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35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월 31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손대현 한양대 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가 ‘재미와 엔터테인먼트와 펀 콘텐츠’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문화강국 코리아의 등불 켜야 할 때”

“삼성경제연구소는 2003년부터 네티즌 1만5천명을 대상으로 ‘국내 10대 히트 상품’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1위를 차지한 상품은 디지털포토(2003년), 싸이월드(2004년), 청계천(2005년), 판교아파트(2007년), UCC(2007년) 등이었다. 여기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는데, 판교아파트만 제외하고 모두가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상품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 차이나 펀드, 김연아와 박태환, 사극(대조영, 태왕사신기),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무한도전, 옥수수수염차, 원더걸스, BB크림, 와인 등의 순서로 집계된 2007년 10대 히트 상품의 목록에서도 그런 특징은 변함없이 발견된다. 차이나 펀드와 CMA를 제외한 나머지 역시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손대현 한양대 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 ‘관광’과 ‘엔터테인먼트’의 개념을 도입하고, 그것을 ‘학문’과 ‘산업’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0년 전인 1968년 스페인 마드리드국립관광대학을 졸업한 그는 한양대 관광학부 신설을 주도했으며, 7년 전에는 최고엔터테인먼트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판교아파트, 슬림 휴대폰, 저도수 소주, 영화 <왕의 남자>와 <괴물>, 고구려 사극(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웰빙 차(茶) 음료, 이승엽, 비보이, 스키니 패션, 평판 TV(LCD, PDP) 등의 순서로 집계된 2006년 10대 히트 상품도 엔터테인먼트가 국내 산업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는 대중문화, 미디어, 레저, 관광뿐만 아니라 전 산업 분야로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다. 요즘 선진국의 일류 은행들은 고객에게 이자를 지불할 때 ‘돈’으로 직접 주는 대신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식품’을 준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를 이해하지 않고는 기업을 경영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구글과 미라이공업의 성공 비결은

이와 관련해 손 교수는 매년 한국인 1350만명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연 매출이 60조원에 이른다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한국이 세계 11위의 수출대국이긴 하지만 제조업 수출액의 45%가 부품이나 원료 값 명목으로 일본과 중국 등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중·일 삼국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이나 중국과의 경쟁에서 한국이 분명하게 확보하고 있는 비교우위는 ‘빠름’이다. 한국인은 천성적으로 빠르다. 그러다 보니 IT와 디지털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요구되는 중요한 키워드가 융합(Convergence)이다. 사실 창조(創造)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몫이다. 인간에게 창조란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융합하는 능력일 따름이다. 다만 누가 더 빠르게 융합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실제로 창조의 ‘창(創)’ 자는, 창고 ‘창(倉)’과 칼 ‘도(刀)’로 구성돼 있다. 즉, 창고에 있는 많은 것들을 칼로 썰어 쓰라는 뜻이다. 이미 확보한 뛰어난 IT 기술에 이 ‘빠름’의 장점을 연결해 탄생시킨 것이 바로 와이브로나 DMB라고 할 수 있다.”

