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하수종말처리장 ‘결사반대’

눈 가린 행정절차가 마을의 평온을 또 깼다.
고서면 주산리 39-3번지 일원에 건립하고 있는 ‘고서면 하수종말처리시설’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표류가 예상된다.
이번에도 주민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의 첨예하고도 현란한 문구 뒤에는 ‘집단민원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어 지방자치시대 행정부가 주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일 장산리 마을회관에는 이미 15명의 마을주민들이 모여 대책을 회의하고 있었다. 백발의 팔순노인부터 거동 불편의 아주머니까지 하나 같이 격앙된 표정의 그들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 “밥을 먹어도 신간이 안 편하니 살 수가 없네”
신간이 안 편한 이유에 대해 그들의 목소리는 일관되게 “어쩌면 우리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였다. “세상에 만들기로 다 계획 짜놓고! 마을사람들한테 설명 한마디 없이…일을 이런 식으로 해도 됩니까”
마을사람들은 “사업시행 초기부터 철저히 배제됐으며 제대로 된 설명회 한 번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설명회에 참가한 일부 마을사람들의 의견을 전체 의견으로 간주해 사업시행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 설명회가 없었나?
주민들은 “정보공개청구에 의해 겨우 받아냈다”는 2005년 2월 18일자 ‘주민설명회 회의록’을 꺼내들었다. 회의록에 의하면 고서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설명회에 장산마을(주산리 3구) 주민들은 겨우 3명이 참석했다.
“그때 몰라서도 참석 못했고 또 무슨 일로 참석을 못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속인지 하수종말처리장 짓는다고 일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마을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 주민은 “난 길에 뭔 깃발이 꽂혀있고 큰 차들 다니기에 그 때서야 알았다”며 주민설명회 자체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 “앞으로 설명회를 갖는다는 것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회의록에 의하면 이날(2005. 2.18) 郡 하수도담당이 “많은 주민 참석치 않아 아쉽다. 건설예정지 토지소유자에게는 개별 우편통지했고, 고서 복지담당이 주민들에게 참석토록 전화한 것으로 안다. 주민들의 관심부족이라 생각한다. 이후라도 설명회 필요하면 하겠다”라고 하고 있다.
이 말이 끝나자 고서면 복지담당은 연이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인에게 이익이 없으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주민설명회를 갖는다는 것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참석한 분들이 오늘 설명내용을 주민들에게 잘 설명해 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마을사람 대부분이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회의록에도 나와 있다.
설명회 참석한 주민 중 1명은 “마을사람들이 ‘친환경유기농 메카 원년 선포식’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밝히며 “군 행사 2개가 겹쳐 문제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郡 하수도담당과 面 복지담당은 ‘자가다 봉창 두드리는 식’으로 ‘관심이 없다’ ‘주민설명회는 효과가 없다’는 식으로 애먼 주민들 탓만 하고 있다.

△ 마을상황
면 복지담당은 “마을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없어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현재 마을주민들은 ‘집단공황상태’이다.
정작 제일 중요한 자신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은 거의 다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시골 촌로들로 한 평생 땅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반발감이 더욱 크다.
마을사람들은 “고서 출신 某군의원이 마을회의에 와서 ‘어떤 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고 하기에 ‘그럼 하수종말처리장이 못 들어오게 하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하니 대답을 못했다”고 하며 ‘郡에서는 주민설명회도 다했고 법적으로 문제도 없으니 사업을 강행한다’고 하고 있고 실제로도 마을 앞에는 현장사무실까지 다 들어서서 공사자재도 다 들여다 놨고 또 관로도 증암천 따라 마을 앞까지 거의 다 매설됐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에 시골 사는 늙은이들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유분수지 나는 끝까지 할거구만”
“도대체 우리를 인간으로 보고 이러는 거다요? 서류 보니까 실시계획이다고 다 설계 빼서 자기들끼리는 확정해놓고 뭐 주민설명회라고! 주민설명회도 제대로나 했으면 할 말이라도 없겠네”
“알아보니까 마을하고 300m이상 안 떨어지면 이런 시설들은 못 짓게 되어 있든만 근데 여기서 저기 굴다리(통로암거)만 지나면 건설부지요 고속도로로 막혀있으니 괜찮다고 하는데 그렇게 좋으면 지기들이 와서 살아라고 그래!”
“이렇게 무시당하고는 못살아”

