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시설은 물론 안전시설까지 全無

40년째 한자리…도시개발 저해에 미관까지 해쳐

1971년 현재 자리에 들어선 담양공용정류장. 부동산 재벌로 소문난 김모씨 소유로 돼 있는 이 터미널은 벌써 4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쇠락해가는 담양의 한 단면을 대변하는듯한 이 터미널은 터미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외에도 갖가지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어 개선과 변화의 조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공룡신세


터미널이 이전한다면 주변 상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이렇듯 담양 돈줄이 가장 크게 움직이는 곳이면서도 터미널과 그 주변상가는 도저히 1년 예산이 2200억이나 하는 郡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담양풍물을 담은 액자나 관광지도가 그려진 대형 구조물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걸려있듯 덩그러니 세워져 있어 ‘그래도 이곳이 완전히 포기된 곳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먼지 덩어리 굴러다니는 게시대에 어디가 입구인지 출구인지 모를 구조에다 어두컴컴한 조명아래 파리채로 파리를 쫒고 있는 모습이란 가히 보는 사람마저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이다. 비가림막은 2005년 폭설로 없어진 후 여태까지 그대로이며 사람들이 왕래해야 하는 통로에는 중국산 멸치좌판이 판을 펼쳐놓고 ‘야매’ 성업 중이다.
경관조경으로 심어놓은 대나무는 손길이 미치지 않아 삐죽삐죽 자라난 모습이 마치 ‘귀곡산장’을 연상시키고 ‘운전자쉼터’라고 만들어진 구조물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도 승객들 잠시나마 엉덩이 붙일 곳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설마 닭장에 횃대처럼 생긴 저 쇳덩이를 의자라 할리는 없을 것이다.
또 주변 건물과 경계가 분명치 않아 화장실 옆 사잇길로 승객들이 통행하고 있어 정류장 내 사고가 항상 도사리고 있으며 화장실은 가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아니 꼭 화장실이라 하기보다 ‘화장실 냄새나는 청소용구 보관실’이라하면 정확한 표현이다.
터미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매표창구는 한쪽 구석에 60년대 극장매표구를 연상시키며 자리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 탓에 매표구직원의 친절이란 아예 포기하게 하는 분위기이다. 그래도 혹시 하고 말을 건네 보니 툭 쏘는 말솜씨가 ‘국가대표급’이다.
그래서일까 터미널 이용객들의 얼굴이 모두 하나같이 무표정한데다 불만에 찬 모습이다.

◇어느 관광객의 ‘뜨거운 가르침’


다음 글은 담양군사이트 ‘불편사항신고’란에 올라온 글을 요약한 것이다. 일방 당사자의 주장이지만 현재 터미널 상황을 대입해 보면 신빙성이 높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글을 올린 강모씨는 “지난 7월 13일~15일까지 해남에서부터 담양까지 도보로 여행을 했고 상경을 위한 마지막 거점으로 담양버스공용정류장을 택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강모씨는 여행을 마치는 시점에 불행한 일을 겪었다. 치마 입은 여성들을 상대로 치마 밑을 몰래 촬영하는 이른바 ‘도촬’을 저지르는 한 남자(20세 정도)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녀는 처음 긴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무시했으나 자신 이외에 다른 여성들에게도 계속 ‘도촬’을 시도하자 “이 남자애가 자꾸 사진 찍으니까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라고 말하고 그 남자애를 혼내주려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니가 봤어? xx야! xx야!”라며 오히려 크게 반항했다. 그래도 그녀는 지지 않고 “그렇게 억울하면 경찰한테 얘기할래? 사람 많은 데서 뺨 맞고 싶어?”라고 했고 반항이 계속 심해지자 경찰에 신고하려 했으나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지고 없었다.
때문에 매표구 아주머니에게 전화통화를 요청했으나 매구표에서 돌아온 답은 “우리는 받는 전화밖에 안 되고 핸드폰도 없다(당시 매표구 안에는 모두 3명이 있었다)”였다. 결국 “버스기사에게서 휴대폰을 빌려 경찰에 신고하자 그 남자는 욕을 퍼부으며 도망갔다”고 글은 적고 있다.
일을 당한 강모씨는 “다시 매표구에 가서 그 남자애가 자주 오는 사람인지를 묻자 기다리라고만 하고 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그런 후 다른 아주머니가 와서 ‘뭐 그런 일에 경찰은 부르느냐’ ‘일이 커지면 누가 책임지냐’며 했고 ‘정 급하면 공중전화를 이용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따졌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녀는 “CCTV도 없고 보안도 없고 재깍 신고도 해주는 것도 아니고”라고 하며 “위험에 노출된 여행객들은 어떡해야하나”며 당시의 상황을 서술했다.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달랬다는 그녀는 “이번 일은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다”며 담양을 원망했다.