손 교수가 제시한 두 번째 비교우위는 ‘콘텐츠’였다. 그는 콘텐츠=재미+스토리텔링+체험+감동이라는 등식도 내놓았다. 똑같은 제품이라도 누가 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손 교수가 명함에 ‘Professor(교수)’ 대신에 ‘Storyteller(이야기꾼)’라고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에 가면 로렐라이 언덕이나 오줌 누는 동상이 있다. 그런데 외형적으로만 보면 별로 볼 것 없는 시시한 이것들을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 실제로 벨기에의 오줌 누는 동상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은 350만명이나 된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로렐라이 언덕과 오줌 누는 동상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 ‘스토리’가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특산물 중에서 남성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것이 복분자(覆盆子)이다. ‘이 술을 마시면 요강이 뒤집어진다’고 하여서 잘 팔리는데, 이런 것을 두고 바로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다만 스토리가 너무 길거나 복잡하면 안 된다. 중요한 보고서는 절대 한 장을 넘어가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손 교수는 가장 뛰어난 콘텐츠인 ‘킬러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체험과 감동의 요소까지 아울러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가 음식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바베트의 만찬>을 자신의 종강 수업 때마다 학생들과 반드시 감상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어서 그는 ‘엔터테인먼트’를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적용해서 성공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구글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우리는 에릭 슈미트 회장이 내건 회사의 모토인 ‘재미와 정직’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슈미트 회장은 직원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구글에는 12가지 종류의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직원용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의 음식은 미국 전역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데, 직원이 회사로 초청한 손님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회사에는 이밖에도 당구장, 미장원, 병원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다. 원하는 사람은 애완견을 직장에 데리고 와서 일할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근무시간의 20%는 멋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데도 구글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직원들의 기분이 좋아지니, 고객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실제로 구글은 브랜드 파워만 전년 대비 76억 달러나 늘어나는 등 급성장했다. 훌륭한 일터의 21세기 버전은 다름 아닌 ‘밥’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함께 밥을 먹을 때 우리는 감동적인 인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한국의 대다수 기업과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걸어온 일본의 미라이공업도 ‘엔터테인먼트’를 회사 경영에 적극 도입해 성공했다.

“미라이공업은 ‘먼저 쉬고 싫증나면 일하라’는 모토 아래 직원들에게 무려 140일의 휴가를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상이익은 15%씩 늘어나고 있는데, 일본 기업 평균인 3.5%의 4배를 넘는 수치라고 한다. 이 회사의 창업주 야마다 아키오 사장은 76세의 고령에다 평소의 초라한 복장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세계관과 기발한 아이디어 등으로 속이 꽉 찬 인물이다. 젊은 시절 연극 마니아였던 야마다 사장은 ‘직원 배우론’이라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배우가 일단 무대에 오르면 관객과의 대화는 감독의 소관이 될 수 없듯이, 고객과의 대화는 사장이 아니라 온전히 직원의 자세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야마다 사장은 직원이 먼저 감동해야 고객도 감동할 수 있다는 원리를 신봉한다.”

'창조적 자본주의'와 '행복한 눈물'

실제로 ‘인건비’라는 용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 미라이공업은 직원들에게 월급 외에도 ‘일할 기분’까지 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회사가 내놓은 150가지의 신상품 중에서 단 한 개도 다른 회사와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손 교수는 이러한 원리를 국가적 차원에서도 도입해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절대 작은 나라가 아니다. 4341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강국이다. 나는 단군문화, 풍류도와 신명, 문자야말로 문화강국인 한국이 지향해야 할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단군문화의 핵심이념인 홍익인간은 쉽게 말해서 내 것을 남에게 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기업인들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지고 직원과 고객을 대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보스포럼에서 빌 게이츠가 역설했던 ‘창조적 자본주의’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작 홍익인간의 이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재벌가처럼 엄청난 재산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서 ‘행복한 눈물’ 같은 고가의 그림 수만 점을 사들이는데 쓰는 것이다. 타고르의 시에는 ‘동방의 밝은 빛인 코리아의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는’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은 문화강국 코리아의 등불을 켜야 할 때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손대현 교수의 이력서

▲ 한국외대 스페인어학과 졸업
▲ 스페인 마드리드국립관광대학 졸업
▲ 고려대 경영학 박사
▲ 미 미시간주립대 객원교수
▲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 국제관광대학원 원장, 최고엔터테인먼트과정 원장
▲ 한국관광학회 회장
▲ 서울시 관광진흥위원회 자문위원
▲ BK21 핵심사업단 관광자원평가 및 수용력 개발팀장
▲ 대통령 소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
▲ Cittaslow Corea Network 위원장
상훈: 삼성 ‘인재제일’지 추천 명강의 교수 선정, 한양대 백남학술상 수상
저서: <한국 문화의 매력과 관광 이해>, <문화를 비즈니스로 승화시킨 엔터테인먼트산업>, <재미학콘서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