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담양, 유통 戰爭의 예외 일수 없다.
2. 대형매장의 문제점과 대책은?
3. 영국에서 배워보자(상)- 제도와 지원, 시민단체의 역할을 중심으로
4. 영국에서 배워보자(하)- 성공한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5. 재래시장에 희망이 있다.
6. 재래시장이 바뀌면 간다.

5일마다 열리는 5일장은 중소 도시의 상설 시장과 맞먹는 시골 사람들의 생활터전이다. 이같은 ‘5일장’이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리고 또한 시대가 변GO 삼성 홈플러스,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 잠식되면서 그 자취를 감출 때도 됐건만, 그 명맥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 사는 냄새요, 끈끈한 인정 때문에 유지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상인들의 입에서 ‘힘들지 않다’는 말이 나온 적 있겠느냐만 최근 들어 급속하게 늘어나는 빈 점포를 보면 결코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때맞춰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한국언론재단에서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공존의 길은 없는가?’라는 주제로 해외공동기획취재를 기획했다.

본지를 비롯한 강진신문·군포신문·나주신문·서울동부신문·설악신문·시민의 소리·용인시민신문·장성군민신문·청양신문·평택시민신문·한산신문 등 12개 지역신문사가 참가한 이번 해외공동기획취재는 영국 런던, 맨체스터, 코벤트리, 노르히치를 방문해 테스코 매장 운영 실태와 이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및 지방의회, 재래시장 실태를 현지 취재하고 문제점과 대안 마련을 위한 개선책을 강구코자 한다.

본지는 이번 해외 공동기획취재를 바탕으로 대형매장의 간접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 경제의 현실과 앞으로 닥칠 미래 상황에 대비함은 물론 국내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재래시장의 성공 비결을 도입, 관내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를 살펴보기로 했다(편집자)

5. 재래시장에 희망이 있다.

▲ "대나무로 돈을 긁었다"는 말이 생길정도로 담양 경제의 돈줄 역할을 했던 담양죽물시장.

시장은 생동감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가끔 활력이 지나쳐 무질서하고, 엉망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재래시장에는 면면히 이어오는 생명력과 원칙들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지금 재래시장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신식 건물에 최신 판매시스템을 갖추고 온갖 상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새로운 유통업체들이 등장하면서 그 동안 재래시장을 이용하던 이들이 점점 발길을 돌려 외면당하면서 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여전히 내 장사에만 급급해 하고 있고, 정부 또한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시장 현대화 사업에 정책적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재래시장에는 그야말로 '시장논리'만이 있을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부심하고 있다.

그렇다고 재래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이런 재래시장의 위기 속에서도 옛날의 영화(榮華)를 여전히 유지하고 심지어 더 번성하고 있는 시장들이 있다.

장흥 정남진 토요시장

장흥읍 정남진 토요시장은 말 그대로 토요일만 열리는 관광형 시장이다.

시골장터의 순박한 냄새와 함께 각종 이벤트가 곳곳에 숨어있어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공존하는 곳이다.

정남진 토요시장은 태동은 지난 2004년. 기존 2일과 7일에 열리는 5일시장과 매일시장 4400평부지에 74억원을 들여 1년여 간의 공사를 마친 후 지난 2005년 7월 2일 개장한 정남진 토요시장은 재래시장과 현대시설의 절묘한 조화에 노력했다.

토요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전 시골장의 향수를 자극하는 할머니 노점상들.

고무 대야를 2-3개씩 앞에 놓고 팔고 있는 할머니노점상들은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특별히 물건을 사달라는 호객행위는 없지만 가격을 깎아주고 덤을 주는 전형적인 예전 시골장터를 떠올리게 한다.

직접 텃밭에서 재배한 야채와 과일을 내와서 파는 사람들만 100여명이 나온다. 택호로 불리는 할머니들의 신선한 텃밭 야채들은 오전 중에 동이 날 정도로 토요시장을 대표한다.

"거 왜 있는가? 아침 일찍 시장에 나온 아주머니들이 값만 묻고 뒤돌아설 때 '마수걸이부터 재수 없네'라며 소금이라도 뿌릴 듯한 분위기... 우리 정남진 시장 사람들은 이제는 그런 짓 않해, 젊은 사람들이 기겁해 불고 다시는 안 오거든. 손님들이 달라진 모습에 많이들 좋아해 불어."
할머니 상인의 말에서 교객 중심의 마케팅 기법이 느껴진다.

