가지고 담양과 광주의 주민복지회관을 오가며 작품활동과 함께 수강생들에게 한지공예를 가르치면서 전문강사로 왕성하게 활동중인 지역내 몇 안되는 ‘실버파워’ 중 한사람이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게 그녀의 고향은 서울이었다. 담양은 딸 내외를 따라 잠깐 내려왔다가 결국 서울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말투에서 느껴지는 표준어가 여전히 서울말씨였다.

“10년전, 딸과 사위를 따라 생면부지의 담양땅에 내려와 타향살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건만 벌써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러버렸어요” “둘 다 교직에 있는 딸-사위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봐주러 한 일년 공기좋은 시골에서 쉬었다 갈 생각으로 담양에 왔는데,,,, 손주들 학교가고 난 뒤 뭔가 할 일을 찾아 취미로 시작한 규방공예, 한지공예에 꽤 재미를 붙였고 손재주도 있었던지 지금은 전문강사,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이곳 생활이 너무 좋아서 지금은 아예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담양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김정행이 만들어내는 한지공예 작품은 전국의 유명 공예대전에서 여러차례 입선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2년 인천에서 열린 전국공예대전에서 특상을 받았고, 2008년엔 전북김제에서 열린 황실공예대전에 입선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또 지난해에는 전주에서 열린 옹골대전에서 입선하는 등 출품하는 대회때마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예대전 때마다 입선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막내딸 시집 보낼 때 한지공예로 예단장을 만들어 선물한 것이 가장 보람있고 좋은 작업이었다” 는 그녀는 “앞으로 예단장, 서랍장, 반닫이 등 전통 한지공예 작품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램을 전했다.

한지공예는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형태를 먼저 갖추는 골절조립작업부터 시작해 문양붙이기-한지붙이기-건조작업(15일가량)-탈색-마감재채색 단계 등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화려한 색상의 천연한지를 사용해 작업하는 오색한지공예가 있고, 검정색 한지를 작품에 바르고 탈색시켜가면서 작품을 완성해가는 古色한지공예가 있는데 김정행의 작업이 주로 이 古色 한지공예 이다.

예단장, 식탁, 좌탁자, 찻상, 귀함지박, 미니문갑, 쌀독, 명함케이스, 화병받침대 외에 휴지케이스, 스탠드 장식 등 한지를 일일이 찢어 붙이는 꽃그림 공예작품 등이 그녀가 주로 만들어내는 한지공예 작품들이다. 아기자기한 아이들 돌 주머니, 노리개나 보석을 담는 비단주머니 등을 만드는 규방공예도 그녀가 아주 잘 만들고 좋아하는 작업이다.

“한지공예의 장점은 만들지 못하는 게 없다는 점이예요. 형태가 어떤 것이든 모든 장을 다 만들 수 있죠. 게다가 전통미가 흐르는 품위와 품격이 느껴지는 공예품 이다 보니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예요. 그래서 배우려는 사람도 꾸준하고 배워두면 취미생활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가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하지만 대부분 여성이나 주부들 위주로 관심을 갖다보니 여건상 마땅한 작업실도 없이 집이나 공방 한켠에서 조금조금 작품하는 게 현실이다보니 좋은 작품들을 전시판매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불편이 많은 실정이죠”

그녀 역시 좀 더 큰 작업실과 함께 지금껏 만들어 온 작품들을 상시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와 판매공간을 갖는 게 앞으로의 소망이다.

한지공예가 김정행은 현재 수북면사무소 주민복지회관, 수북초교 및 수북중학교에서 주민들과 학부모들에게 한지공예를 가르치고 있다. 광주시 삼각동 주민복지회관과 평생교육원 등에 출장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교직에 있는 사위는 대전면 소재 한빛고 선생님으로, 그리고 딸은 광주 금호고 선생님으로 근무중이라고 한다. 손주들은 수북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에 각 하나씩, 그리고 수북중학교에 하나까지 모두 3명인데, 모두들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서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딸 내외와 손주들과 함께 성암야영장을 지척에 두고 있는 수북면 대방리 산 기슭에 터를 잡고 전원생활을 하고있다. 담양에 살고 있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처음 담양왔을땐 시골에서 어찌 살까 걱정도 했는데 지금은 정말 잘 내려왔다고 생각해요” 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장광호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