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펴낸 정광모씨 "책임 집행 위해 예산실명제 해야"

- 총공사비 3백86억원을 들여 건설한 예천공항은 2003년 상반기 월 수익이 6천3백만원이다. 그런데 월 평균 전기요금이 약 3천5백만원이다. 상반기 수익이 두 달 치 전기요금에도 못 미친다.

- 문화관광부는 2006년, 한국 지역축제의 수를 1천1백76개로 집계했다. 하루에 3~4개꼴로 열리는 것이다. 매년 1백46개 축제가 열리는 경기도는 총 3백여억원을, 41개의 축제를 진행하는 전라북도는 70여억원을 쓴다. 하지만 민간주도형 축제는 33.8%에 그치고 사업비 대부분을 관주도형 축제 형태로 개최되고 있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는 시ㆍ군ㆍ구 뿐만 아니라 읍ㆍ면 단위에서도 축제가 열려 정확한 산출은 어렵지만 총 비용은 2천~3천억원대로 추산 된다”고 말한다.

- 인천시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치를 주경기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 기존의 문학경기장의 관람석이 5만여 석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2천4백88억원을 들여 건설한 문학경기장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1백11억원의 적자를 냈다. 따라서 인천시가 추진하는 주경기장 신설은 상식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인천 아시안게임 지원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탓에 ‘상식적 무리’가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위에 나열한 사례들은 최근에 출간된 예산관련 서적에서 지적된 사례들이다. 조성래 전 의원의 정책보좌관이었던 정광모씨가 예산에 대한 문제점을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라는 책을 통해 꼬집은 것이다.

정씨는 <여의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보좌관으로서 배운 4년간의 노하우가 그냥 묻혀버리는 것이 아까워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국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도 자신이 배운 경험이 아까워서다.

“국회에 들어와서 책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예산과 관련된 책은 재정학 교과서 말고는 없더군요.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엄청난 금액의 국민 예산을 심사하고, 평가한 노하우들이 모조리 그냥 사라지는구나, 이것을 정리를 한 번 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정씨는 글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으로 예산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교육 부재’를 손꼽았다. 예산이라는 것이 워낙 광범위하면서도 세세한 사업이다 보니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분석하기 힘들다는 말을 남겼다.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이 재정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상 예산을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정씨는 이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배웠다”고 표현했다. 결국 환경이 이렇다보니 정씨의 입에서 “국회에서 예산에 대한 교육이라도 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흘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셈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 노하우 책으로 엮어

그는 책을 통해 ‘예산실명제’를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예산실명제는 일정금액 이상의 예산의 경우 그 예산을 기획ㆍ추진했던 간부들의 이름과 그 예산을 심의했던 국회의원이나 상임위원들을 노출해야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굳이 법률을 고치지 않더라도 부처 내에서 지침만 된다며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예산은 공무원들이 기획하고 짜는 거니까, 그 당시 결제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의 경우 1999년 만들어진 제도인데, 현재 인천공항철도 등에 대해 엄청난 금액을 국가재정으로 물어주고 있습니다. 1999년부터 시행된 것인데 그 당시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를 누가 주도했는지 지금은 알아보기도 힘들어요. 사실 당시 예산편성과 법 개정에 주도했던 사람들이 지금 장관이 됐는지, 차관이 됐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때 과연 이걸 제대로 검토했는지 안 했는지 피드백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지금도 똑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정씨의 주장대로라면 예산의 기획ㆍ심사에 있어 보다 신중해지고 책임성이 강해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부여가 오히려 예산기획ㆍ심사를 소극적으로만 몰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정씨도 공감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소극적인) 그런 측면도 있겠죠. 모든 정책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잖아요. 그래서 잘못된 정책으로 예산을 낭비한 공무원이 있어도 처벌하기 어려운 것이고요. 그래서 결국 ‘모두의 돈’인 예산을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추적할 수 있도록, 예산을 기획하고 운용한 부처의 과장과 국장, 차관과 장관 이름을 예산사업에 붙어 다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예산실명제’야말로 훗날 그들이 장관이 되거나 선거에 출마할 때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예산정책처, 독립ㆍ중립성 유지 힘들 것"