△ 갈등
혐오시설 설치 등으로 집단민원이 발생한 곳의 공통점은 반드시 내부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장산마을도 예외는 아니어 ‘반목’이 시작됐다.
마을회관의 깨진 유리창들이 마을의 현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주민들은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상황을 거론하거나 실명(實名)을 입 밖에 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마을사람들은 ‘어찌됐든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마주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주민들의 주장
내부적 갈등을 안고 있지만 주민들의 주장은 단순 명확하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어떠한 것을 감추고 있는지’ 또는 ‘협상에서 어떠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표면적으로 나타난 그들의 주장은 ‘어떠한 타협도 없으며 무조건 반대’이다.

남종희 인터뷰 - 모양만 다른 ‘삼다리 문제’

“우리를 테이블 건너편의 정당한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마을만 다르지 사건 진행에 따라 노정되는 문제점은 ‘삼다리 펜션신축문제’와 같다. 군으로 보면 같은 문제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2가지 요구안을 내놓고 郡과의 긴 싸움을 마무리하려는 삼다리 주민들은 착찹하기만 하다. 또 할 말도 많다. 그런 주민들 중 남종희 씨를 만나봤다.
그에게 현재까지 자신이 느낀 담양 행정(行政)의 대민(對民) 기조(基調)를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하자 스스럼없이 나온 말은 “행정은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속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쉽게 갈 수 있을까’로 축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내용을 잘 몰랐다. 허가는 작년 5월 28일에 났는데 그해 8월경에야 알았다. 그 때도 郡이나 업자가 말 한데로 그냥 펜션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상한 풍문이 나돌아 정보공개청구로 알아보니 우리가 보기엔 그것이 ‘무인텔’이었다.
정보공개도 얼마나 싸우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느낀 점은 ‘행정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속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체 없이 480여명에게 탄원을 받아 군수실로 들어갔다. 군수는 ‘단순히 펜션인줄로 알고 허가해 줬다’며 ‘이것은 내가 보기에도 일반적인 펜션은 아닌 것 같다’며 담당직원들을 불러 ‘구조변경(1층 주차장을 객실로 하며 취사도구를 더욱 구비하며 주차장을 옥외주차장으로 할 것 등)을 하지 않는 이상 허가를 취소하라. 업자 측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니 그 점에 대해서도 준비하라’며 철석같이 허가를 취소할 것을 약속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군수는 우리 편이구나’하면서 문을 나섰는데 곧이곧대로 믿은 우리가 바보였다. 약속만을 믿고 12월 중순까지 있었는데 공사는 다시 재개되고 오히려 척척 진행되는게 아닌가. 그때까지도 군수는 허가 취소하겠다며 허언(虛言)으로 일관했다.
그 통에 우리만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 기일 제척기간을 도과해 버렸다. 군수가 헛된 약속으로 주민들의 눈만 가리지 않았더라도 행정심판으든 소송이든 간에 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또 군수가 진정 허가를 취소할 생각이었다면 어떠한 부담을 안고라도 취소했을 것 아닌가. 그런데 헛된 약속만 계속했던 것이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이었던 같다.

아무튼 정상적인 방법으로 다툴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린 우린 현실적 방안과 투쟁적 방안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슬슬 여론을 빙자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숙박시설도 부족한데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린 처음부터 정상적인 펜션은 ‘대환영’이라했다. 그런데 근거 없는 비난성 소문만 난무했다.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데이터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부족하다면 어떤 종류가 부족한지, 얼마나 부족한지, 관광형 숙박시설이 부족한지, 여관, 모텔 등 일반 숙박시설이 부족한지에 대해 정확히 지적해야하는데 무조건 출처도 없는 소문을 들먹이며 마을이 이기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뒤 군수는 ‘허가를 취소할 수 없게 됐다’고 했고 이어서 우린 점거시위와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고 쟁의의 실익이 약해지자 현실적 방안을 강구한 마을주민들은 시위를 접으며 2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담양군조례를 다시 개정해 준공업지역에 숙박업소가 못 들어오게 해달라는 것과 둘째 그간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8회에 걸쳐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한 신의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 군수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우리는 현재 그 요구에서도 한 발 물러나 군수의 사과내용과 방법은 차제하더라도 군 조례만이라도 먼저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례가 개정되지 않으면 제2, 3의 러브모텔이 들어설 것이다. 현재도 이미 지난 3월 24일 경 또 다른 모텔에 대해 허가신청서류가 접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조례를 개정하지 않으면 난개발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을은 또 분쟁에 휘말려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의회나 집행부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말 담양의 새로운 관문으로 부상하고 있는 삼다리를 모텔촌으로 만들려고 하나.”

