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4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 8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김병기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코리아 웨이-글로벌 기업 경영과 정부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글로벌화는 우리가 붙잡거나 끄거나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같은 것이다. 마치 바람 또는 물처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최근 ‘도요타 웨이’를 연상케 하는 ‘코리아 웨이’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있는 김병기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은 이 은유적 발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1991년 구 소련의 붕괴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부상과 다국적 협력체제(EU, NAFTA 등)의 확산, 세계경제의 3극체제(미국, EU, 아시아)로의 재편 등도 자연스럽게 거론됐다.
“글로벌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4가지 동인(動因)이 있다. 우선 정보통신기술과 IT산업의 발달을 들 수 있다. 반도체 칩, 컴퓨터, 이동통신 등 정보통신제품이 첨단화되고 있으며 전자상거래가 보편화되고 있다. 소비자 욕구와 행동의 글로벌화도 빼놓을 수 없다. 코카콜라, 리바이스, 나이키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가 부상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 중심의 소비가 동질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 맥도날드 햄버거가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무한경쟁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각 산업 분야에서 빅3나 톱2만 살아남게 만드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국경을 뛰어넘는 금융자본의 활발한 이동도 글로벌화를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사장은 제너럴일렉트릭(미국), 보다폰그룹(영국), 제너럴모터스(미국), 브리티시페트렐리엄(영국), 로얄더치쉘그룹(영국-네덜란드), 엑손모빌그룹(미국), 도요타모터그룹(일본) 등 세계 최고의 초일류 기업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글로벌 기업 경영의 5대 핵심 전략’을 추출해내자고 제안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핵심 사업을 선별하여 기업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여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10여년간 디지털 이동전화 부문에서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노키아는 본래 1865년 벌목공장으로 출발한 기업이다. 그러다가 고무공장, 전선제조업, 화학?가전산업 등을 인수하면서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했다. 실제로 1986년 기준으로 노키아 매출의 83%는 통신과 무관한 부문에서 창출됐다. 1990년 노키아는 일대 혁신을 단행했다. 당시 젊은 CEO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다른 사업을 철수, 매각, 분할 등의 방법으로 과감하게 정리하고 이동통신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마침내 1996년에 이르러 통신 부문 매출이 노키아 전체 매출의 90%를 상회했다.”

노키아의 성공과 코닥의 실패 비결

사실 디지털 이동전화를 1983년 최초로 개발한 회사는 ‘노키아’가 아니라 ‘모토롤라’였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은 회사의 순위까지 바꿔놓고 말았다. 이동전화 부문에서 노키아가 모토롤라를 제치고 당당하게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한 것이다. 이 분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6년 기준으로 노키아(35.2%), 모토롤라(21.9%), 삼성전자(10.7%) 순으로 되어 있다.
“전략적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도 중요하다. 현재의 생존을 위한 수익성 유지와 중장기 성장을 위한 전략 수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카메라 필름 제조로 유명한 코닥이 1975년 디지털 카메라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회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디카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코닥의 디카 개발과 출시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코닥은 일반 광학 카메라의 필름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본업과의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우려하여 디카 시장에서 철수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당시 디카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일면 타당성이 있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결정적인 실수였다.”
디카는 기존 카메라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잠재적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코닥은 이미 확보한 시장선도(Market Initiative) 지위를 유지하면서 수요를 자극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실제로 경쟁사인 캐논은 적극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시장선도 지위를 탈취했고, 한 번 선두를 빼앗긴 코닥은 니콘, 소니에게까지 추월당하는 신세가 됐다.
“지속적인 창조경영 추구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지름길 중 하나가 된다. 창조경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인데, 그 중에서도 애플의 사용자 중심 혁신은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매킨토시(1984년)와 파워북(1991년)을 선보였던 애플은 2001년 가을 ‘아이팟’이라는 새로운 휴대용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를 내놓았다. 아이팟이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던 첫 번째 이유는 디자인 혁신이었다. 기존의 제품들은 음악 재생에 더해 점점 많은 기능을 추가하면서 부가 기능만을 자랑하듯 버튼이 늘어나고 작동도 복잡해졌다. 그러나 아이팟은 50센트 동전 크기의 동그란 제어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장치가 없었다. 하지만 도리어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하며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게다가 아이팟은 무게도 상당히 가벼웠다.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적용한 성공적 사례에 속한다. 휴대전화 기능에 mp3 플레이어, 유투브를 이용한 동영상 재생, 인터넷 검색, 이메일 전송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해 2007년 최고 히트 상품의 반열에 오른 ‘아이폰’도 그런 과정을 통해 나왔음은 물론이다.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하는 일도 시급하다.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는 코카콜라를 보자. 2000년 말 기준으로 1440억 달러에 달한 코카콜라의 기업 가치 중 장부 가치는 95억 달러에 불과한 반면 브랜드 가치는 725억 달러나 됐다.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할리-데이비슨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이 기업은 시장 점유율 1위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시장에서 일정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할리족’이라는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몸에 할리-데이비슨 문신을 할 정도로 광적이다. 이를 위해서 뛰어난 제품과 서비스 능력을 갖춰야 했음은 물론이다. 브랜드 가치는 가장 중요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장부에는 계상되지 않는다. 브랜드에 대한 지출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투자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타이레놀이 소비자 사랑 받은 사연

김 사장은 브랜드를 기업 전략적 차원에서 성장시키려면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고 독립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0년대부터 브랜드 매니저를 두고 있는P&G 등 외국의 유명한 기업들은 대부분 재무담당이사(CFO)아 정보담당이사(CIO)와 동등한 직급의 브랜드담당이사(CBO)를 두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윤리경영이었다.
“1982년 미국에서 존슨앤존슨(J&J)의 주력상품인 타이레놀을 복용한 8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J&J의 예상을 깬 대응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선 J&J는 평소 시행해오던 ‘우리의 신조’라는 윤리강령에 따라 언론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타이레놀 복용을 중지할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2억4000만 달러의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전국의 타이레놀 제품 3001만개를 전격적으로 회수해서 폐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모든 조치가 미국식약청(FDA)의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시행됐다. 마침내 전 미국인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조사결과가 발표됐는데, 누군가 고의로 독극물을 주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J&J의 직접적인 잘못이 없었음에도 윤리강령에 따라 소비자를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소비자들이 자신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준 J&J에 아낌없는 신뢰와 지지로 보답함으로써 ‘위기’가 ‘기회’로 돌변한 것이다. 윤리경영의 대명사가 된 타이레놀은 지금도 J&J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효자상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의도통신 정지환 기자

김병기 사장의 이력서

▲ 서울대 철학과 졸업
▲ 서울대 행정학 석사
▲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책학 석사
▲ 제16회 행정고시 합격
▲ 재무부 기획관리실 사무관, 산업관세과장, 재정융자과장, 지역경제과장
▲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구매계약과장
▲ 재정경제원 국제금융담당관
▲ World Bank 자문관
▲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기획관리실장
▲ 대통령비서실 정책비서관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장급)
저서: <왜 우리는 AAA를 원하는가-국가신용등급과 국가경쟁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