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28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6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김종훈 한미파슨스 사장이 ‘혁신적인 신시장 개척으로 더 큰 미래를 창조한다’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월급쟁이 천국' 회사 만드는 것이 꿈"

“회사원과 경영자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지 30여년 만에 결단을 내렸다. 복잡한 회사의 모든 업무를 뒤로 한 채 두 달 동안 안식휴가를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2006년 2월 휴가 첫날 보따리를 싸들고 설악산에 들어간 뒤 제일 먼저 전화와 TV를 끊었다. 휴가기간 내내 수염도 깎지 않았더니 수염이 덥수룩해졌다. 매일 등산, 온천, 사색을 즐겼고,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했다.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으며 6주를 보낸 뒤에는 인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도 세상과 연을 끊은 채 독서를 하며 사색에 몰두했다. 질풍노도처럼 달려온 지난 시절을 회고하고 반성했으며, 남은 생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았다. 두 달의 휴가를 마치고 깨끗하게 면도를 한 뒤 회사로 출근하던 날,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국내 건설업계에 CM(건설사업관리)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세계 50대 CM기업으로 성장시킨 김종훈 한미파슨스 사장. 그는 안식휴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참고로 CM이란 발주자를 대신해 기획부터 설계, 시공, 감리, 감독에 이르는 건설 전 분야를 총괄 관리하는 신개념 사업이다. 한미파슨스는 1996년 미국 기업 ‘파슨스’와의 합작을 통해 설립됐다.

개학을 기다리는 아이들 있듯이…

“나는 지금도 장기간의 안식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던 그 날 아침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신입사원으로 돌아가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며칠 후에 종합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모든 건강 수치가 좋아졌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담당 의사는 활짝 웃으면서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내가 한 경제신문에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한 것도 이런 체험과 무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안식휴가를 회사의 공식적인 제도로 만들어서 전 임직원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실제로 한미파슨스 임원과 직원은 각각 근속년수 5년과 10년이 되는 해에 두 달 동안 안식휴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도곡동 타워팰리스, 분당 트리폴리스, 삼성동 아이파크…. 김 사장이 이끄는 한미파슨스가 CM 방식을 통해 수주한 국내 건축물의 목록들이다. 그렇다면 회사 창립 당시 불모지였던 CM 시장을 일구어내 10여년 만에 매출 규모 3000억원, 시장 점유율 30%의 선도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한미파슨스 직원들은 회사 경영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각각 ‘Excellent People에 의한 Excellent Company 구현’과 ‘지속적인 혁신을 통하여 건설산업의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라고 적은 비전과 미션을 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카드로 만들어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래서 전 직원이 비전 카드를 항시 품속에 지니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읽도록 했다. 이것은 전 직원이 회사의 가치관을 늘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고객(우리는 모든 행동과 시스템의 운영에서 언제나 고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다) 등의 핵심가치를 복창한 뒤 업무를 시작하고, 중요한 회의나 행사가 있을 때에도 이 의식(儀式)을 거친다.”

한미파슨스의 핵심가치는 고객을 비롯해 탁월, 혁신, 공헌, 정직 등 5개로 구성돼 있는데, 나머지 내용은 이렇다. 탁월(우리는 고객가치 창출과 우리가 수행하는 사업에서 탁월성을 창조한다), 혁신(우리는 건설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 공헌(우리는 훌륭한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정직(우리는 언제나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또한 서로에게 솔직하게 행동한다).

“기업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고객, 주주, 종업원이 있다. 보통 회사에서는 고객과 주주를 가장 중시한다. 그러나 한미파슨스가 우선시한 것은 종업원이었다. 내가 ‘월급쟁이의 천국’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삼성건설에서 근무하던 시절 세계 최고층인 말레이시아 쌍둥이빌딩의 현장소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가족들도 함께 그곳에서 생활했는데, 아이들에게서 ‘이상한 현상’이 포착됐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방학을 좋아하고 개학을 싫어했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정반대 성향이 나타났다. 주의 깊게 살펴보니,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학교가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동시에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당시 문득 나도 그런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라도 빨리 개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김 사장은 거기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어 못 견디는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힌트와 자극을 받았다. 처음에 그것은 몽상에 불과했지만 회사를 만들면서 점차 현실이 되어 갔다. 우선 외형적으로 보면, 회사 주식 100%가 모두 종업원에게 있다. 그렇게 파트너십이 살아나니 공동체 의식도 강해졌다.