“처음부터 함께 고민했다면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
끝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행정이 조정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이 부분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업자에게 이양해 버린다. 한마디로 골치 아프기 싫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이러 이러하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하는데 법규에 따라 하자만 없으면 된다는 식이다.
처음부터 주민들에게 사실대로 설명하고 함께 고민했다면 똑같은 시간에 아니 훨씬 짧은 시간에 사건은 이미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상하수도사업소 하수도계장 박홍순 인터뷰

“마을주민이 3명밖에 없었다면 다시 했어야 했다”

- 마을주민들이 문제된 하수종말처리장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은 사실 아니나?
그렇다.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2005년 2월 설명회에 마을주민이 3명밖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다음날 다시 하던지 차후 한 번 더하던지 했어야 옳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은 그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되며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칭 그대로 ‘설명회’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렇게 진행된 것 같다. 만약 그날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면 다른 후보지가 선택됐을 가능성은 있었다.

- 마을 주민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면 더더욱 설명회가 중요한 것 아닌가?
법률상 진행되는 행정청 간 업무도 1년 6개월씩 걸린다. 결과적으로 설명회 부분에 아쉬움점이 발견된 건 사실이지만 설명회에 매달리다보면 아무 일도 못한다. 설명회는 말 그대로 주민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로 시행하는 것이지 그로 인해 큰 변동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부분은 현행법상 미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용역단계에서 후보지로 선정되면 거의 확정된 것이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나 현실은 그러하다.

- 작년 10월 마을대책위원회가 구성됐는데 만나본 적 있나?
만나 보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들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갑자기 협상이 되지 않고 벽에 부딪혔다. 마을사람들 사이에 좋지 않은 일도 있는 것 같고 갑자기 돌변한 이유를 모르겠다.

- 주민들로서는 이미 차집관로가 증암천을 따라 건설부지까지 다 내려왔기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을 고려한 것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항에 귀를 기울이고 복지시설이나 편의시설 등 설치가 가능한 것에 대해 최대한 수용하려 한다. 현재 주민들이 요구한 창고 건립도 의회를 거쳐 예산이 확정돼 집행만 기다리고 있다.

- 마을은 이제 혐오시설 문제가 아니라 마을공동체에 위기가 닥쳤다. 어떻게 생각하나?
마을 구성원 모두에 대해 알 수는 없으나 일단 설명회가 피상적인 절차에 그치고 사후에 수습과정에서 알 수 없는 걸림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용역 결과 건설예정지가 최적지로 행정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곳이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융화돼서 나아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또 마을에 대책위원회나 이장들이 바뀌며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를 낳게 한 점도 행정에 책임이 있으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앞으로 어떻게 되나?
부지를 매입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간이 계속 늦춰질 경우 수용할 수밖에 없다. 부지는 20년 전 광주사람이 사서 지금은 그 자손 명의로 돼 있다. 그곳은 그린벨트로 다른 것을 하지 못하므로 지가상승 요인 없다. 따라서 인근 논은 대부분 5만원 씩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지주는 8만원 감정가를 반대하고 11만원을 주장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의 문제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고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문제해결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마을회관에서 바라 본 굴다리(통로암거),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하수종말처리장 예정부지이다.


▲ 고서면 주산리3구 장산마을. 35호의 늙은 농부들만 사는 마을로 88고속도로가 지나 가며 마을을 고립시켰다. 이제는 답답한 방음벽만이 새로 들어설 하수종말처리장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