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우내 빚어 저장해 둔 된장, 매실고추장, 청국장. 지금도 익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창평 쌀엿 만들기 마지막 단계인 바람넣기 작업에 한창인 동네 할머니들

조진순(왼쪽)씨가 완성된 쌀엿을 고르고 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창평 쌀엿, 구멍이 쑹쑹 뚫린 것이 바삭하고 맛있다.

조진순 가마솥식품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는 쌀엿, 조청, 된장, 청국장, 매실고추장

담양 창평은 전통 엿마을이다.

면소재지인 삼천리 창평파출소 안쪽에서 넓은 들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따라 가다보면 중간 중간 창평전통쌀엿이라 쓰인 작은 간판들을 만나게 된다.

20여 가정집에서 조상대대로 물려온 엿기술을 바탕으로 전통 쌀엿을 빚어 오고 있는 것이다.

남도의 관혼상제에는 엿이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집집마다 엿을 만드는 비법이 전해지게 된 것이리라.

돌담길을 벗어나 논 가운데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 조금 더 가다보면 물 맑고 공기 좋은 오강리가 나오고 이곳 월봉산 줄기 끄트머리 양산마을에서 옛 전통방법 그대로 쌀엿과 조청을 만들고 있는 조진순 가마솥식품도 그 중 한 곳이다.

조진순씨가 가마솥식품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전통식품 사업에 뛰어 든 것은 불과 3~4년전.

십수년 전부터 옛 전통방식대로 쌀엿 조청, 된장, 청국장 등을 만들어 도회지에 나가 사는 가족, 친지들에게 나누어 준게 계기가 됐다.

먹어 보고 맛에 반한 도심 이웃들의 성화에 못이겨 한집 두집 만들어 보낸게 입소문을 타고 퍼져 주문량이 커지게 되자 기왕이면 제대로 하면 해보자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미 명성이 높은 쌀엿은 물론이고 작년 겨우 내내 빚어낸 옛날식 된장, 청국장, 매실고추장은 올해도 새해를 맞이하기가 바쁘게 동이 나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찹쌀, 콩, 매실 등 모든 원재료를 본인이 직접 가꾸고 거두어 쓰다보니 만드는 양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현재로서는 가내수공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자못 크다.

그래서 조씨의 한가지 소망은 집마당을 조금 더 넓혀 항아리를 들이고 지금 보다 훨씬 많은 양의 된장, 고추장을 비축해 두는 것이다.

물론 자금이 넉넉치 않다보니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돈도 더 모으게 되고 마을 어르신들이 많이 도와주시니 “조만간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며 첫인상만큼이나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을이라 해봤자 고작 20여호.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 도회지로 모두 떠나고 할아버지, 할머니 4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이러다 보니 모두가 한가족과 진배없다.

올해 나이 54세인 조명순씨는 동네에서 가장 젊은 새댁으로 통한다.

기자가 대뜸 “엿 만드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다” 청하자 마침 오늘 저녁이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엿을 빚는 날이란다.

엿 만들기는 지금이 제철.

흑보리 엿기름을 사용해 쌀을 삭이고 가마솥을 걸어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고 고아서 쌀엿 조청을 만드는 것은 가을걷이가 끝나자 마자 진작 해두었다.

그리고 이때처럼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면 만들어 놓은 쌀엿을 달여 붉고 진한 갱엿을 만든다.

그다음 갱엿을 두사람이 잡아 당겨 하얀 가락엿으로 만들어 낸다.

이런 복잡하고 더딘 과정을 거치게 되는 창평 쌀엿은 완성되기까지 어느 한단계만 놓쳐도 제대로 맛을 내기가 어렵단다.

“아따 기자양반, 사진만 찍지 말고 이 엿이나 한번 잡솨 보소. 사내 힘쓰는데 요만한게 있는 감”

바람넣기(쌀엿맛들기 마지막 과정)에 한창이던 동네 할머니들 걸죽한 입심에 어느덧 작업분위기는 무르익고 불쑥 내민 쌀엿 하나를 기자 입에 물렸다.

구멍이 쑹쑹 뚤린 것이 바삭하고 맛있는 엿이라며....

치아에 달라붙지 않고 100% 쌀에서 나온 단맛이라 기분좋게 계속 먹힌다.

벌써 시계바늘은 자정을 가르키고 엿을 늘리고 붙이고 바람넣기에 지칠 법도 하건만 지금 기세로 라면 밤을 지새울 작정이다.

옛날식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에선 붉고 진한 갱엿이 하얀 김을 내뿜고 밤새 내리는 하얀눈과 만나 앙상불을 이룬다.

기자가 집을 나서면서 조명순씨에게 “왜 창평 쌀엿인가?”라고 묻자,

“창평 쌀엿은 다른 엿에 비해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힘이 든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제조 기법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맛을 지켜가는 것은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한 자존심과 장인정신이 아니겠냐”며 수줍어 말했다. / 김관석 記者 kskim325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