◇터미널 이전 공론화


한 사람의 소중한 추억을 잊지 못할 악몽으로 바꿔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두고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터미널을 담당하고 있는 郡 교통관리계는 “이 터미널은 사유재산이므로 郡 예산을 들여 지속적으로 유지, 보수, 관리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터미널 소유자와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하나 고령인데다 현재 담양에 거주하고 있지 않으며 터미널 유지에 적자를 이유로 시설 개선의 의지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10월에 터미널 소유자를 상대로 시설 개선 명령을 시달했으나 전혀 이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올해 예산을 들여 정류장 요철 노면 개선과 비가림막 설치를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A군의원도 “벌써 예전부터 터미널의 문제점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군에서 마땅히 대응책을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터미널소유자와의 불협화음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없다”며 ‘섣부른 대응’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터미널을 이전할 수 있는 군유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나 감정적 대응으로 맞서나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며 “버스업체로부터 정류장 사용료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개선돼야할 점이다”고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좀 더 파격적이다.
“터미널 주변 상가 중 상당수가 그 터미널 사장 것 같던데 터미널이 적자 난다고 해서 저렇게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렇다면 터미널이 활황을 이룰 때에는 시설이 좋았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번 기회에 어떠한 식으로든 장기계획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터미널 주변상가의 한 영업주는 “터미널이 너무 안에 있어 문제는 문제다. 게다가 주변에 병원까지 있어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혼잡이다”며 “불법 주정차에 대해서는 경찰도 손든 상태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전한다면 어디로


재단법인 국제청소년교육재단 이사장 이강열 씨(前 전남도교육감)는 현 전남도립대 위치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국(창근) 의장하고 의견 다툼이 심했다. 나는 도시발전모델을 염두에 두고 도시가 팽창할 수 있도록 지금의 담양여중 자리나 교육청 자리 쪽을 극구 추천했으나 ‘학생들이 담양에서 소비를 하게 하려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며 기어이 담양여중·고 자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현재 어떠한가. 처음 의도했던 것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대학의 위치선정이 잘 못됐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규모 시설이나 도시 발전 계획에 있어서 ‘치밀하고도 전략적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전남도립大에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311번 버스가 교정 내까지 진입해 통학을 돕고 있어 시내는 물론 대학 건너편 마을에서도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엔 “학생들이 도시 내에서 소비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현재의 위치를 선정했으나 그 의도가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터미널과 대학이 너무 멀리 떨어져 학생들이 등하교에 부담을 느끼며 따라서 학생들을 담양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버스가 교내까지 들어와야 한다”는 논리로 현재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를 살리기 위해 학교를 앉혔는데 지금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도시를 포기하는 아이러니한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는 법률적 권위를 부여 받은 행정기관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반시설이 갖춰지면서 팽창할 수도 있지만 인구의 이동 경로나 생활권의 흐름에 따라서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현재 40년간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터미널의 위치가 과연 합당한지에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식 설문조사는 아니었지만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전(移轉) 대상지 1순위는 ‘공고 앞 또는 근처’였고 거의 동수로 2순위는 ‘동산병원 건너편과 대한통운 사이’ 즉, 래인보우 아파트 옆쪽을 지목했다.
상급행정기관의 기본 도시계획과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변수가 많이 발생하리라는 점은 자명하나 조사기간 내내 주민들의 공동적인 의견은 “터미널 문제 - 이대로는 안 된다”였다.
승객의 불편을 볼모로 시장 원리를 내세우며 ‘배짱장사’를 서슴지 않고 있는 ‘터미널 소유주’ 그에 반해 주민들 눈치만 보며 끌려가고 있는 무능력한 행정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터미널 이전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서영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