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다문화 가정의 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 뿐 아니라 세계화의 추세로 글로벌화의 물결이 ‘어느 분야나 어느 곳이나’를 가리지 않고 지구촌 곳곳에 밀어 닥치고 있다.

민족간의 ‘융합’이 바야흐로 ‘세계는 하나’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를 고어사전에서나 찾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제는 다문화 가정하면 이주여성을 먼저 생각하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정략적으로 들어 온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특히 동남아 여성들이 대부분인 이들을 돈주고 사 온다는 그릇된 인식은 하루속히 불식시켜야 할 우리의 부끄러운 오만과 편견일 뿐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우리사회의 덜 성숙된 차별인식과 냉내 혹은 조소 속에서도 꿋꿋이 우리문화를 익혀가며 사랑을 꽃피우고 행복을 가꿔가는 담양의 다문화 가정을 찾아 이국에서 가꾸는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기자가 담양읍에서 태국 전통 맛사지숖을 운영하며 이국에서의 자활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태국 이주여성 렉씨(37세ㆍ담양읍 학동)를 만난 것은 지난 15일.

그녀의 본 이름은 츄엔촘마쏭이다. 한국인들이 발음을 어려워 해 닉네임인 ‘렉’으로 통한다.

렉씨는 마침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한국어 공부시간이라 짬을 낼 수 있다”며 꽤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렉씨의 친정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수백킬로 떨어진 치앙마이 인근이다. 농촌에서 자란 그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용실을 운영하던 중 종교 인연으로 2001년 남편 김동영(47세)씨를 만났다.

“한국에 시집온지 8년째예요. 평소 한국에 대한 동경심과 관심이 많았는데 친구 한명이 먼저 국제결혼으로 한국 남성을 만나 이주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냈지요”

렉씨가 사진으로 본 김씨는 한눈에 홀딱 반할 정도의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로 그해 12월 김씨를 따라 무작정 담양으로 시집왔다.

하지만 한국살이는 쉽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고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을뿐더러 문화적 차이는 물론 못사는 나라 이주여성이라는 편견을 극복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렉씨가 둘째 아이 은지(4세)를 출산할 즈음 남편 김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그전까지 경제적으로 크게 궁핍하진 않았지만 병원 치료비 등으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해 급기야는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가정형편이 악화됐다. 게다가 90세가 넘은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악착같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식당, 공장 등을 찾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한국말이 서툴고 외국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 심지어 임금을 떼이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렉씨는 죽어라 고생해도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굳은 결심을 하게된다. 고국에 있을때 미용실을 운영하며 익혀뒀던 타이 맛사지(Thai Massage)를 정통으로 습득해 담양에 태국 전통 맛사지숍을 오픈, 경제적 자립기반을 다지기로 했다.

그녀는 홀홀단신 고국으로 돌아가 각고의 노력 끝에 1년과정의 태국 국가에서 인증하는 지압지술사 자격을 취득하고 금년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렉씨에게 맛사지 시술을 받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투절한 직업의식과 성실성에 감탄한다.

가정주부 박모(48세)씨는 “평소 몸이 잘 뭉치고 소화가 않되 소문을 듣고 렉씨에게 맛사지 시술을 받았는데 효과가 큰 것 같다”며 “고된 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렉씨가 가장 마음아파 하는 것은 그녀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두딸 은솔(7세)이와 은지(4세).

“일 때문이긴 하지만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애들을 충분히 돌볼 수 없어 너무 미안할 뿐입니다.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녀는 또 “한국에 시집온지 8년만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지난 4일 주민등록을 마쳤다”며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한국사람이 된 것 같다”고 환한 미소로 답했다. / 김관석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