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미비 탓 아니라 관리ㆍ점검 부실이 더 문제

불은 꺼졌다. 회색 잿더미와 검은 그을음, 그리고 국민들의 가슴에 짖은 화상자국을 남긴 채, 국보1호 숭례문(1962년 12월20일 지정)이 지난 10일 밤 8시50분경 시작된 화재로 5시간 만에 2층 누각이 전소되어 폐허로 변하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건이 터지고 정치권과 언론들이 책임을 추궁과 문제점 지적에 바쁘고, 관련 기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언론에서는 문화재방재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긴급대책회의에서 우상호 의원(대통합민주신당, 서울 서대문 갑)은 “문화재소방법 마련 등 근본적 대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정청래 의원(서울 마포 을)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시장 재직시절 숭례문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부분을 지적하며 “이번 사건은 서울시의 전시행정, 보여주기 행정, 밀어붙이기식 포퓰리즘이 빚은 참사”라며 “사후대책 없이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숭례문을 개방했던 것이 이번 참사의 근본원인”이라고 이명박 당선인에게 책임을 추궁했다.

신당 "이명박 탓"ㆍ한나라당 "노무현 탓"

반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정권이 그동안 안전 의무에 허술한 채 신경 쓸 데는 안 쓰고 엉뚱한 데 신경 쓰다가 이런 비극을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노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나경원 대변인을 역시 지난12일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노무현 정부에서)공무원을 그토록 늘리면서도 국보 1호를 지키는 공무원 한 사람 없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현 정부를 강력히 질타했다. 그는 또한 “정부는 이번 참화를 계기로 전국의 목조문화재를 비롯한 국보문화재의 재난방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 또한 ‘백지연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재보호법 하에는 소방규정이 별도로 없고) 문화재 보호법상에 별도로 따로 갖고 있는 건 아니고 소방법에 따른 것에 들어가 있다”며 문화재 방재에 대한 법적 근거의 미비를 들고 나섰다.

하지만 우상호 의원이 주장한 ‘문화재소방법 마련’이나 나경원 대변인의 재난방재시스템의 근본적 재구성 주장은 섣부른 ‘입법’ 행위일 수 있다. 유홍준 청장의 ‘법적 근거 미비’주장 또한 실제와 차이가 있다.

우선 이러한 요구들이 이번 화재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05년 4월에 발생한 낙산사 화재사건 직후에도 문화재 관리에 대한 지적과 법안 개정요구들이 쏟아져 결국 개정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12월 1일 국회를 통과, 2006년 6월24일부터 시행한 문화재보호법일부개정안(위원장 대안)에는 문화재의 화재예방 및 소화 장비 설치를 위한 규정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법안의 내용을 보면 제72조의2(화재예방 등)에 ▲문화재청장 또는 시ㆍ도지사는 지정문화재의 화재예방 및 소화장비 설치를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 ▲지정문화재의 소유자 등은 소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지정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 및 진화를 위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지정문화재의 소재지, 보관 장소 또는 해당 지정문화재 등에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소화설비ㆍ경보설비ㆍ소화용수설비를 설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담겨있다.

당시 문화재에 대한 소방시설 설치법안을 발의했던 민병두 의원(대통합민주신당, 비례)은 지난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숭례문 화재 사건은 지자체가 문화재보호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며, 담당 공무원들이 원형 보전 때문에 소방시설을 설치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국보1호인 숭례문이 왜 우선순위에 밀려 아직까지 소방시설을 갖추지 못 했는지를 따지고 화재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화재 당시 중구청은 평상시 3명인 관리 인력을 전혀 배치하지 않고 무인카메라에만 의존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문화재보호법은 한국과 유사 방재시스템 일상적 적용수준 한참 앞서

일본의 경우 숭례문 화재와 비슷한 화재를 경험한 적이 있다. 1949년 1월 26일 나라현에 있는 목조건물인 ‘법륭사 금당벽화’가 불에 탔다. 일본 국민과 정부는 이를 계기로 문화재 관련 방재시스템을 확립하며 1950년 문화재 보호를 총괄하는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이 법이 우리의 ‘문화재 보호법’과 유사하다. 일본의 문화재 보호법은 문화재와 관련한 ▲정기적인 화재방지훈련 ▲문화재 건조물에 관한 현장검사와 화재ㆍ재해방지요령 지도
▲정기적인 소방시설점검 ▲전통 건물축이 밀집한 지구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화재방지 지도나 방재협력체제 정비 등을 규정해 놓았다.

