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과 우수가 지나고 며칠 있으면 경칩이 다가온다. 겨우내 맹위를 떨치던 추위도 누그러지고, 봄 햇살이 드는 양지는 제법 따사롭다. 해마다 포근한 절기 속에 3·1절을 맞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상춘과 신학기의 설렘 속에 묻혀 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아마도 변함없이 3월 하늘을 맞이하는 것은, 창공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아닌가 싶다.

지난 1월 문화재청에서 “건국 6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사와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태극기 중 역사적 가치가 높은 태극기를 근대문화재로 등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임시정부 태극기’를 비롯해 ‘김구선생 서명 태극기’,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등이 등록문화재로 검토되고 있다.

이 가운데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불원복 태극기’ 일 것이다. 불원복(不遠復)이란 ‘국권 회복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 하에서 호남의병의 선봉에 섰던 녹천 고광순 선생과 깊은 관계가 있다.

담양군 창평 출신인 고광순 의병장은 1906년 창평에서 궐기해 화순읍과 남원성 등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해 전과를 올렸다. 60세가 되던 1907년 구례 연곡사로 근거지를 옮겨 장기항전 태세를 갖추었다. 일본군과 결전을 앞둔 선생은, 우리나라의 국권을 상징하는 태극기에 ‘불원복(不遠復)’이란 세 글자를 쓰고 군영에 내걸어 의병들에게 독립을 위한 강한 투지를 북돋웠다. 일본군과 끝까지 결사항전을 하였지만, 중과부적으로 장렬히 최후를 마쳤으며, 이 때 선생이 남긴 유일한 유품이 바로 ‘불원복 태극기’ 이다.

이처럼 태극기에는 근대의 우리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망국의 치욕과 독립을 위한 절규 그리고 광복의 환희를 담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태극기는 우리민족의 희망이었다. 암울했던 민족수난기에 어린 학생에서부터 부녀자, 노인에 이르기까지 태극기를 들고 그토록 불러 보고 싶었던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다가 산천의 이슬로 사라진 수많은 애국선열들을 떠올릴 때면 절로 숙연해 짐을 느낀다.

얼마 전 모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태극기를 전달하고, 월드컵 응원가에 맞춰 흔들며 나라사랑을 느껴보는 특이한 행사를 펼쳤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가정에서 국경일에 맞춰 반드시 태극기를 게양할 것을 다짐하는 태극기달기 서약식도 가졌다고 한다. 참으로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라사랑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창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예로부터 애국심과 정의감으로 충만한 우리국민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구국의 대열에 앞장섰음을 기억한다. IMF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나, 태안반도 기름유출 때 보여준 단결력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위대한 국민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삼아,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고 사회 구성원 간 갈등해소와 연대감을 조성하며 편협한 개인이익보다는 나라와 겨레를 생각하는 애국·애족정신을 발휘해야겠다.

89년 전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드높였던 3·1독립만세운동을 떠올리며, 전국이 태극기 물결로 넘실거릴 때, 고광순 의병장의 불원복 태극기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휘날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