이처럼 장흥 정남지 시장이 활성화되기까지 자치단체의 숨은 노력들이 돋보인다.

할머니 노점상들의 정착을 위해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장날마다 1만원씩의 지원금을 주는 것. 할머니 노점상들은 물건을 팔아서 좋고 군에서 보조금까지 받으니 일석이조가 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서로 물건을 내다 파는 것이 정착되면서 정남진 토요시장의 명물이 됐다.

또 하나는 시장상인들의 단합된 힘이다. 새로 시장을 재건축하면서 가칭 시장재건축추진위원회가 상인회의 모태로 시작됐다. 상인회는 시설관리, 회원관리, 질서관리로 부서를 나서 봉사형태로 모든 상인들이 순번을 정해 한명도 빠짐없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당연히 상인회에 대한 관심도 높고 자체적인 질서유지와 환경정화에 힘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천변주차장, 매주 열리는 각설이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 관광객을 위한 재래시장 러브투어 유치, 지역특산물과 한우를 시중가격보다 30%저렴하게 판매하는 적극적 마케팅이 더해저 전남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토요시장의 매출은 하루 3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전 매일시장과 5일 시장에서 하루 5000여만원 정도의 매출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이런 고속성장 속에는 단합된 상인의 자정노력과 변함없는 지자체의 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남진 토요시장 김유성사무국장은 “토요시장은 말만하면 꾸미고 만들 수 있는 도깨비시장과 같다”며 “상인과 지자체의 끊임없는 노력과 새롭게 변화하려는 자세가 전국적인 시장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관기재래시장 살려 보자구요”

보은군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마로면 관기재래시장의 활성화에 상가번영회가 발벗고 나서고 있다.

마로면은 인구 3000여명에서 최근 2800여명으로 줄어 든 데다 5년전 보은∼상주간 구간중 마로면을 우회도로가 개설된 이후 재래시장 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관기시장은 아케이트 설치공사와 아스콘 포장, 화장실 개선 사업등을 지난 2005년 완료하는 등 시장 활성화에 노력해왔다.

하지만 농촌 인구 감소와 읍내 주요 중대형 마트가 생겨나면서 소비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데다 마로면의 특성을 살린 재래시장 특성화 방안마저 없어 관기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마로면 관기시장 상가번영회(48·최병두)는 관기시장 경제활성화 방안으로 경품 추첨권을 운영하고 있다.

경품권은 1인 1만원이상 영업장 이용시 경품 추첨권 1매를 지급하고 추첨권을 모아 내년 3월 8일 추첨을 통해 1등 1명 50만원, 2등 1명 30만원, 3등 3명 10만원, 4등 20명에 2만원, 5등 50명에게 1만원의 상품권을 지급할 계획이다.

또한 마로면은 시장 활성화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내부의 자원을 바탕으로 외부 자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로면 주력 산물인 축산물과 연계한 특성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마로면의 경우 50두 이상 농가가 25농가 2천여두로 보은군 한우사육 기반중 가장 많은 한우사육 두수를 보이고 있는 만큼 전북 정읍의 산외면 한우축산단지를 벤치마킹해 속리산의 관광자원, 구병산 등 관광자원과 연계시킨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오는 11월쯤 개통 되는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속리IC의 교통 근접성을 살리면 지역 상인회와 축산농가가 연계된 유통조직 정비와 식당, 식육판매점의 시설 현대화 및 홍보를 통해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빠른 경기회복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저렴한 가격, 믿을 수 있는 ‘한우’가 경쟁력”

전북 정읍시 산외면 소재지가 한우고기 특화지역으로 형성된 것은 정육점에서 파는 한우고기가 품질이 좋고 다른 지역에 비하여 값이 매우 저렴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도시지역 소비자들까지 대거 몰려들면서부터이다.

이를 계기로 적막감까지 돌 정도였던 면소재지가 1일 3백 - 4백여명의 소비자들이 찾아들면서 정육점은 물론 인근 한우식당들도 문전성시를 이뤄 슈퍼마켓 등 인근 상가들도 덕을 톡톡히 보는 등 좀처럼 활로를 찾기 힘들었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정육점 및 한우식당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당초 3개 업소에 불과했던 정육점이 7개 업소로 늘어났고 인근 칠보면에도 4개 업소가 성업을 이루고 있다.

