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이든지 ‘부(副)’자가 달린 직책이 壺澎穗?마찬가지지만 공직사회에서 ‘부’자가 설 땅은 없다. 오죽하면 부군수는 주무과장 자리만도 못하다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나오겠는가. 민선 이후 부단체장은 조직 내부에서조차 장기판의 졸이 되어 버렸다.”

“재임기간동안 밥만 축내고 틀린 글자 몇 개 고친 일 외에는 아무런 할일이 없이 떠나게 됐다. 공직자로 일하면서 지켜왔던 자존심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부군수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이들이 설 자리가 없다.

‘부’라는 한계 때문에 단체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다 권한도 없어 단체장의 독선이나 전횡 등을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직책은 있어도 할 일은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겉으로는 지자체의 두번째 자리로 경리관에다 인사위원장 등 화려하지만 실상을 보면 위상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위로는 단체장에다 아래로는 실·과·소장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인 것이다.

안팎의 압력과 외풍으로 선출직 단체장의 업무를 돕고 독선을 막는 본연의 임무는 고사하고 단체장의 선심 행정과 정치 행보를 견제하기는커녕 행정 책임까지 뒤집어쓰는 경우마저 나오고 있다.

얼굴마담으로 전락한 부군수

부군수는 단체장을 보좌하면서 행정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을 감독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실제로는 단체장을 대신해 각종 행사에 참석해 축사대독을 하는데 그치고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돼 ‘얼굴마담’으로 전락했다.

일부 부군수의 경우 전남도 본청 국장자리 진입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자리로 인식하는가 하면 적당히 단체장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해 단체장의 독선이나 전횡을 견제하기를 바라기에는 애초에 무리라는 지적이다. 처음부터 부단체장들의 권한과 위상 강화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셈이다.

단체장이 ‘내치’와 ‘외치’에 관한 모든 권한을 휘두르면서 부단체장은 ‘핫바지’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민선이후 지역마다 민원이 쏟아지고 있으나 부군수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돼 있다. 단체장을 놔두고 각종 민원을 해결하러 나설 경우 자칫 부단체장이 설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단체장과의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 마음고생이 클 수밖에 없다.

부군수가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임명 방식에서부터 비롯된다. 민선 이후 부군수의 신분이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바뀐 데다 관련법에는 해당 단체장이 임용토록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도지사가 해당 단체장과의 협의를 통해 임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부임한 부단체장들이 직무를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임용 과정에서도 일부 단체장들은 해당지역 출신 인사는 차기 선거에서 자신과 경쟁할 수도 있다는 우려로 노골적으로 기피하고 일부 부단체장은 해당지역 단체장의 거부로 임용되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설사 부단체장이 지역 출신으로 임용될 경우에는 그야말로 ‘꿔다 논 보릿자루’신세를 면치 못하는 형편이다. 호랑이를 키우지 않으려는 단체장이 전권을 행사하면서 부단체장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체장-부단체장 윈-윈해야

부단체장의 위상 재정립을 위한 대책이 절실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앙정부차원에서 부단체장 제도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를 통해 부단체장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주민들의 행정 욕구와 민원은 갈수록 폭증하고 있어 이 모두를 단체장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행정전문가인 부단체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기초단체 부단체장 임용을 위한 고위공무원단을 구성해 최대한 인재풀을 가동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중앙정부에서 임용토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단체장과 부단체장의 인식전환도 절실하다. 단체장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각종 현안의 해결에 행정전문가인 부단체장을 적극 활용하는 마인드를 갖추고 부단체장도 단체장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소신 있는 업무수행이 필요하다.

단체장과 부단체장이 윈-윈 할 때 지역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양상용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