“그러한 단단한 기초가 있었기에 불모지에서 CM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할 수 있었고, 개업과 함께 밀어닥친 IMF 외환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사업구조 혁신, 지식경영시스템 구축, 성과관리시스템 운영, 일하기 좋은 기업 만들기 캠페인 등 지속적인 경영혁신이 덧붙여졌다. 그 중에서도 성과관리시스템은 초창기부터 도입하고 있다. 한미파슨스는 24개의 주요지표를 활용하고 있는데, 내 방에 가면 재무, 고객, 경쟁우위, 혁신성장 등과 관련된 진행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표가 걸려 있다. 비행기 조종사는 ‘백미러’가 아니라 ‘계기판’을 보면서 운전한다. 경영자도 계기판 역할을 하는 이 도표만 봐도 회사의 경영 상태를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개인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결정된다.”

한편 한미파슨스는 ‘훌륭한 일터 만들기(GWP: Great Work Place)’를 위해 여러 가지 독특한 제도를 도입했다. ‘자녀수 무제한 학자금 지원’도 그 중의 하나다. 보통 대기업도 2명까지만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비록 재벌 규모의 회사가 아니지만 자녀 수에 상관없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저출산이라는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배우자 정밀건강진단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고용인에 대해서만 건강진단을 하지만 우리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배우자까지 확대했다. 이 제도를 시행한 지 4년이 됐는데, 그 동안 2명의 배우자가 초기 암 진단을 받아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창립기념행사나 송년회에도 직원의 가족까지 초대하고, 배우자의 생일 선물도 챙겨준다.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은 직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에 자부심을 느끼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게 하자는 확고한 경영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윤리규정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모든 직원은 입사할 때 서약서를 작성하는데, 윤리규정은 단지 부정을 하지 않는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정직한 기록의 의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승리한 자만이 남을 도울 수 있다

한미파슨스 직원들은 사회공헌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과 방식이 다른 회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김 사장의 설명이다. 건설 관련 기업이라는 특장을 살려서 열악한 사회복지시설을 고쳐주는 일이 바로 그것인데, 몇 년 전 MBC 텔레비전의 ‘느낌표’라는 코너에서 진행했던 ‘기적의 도서관’ 캠페인 뒤에도 한미파슨스가 있었다고 한다.

“사회봉사활동만큼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만드는 좋은 프로그램이 없다. 직원 상호간에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GWP지수의 자부심 부문에서 <포천> 선정 100대 기업의 평균 점수(86점)보다 높은 점수(89점)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도 사실은 사회봉사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모든 직원이 입사할 때 작성하는 고용계약서에 사회봉사활동을 의무조항으로 포함시켜 놓고 있다. 지금까지는 직원들이 1%, 회사가 1%를 내놓아 사회봉사활동에 사용할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를 마련했는데, 직원들의 자발성을 독려하기 위해 회사가 2%를 책임지기로 했다. 최근에는 이 기금으로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도 가동하기 시작했다.”

경영의 귀재로 불리는 잭 웰치 전 GE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승리’를 뜻한다. 승리한 기업과 CEO만이 사회에 환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이 발언이 거짓이 아니라면, 한미파슨스와 김종훈 사장은 승리자임에 분명하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김종훈 사장의 이력서

▲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 서강대 경영학 석사
▲ 1973년 (주)한샘건축연구소
▲ 1977년 한라건설(주)
▲ 1984년 삼성물산(주)
▲ 대한중재인협회 부회장
▲ 한국CM협회 이사
▲ 한국건설관리학회 고문
▲ 건설교통평가원 기술평가위원
▲ 서울시 창의서울포럼 시정관련 부대표
▲ 건교부 건설투명성포럼 공동위원장
▲ 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
상훈: 건설경영대상, 대한민국 훌륭한일터상, 기업혁신대상 국무총리상, 대한민국 BSC대상 민간부문 대상, 국가생산성대상 국무총리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