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자국의 농업보호에 혈안이다. 최근 식량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각국들이 식량확충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튀기 시작한 국제곡물가가 아직까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밀의 경우 지난 2월말 하루 새 22%의 폭등을 기록하면서 한달 새 두 배가 튀었다. 지구촌이 농산물발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애그플레이션 먹구름에 휩싸이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식량 소비가 가장 많은 중국, 인도 등이 자국의 식량부족사태를 막으려 곡물수출의 장벽을 높이게 되면 국제곡물시장에 공급부족 사태가 오기 마련이다. 중국, 인도의 경제성장이 육고기 소비를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식량부족사태를 부채질 한다.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곡물 8kg이 든다니 가축이 사람 식량을 빼앗는 형국이다.

'비교우위'라는 낡은 경험에 매몰

유가가 치솟으면서 농산물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에너지 개발이 성행한다. 식량으로 써야할 농산물이 대거 에너지 생산용으로 대체되는 현상이다. 미국이 2006년 옥수수 생산량의 20%를 에탄올 생산에 쓴 게 그것이다.

만약 이대로 국제곡물 시세가 급등하고 애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만약 지구촌 곳곳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나고 식량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처지는 어떻게 달라질까? 식량자급율 28%인 우리에겐 작금의 현상이 심각한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난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값싸고 질 좋은 미국 쇠고기를 먹이기 위해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세계가 식량위기의 공포감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식량수입 5위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자국의 농산물을 비교우위론에다 적용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발 앞에 놓인 한미FTA 추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 수출시장을 늘리는 한편, 우리 식탁을 비교우위 조건의 미국 농산물로 대체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다.

만약 기존의 협상안대로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우리의 식량안보는 풍전등화로 내몰릴 게 뻔하다. 쌀을 제외한 전 품목의 관세철폐라는 전대미문의 한미FTA 협상은 역사적 대죄다.

오늘날 주요 선진국들은 농업통상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농업통상의 범주에서 비교역대상(NTC)을 크게 넓히는 게 가장 두드러진 추세다. 농업을 통해 파생되는 문화, 환경, 사회적 기능 등 공공재는 교역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대두되면서 농업통상의 틀도 크게 변하고 있다. ‘예외 없는 개방’으로 유명한 WTO도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비교역대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여러 농산물 수입국들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자국의 공공성과 부합된 논리로 확대 해석하면서 농업보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와 여러 농산물 수입국들은 식량안보 기능도 비교역 범주라고 주장하고 있고, 농업통상협상 때 이를 중요 의제로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 통상외교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이런 선진국들의 모습과 딴판이다. 최대의 FTA로 불리는 한미FTA 협상 때 농업의 비교역대상과 식량안보는 협상 의제에 조차 올리지 않았고 협정문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당국자들은 말로는 농업보호를 외치지만 정작 통상협상 테이블에선 농업과 식량안보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늙고 병든 어머니 내다 버릴 텐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자국의 농업과 농촌을 지키기 위해 집요하고도 꾸준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시키는데 20년 이상을, 농업의 비교역대상을 통상전략에 반영하기를 10년 이상 씩이나 경주해 왔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껏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개념 접근에 머물고 있다. 많은 정책 당국자들은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낡은 경험주의에 포박되어 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농업의 제 기능이자 농업의 본질적 가치다. 때문에 농업·농촌이 우리 사회 발전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따져보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쪽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가 낙후된 농업을 보듬고 갈 필요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가운데 농업·농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국제식량위기는 되려 농업회생의 기회다. 지금을 농업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농업을 재창조할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농업·농촌은 우리 사회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어머니가 늙고 병들었다고 내 버릴 수 없듯이 농업·농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