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오래된 것, 오랜 것에 대한 애착이 더욱 늘어났다. 허나 이런 나를 두고 나이가 들어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친구들은 없다. 어지러울 정도로 ‘리버럴’하고 ‘프로그레시브’한, 나의 일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 오랜 것에 대한 나의 애착은 ‘모노’에 대한 취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흑백사진과 모노드라마, 인간냄새 가득한 모노사운드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오래된 것, 오랜 것, 모노에 대한 애착은 아마도 인간이 갖는 원초적인 본능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양수와 바닷물의 염도가 같다고 한다. 바다를 동경하며 습관적으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바닷물을 보며 고향의 푸근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혼란스럽거나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습관적으로 바다를 찾는다. 최초로 나의 DNA가 결정된 곳. 동시대를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를 결정한 곳. 혼란스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오거나 주변의 일상사가 정리되지 않을 때, 바닷가에서 동심(童心)과 초심(初心)을 찾곤 한다.

'약속동산' 이어 또 하나의 제안을

여의도는 무척이나 바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7대 국회의 마감 준비가 한창이다. 의원회관 사무실은 더욱 그렇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들은 사무실을 비워줘야 하고 재선에 성공한 의원들은 새 사무실로의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에도 국회 사무처가 7억4000만원을 들여 의원실의 200만원짜리 책상과 70만원짜리 의자를 교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18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모든 집기를 바꿔야 할 판이다. 18대 국회 개원 비용을 16억원으로 잡고 있는데 탁자 교체와 도배 공사 등의 비용이 전체 예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보면 당선자 누구 하나 국민의 정치 불신이라는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절반을 넘긴 54%의 유권자가 권리위임 행위를 거부했거나 포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반쪽짜리 위임장으로 불안한 대의를 행해야 한다는, 깊은 성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맞다. 나아가 국민의 염원을 잘 살피고 약속을 목숨처럼 지키며, ‘창의적인 국회, 일하는 국회’를 솔선수범해서 만들어가겠다는 책임선언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잡혀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집기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은 꼴사납다. 따라서 무엇을 하기 위해 정치인이 되었는지, 어떠한 지향으로 의정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대국민 선언으로 18대 국회를 출발하는 것이 옳다.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들고, 행정부 예산을 심의하고, 국정감시와 통제를 하고, 대통령의 중요결정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하는, 일 잘 하는 국회가 되겠다는 사회 책임 약속이 우선이라고 본다.

필자는 지난 호에서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의원동산’을 ‘약속동산’으로 개칭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제안을 하나 더 하고자 한다.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의미 있는 전통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다.

존경하던 의원의 사무실 이어받자

그것은 바로 당선자들이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있는 사무실을 선택하여 집기 물려 쓰기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케네디 집무실이나 링컨 집무실 등을 물려받기 위한 로비가 치열하다고 한다. 사무실뿐만이 아니라 집기 전체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쓰기 위한 의원들의 로비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케네디나 링컨의 인간중심의 정신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과 민주당과 공화당을 선택했던 정치적 지향의 이유를 확실히 밝히기 위해서란다.

필자는 이러한 미국 의회의 전통을 벤치마킹하여 한국에서도 18대 국회 개원부터 하나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정립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전통들이 하나 둘씩 쌓여야만 한국 국회도 보다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럴 때 자신의 지향이나 가치와는 상관없이 양지만을 쫓아다니는 철새 정치가 사라질 것이며, 책임 정치가 정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두구육(羊頭狗肉) 하며 국민을 기만하는 거짓말 정치가 사라질 것이며, 대국민 약속을 목숨처럼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사랑받는 국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이러한 전통이 쌓여갈 때 한국 국회에서도 케네디와 링컨 같은 위대한 국회의원이 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