정씨는 예산정책처의 기능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예산정책처의 경우 독립적 기구로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저는 (예산정책처가) 원천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국회예산정책처장을 국회(여당)에서 임명하고, 예산정책처 구성원 자체가 계약직 박사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행정부의 예산 사업에 대해 비판적 의견들을 내 놓으면 일단 윗선에서 제동이 들어오게 돼 있죠. 계약직인 구성원들이 그런 부담을 쉽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산이라는 것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예산정책처에서 내놓는 보고서는 무슨 박사학위 논문처럼 너무 어렵게 나옵니다. 보좌관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실제 적용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독립성과 중립적 성격을 유기하기 힘들 것이라는 정씨의 지적에 근거가 될 만한 사례들도 있다. 현재 예산정책처장인 배철호 처장 임명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배 처장의 행정부 근무 경력을 두고 “친정인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가”라며 반대했다. 그리고 배 처장의 경우 한나라당이 여당이 된 18대 국회에서 교체가 확실시 돼 예산정책처의 중립성 문제를 지적한 정씨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씨는 행정부와 국회 간 예산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정부의 경우 예산사업에 대해 연구가 시작되면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업무 매뉴얼 같은걸 내려보내서 그 형식대로 체계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는데, 국회에서는 예산심사에 관한 공식적인 매뉴얼 같은 게 없다”며 “그러다보니 국회에서는 예산이 다 만들어지고 나서 사후평가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사전 예방 기능이 없는 사후평가는 예산 감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한계

질문은 자연스럽게 국회의 예산심사 기능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예산에 대한 최종심사는 국회가 진행하는 것인데 정씨의 주장대로면 국회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국회가 예산심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국회가 상반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국가 전체의 일을 논의하고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고, 또 하나는 지역구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 두 요구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지요. 상반되는 요구를 동시 실행하다보니 결국 국회의원들이 시간이 갈수록 지역구 민원 해결 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재선, 3선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지지요. 결국 예산 심사에 들어가게 되면 지역구 이해관계 쪽으로 압도적으로 진행되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려면 민노당처럼 지역구 이해관계에서 조금 자유로운 정당들이 예산심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그분들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예산을 바라보기 때문이죠.”

이번에는 예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예산을 보텀업 방식으로 분석해 보는 게 필요합니다.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먼저 출발하는 거지요. 예를 들자면, 현재 서울시 어린이들이 아토피를 많이 앓고 있습니다. 이런 피해를 지금까진 개인이 전부 감당해 왔지요. 그러다가 올해 처음으로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사업들에 대해 예산 기획과정, 사업 금액 산정 등을 살펴보고 실효성 여부를 분석해 보는 거죠. 국민과 밀접한 문제 등을 선택해서 거기에 예산이 얼마가 배정돼 있고 하는 식으로 들여다보면 예산을 분석하기가 한결 쉬워질 겁니다.”

"쉽게 느낄 수 있는 사업부터 관심을"

정씨는 책에서 예산 사업을 14개 사례별로 나누어 설명해 놓고 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국민들 피부에 와 닿는 예산분석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총론부터 들어가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방공항문제, 방과 후 학교문제, 국제경기대회 등 국민들이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한다. 예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생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추경예산편성 조치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라고 부정적 의견을 내비췄다. 그는 이번 추경편성을 “국민 세금을 모아놓은 창고를 헐어 밥 한 숟가락씩 나눠주는 방식”이라며 “응급주사”라고 표현했다.

정씨는 “필요에 따라 ‘응급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세계잉여금의 경우 이런 식으로 쉽게 써버릴 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세계잉여금의 경우 정부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예산이다.

대부분 국가의 채무변제에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가능하면 전국민적인 토론을 거쳐 ‘이 돈을 어떻게 쓰는 게 서민과 중산층 위해 쓸 수 있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정씨는 “정부의 방안대로 국민 일인당 이십몇만원씩 나눠주면 실질적으로 경제 발전에 도움도 못되고, 아주 안 좋은 선례만 만드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씨는 언론과 국민들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언론들이 문제에요. 언론에서도 물론 예산 낭비에 관한 기사들은 간간히 나오긴 하지만 그런 기사들 대부분이 국정감사 기간이나 개별적으로 사건이 터졌을 때만 ‘반짝’ 나오는 기사들이지요.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심층ㆍ보도탐사를 해야 합니다. 예산이 ‘어렵다 어렵다’ 해도 길이 없는 게 절대 아니에요. 요즘은 정보공개청구가 잘 돼 있잖아요. 그리고 국민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국민들은 언제나 먹고 살기 바쁘다는 거 잘 압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예산에 대해 민감하지 않지요. 내 호주머니에서 세금이 빠져 나가는 것엔 참 민감한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국민들도 예산이 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세금이라는 점을 꼭 인지하시고, 지금 세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의 20%만이라도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도 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국민들의 많은 관심인 예산낭비 감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아셔야 합니다.” /여의도통신 장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