비록 우리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긴 하지만 큰 틀에서 우리 법규와 일본 법규에 큰 차이가 없다. 결국 법을 적용하고 관리하는 방법의 차이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회는 관련 법 규정이 개정 된지 3년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국회의 움직임은 오히려 국회가 그동안 법안 개정을 졸속으로 행한 것이라고 스스로 반증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다만 현행 문화재보호법에는 소방설비설치 등을 위한 ‘세부 규정’이 없어 소방설비를 갖추도록 강제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논의돼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이번 화재 사건은 소방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이지 소방설비 근거법령의 부족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문화재에 대한 관리 감독 소홀이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방화 용의자로 검거된 채 모(70)씨 역시 경찰 수사에서 “경비가 허술하고 접근이 쉬워 숭례문을 방화대상으로 삼았고, 종묘 같은 다른 문화재는 야간에 출입이 통제되는 등 경비시스템이 삼엄해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진술했다. 숭례문이 야간경비가 엄하지 않은 데다 일반의 접근까지 용이해 상시로 방화위험을 안고 있었다는 지적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일본은 문화청과 소방서가 방재체제정비를 위해 ‘자위소방조직’ 활성화에 힘을 쏟아왔다. 문화재를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있는 단체나 사원 등이 자율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야간이나 휴일 등 문화재 관리에 약점이 노출될 때를 대비하고 있다. 화재나 지진 발생 시 취약한 장소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거나 자율적인 순시, 비상연락체계 확립 등에도 이 자율조직과 연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화재 당시 숭례문에는 소화기 8대가 1ㆍ2층에 나뉘어 비치되고, 상수도 소화전이 설치된 것이 소방시설의 전부였다. 또 숭례문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8시 사이에 평일에는 직원 3명이, 휴일에는 1명이 상주하며 관리하지만 그 이후에는 사설 경비업체 무인경비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었다.

숭례문에는 야간 조명시설이 설치돼 있어 누전 등 전기사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워 방화 위험이 비교적 큰 데도 불구하고 화재예방대책이 너무 미흡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2006년 3월 정부가 철저한 비상관리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고 일반인에게 숭례문을 개방해 ‘예고된 참사’나 다름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형태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장은 “관리인이 없는 야간에는 방책 등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소방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화재에 대처하지 못하는 문화재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요 목조 문화재 100곳 가운데 소화전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30군데 이상이었으며 최소한 소화시설인 소화기조차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이처럼 일본과 우리는 유사한 법 규정을 갖고 있지만 법 규정을 근거로 한 시스템 정비와 관리 체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선 관리부서 책임 못 면해

문화재 관리체계 또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유홍준 문화재청창은 지난 12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우리 문화재관리와 방재시스템 전체가 하나로 일원화 되어 있지 않고 지자체로 위임관리가 되어 있어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문화재 관리체계를 문화재청으로 일원화 해달라는 주문이다. 유 청장은 SBS라디오 ‘백지연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문화재의 경우 문화재청에서 권역별로 지청을 갖고 문화재청에서 직접 관리해야 된다고 그렇게 주장을 해왔지만 오랫동안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아서, 문화재 관리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는 차재에 한번 심도 있게 논의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러한 주문 이전에 이번 사건의 1차적 책임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 문화재청과 중구청이 숭례문 보안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원래 중구청과 숭례문 경비계약을 맺었던 업체는 에스원(대표 노인식)이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중구청은 계약이 만료되지 않은 올해 1월초 에스원과의 유상 계약을 해지하고, 무상을 약속한 <KT텔레캅>과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체결 후 불과 1달여 만에 숭례문이 방화에 의해 전소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사건 발생 초기에는 “제가 사직하는 게 맞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비가 먼저”라며 사의 거부의사를 밝혀왔으나 결국 지난 1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온 국민을 참담한 마음으로 몰아넣은 데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고 그 책임은 문화재청장이 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역시 이러한 책임에 통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숭례문 화재의 법적 책임을 두고 많은 논란이 오가고 있지만 포괄적으로 서울시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관리를 위임받은 관할 구청에 대해 서울시라도 나서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지 못했던 점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숭례문 화재 사건은 문화재 관리에 대한 법 규정의 미비에서 발생한 문제라기보다는 관리소홀과 관리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탄 남대문 가슴에 묻어

한편 손실된 숭례문을 복원하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승희 의원(민주당, 비례)은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불타버린 남대문을 그대로 보존하여 우리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불탄 남대문 보존을 주장했다. 이 의원은 구체적으로 현재 불탄 모습을 감추는 가림막 공사 대신 투명 강화유리로 남대문을 보존하고 복원된 남대문은 다른 장소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유사한 의견들이 생겨나고 있다. 네티즌 ‘하늘아빠’는 다음아고라를 통해 “아무리 새로 복원한다고 해도 원본과는 다른 짝퉁일 뿐인데 장막으로 가리고 덮고 새로 짓는다고 불탄 역사가 바뀌는 건 아닌데…”라며 화재현장 보존을 주장했다. ‘백군’은 “현재 불탄 그대로, 돌 한 조각 새어나가지 않게 보존하자”며 “숭례문의 소실을 앞으로의 역사 속에서도 대대로 전하며, 반성과 앞으로 다시금 이런 일이 없도록 항상 일깨워주는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손실된 숭례문은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년)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년)에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의도통신 장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