식당도 특화돼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들고 가면 1근당 5천원씩만 받고 야채와 양념을 제공하는 식당이 크게 성업 중인 것.

이로 인해 면소재지를 관통하는 2차선 도로는 밀려든 차량으로 극심한 혼잡 양상을 빚어 교통난 해소를 위해 금년 1월 16일부터 도심처럼 홀짝수일에 맞추어 한차로 주차제까지 시행하고 있다.

'다시 북적대는 장터' 정읍 제1시장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40-50%의 휴·폐업으로 썰렁한 현실이지만 정읍 제1시장은 99%가 개점영업에 나서고 있다. 일단 문 닫은 상가가 없어야 찾는 이들의 믿음을 살 수 있다는 지론이다. 무엇보다 350여 점포주들이 자발적으로 재래시장 가꾸기에 나서 희망의 빛을 찾아가고 있다.

“굴비하면 인근 타 지역을 떠 올리지만 제1시장 굴비는 먹어본 사람이 다시 찾고 있을 정도로 품질을 소비자가 보장하고 있다” 며 “깔끔하게 비늘을 벗기고, 말리고 건조하는 과정을 특화, 한 단계 끌어올린 맛으로 전국시장을 노크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시장성을 읽는 열정과 섬세한 노하우로 전혀 상상치 못했던 곳에서 경쟁력을 찾기 시작한 셈이다.

굴비가 제1시장의 소프트웨어라면 하드웨어에 대한 자신감도 만만치 않다.

점포 앞마다 늘어선 노점을 정리하고 쇼핑카가 드나들 수 있도록 넓은 동선을 확보하며, 젊은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주차공간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라는 진단을 내놓은 상인회는 주차공간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정읍 제 1시장의 힘은 ‘재래시장 살리기는 시장의 주체인 상인들의 손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에 있다. 소비자들의 외면을 시장구조 자체에서 찾아내고 이를 극복해 내려는 노력은 그래서 아름답다. 상가 안에 넓은 동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수 진열대를 포기해야 하는 뼈를 깎는 아픔이 뒤따르겠지만 그런 희생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모아낸 것도 쉬운 일은 아닐 듯 싶다.

“산청 덕산장, 지리산 자연 산나물 총집합”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자리한 덕산시장(덕산공설시장)은 그야말로 지리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약초가 5일마다 이곳에 총집결한다.

당연히 외지 관광객을 비롯 중간 상인들이 4일과 9일만 되면 군침을 흘리게 마련.

덕산 5일장은 ‘고사리, 영지버섯, 우산나물, 둥굴레, 다래순, 더덕, 느릅나무, 해동피, 구지뽕’ 등등 지리산에서 채취한 갖가지 나물과 약초에 등 그 다양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국민 건강을 책임질 보약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덕산시장(1958년 개설)은 48년의 역사를 지녔다.

지난 98년 재건축하면서 현대화를 기해 상인 점포 52곳과 40여명의 노점상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 방문객이 하루 300여명으로 그리 많지 않은 아담한 장터지만 산나물(5월)과 송이(9월), 곶감(12월과 1·2월) 철에는 외지 관광객이 입소문 타고 몰려든다고 한다.

특히 웰빙 열풍을 타고 신토불이 토산물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천왕봉의 기운을 함유한 토속 약초와 산나물, 굳이 몸에 좋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덕산 곶감을 비롯, 벌꿀, 밤, 딸기, 작설차로 연간 200여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등 지리산 특산물의 은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전국의 재래시장이 모두 이처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 만은 아니다. 실패한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실패에서 성공의 비결을 찾아보자.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건축한 상가가 분양이 안되거나 불황에 허덕인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주민 같으면 빈털터리 거지가 되거나 ‘쩐의 전쟁’ 같은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했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또한 지역 경제의 중추적인 성장 동력원이 어느 날 갑자기 활력을 잃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면 이를 지켜보는 심정은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현대화 시장으로 변신 후 어려움을 호소하는 장성 사창시장과 찬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다 이제는 낡은 사진첩의 주인공이 돼버린 담양 죽물시장의 퇴락 원인에서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보자.

현대화된 장성 사창시장 애물단지로 전락

장성군이 지난 98년 사업비 12억7500만원을 들여 지은 사창 현대식 시장건물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임대가 거의 안된 채 방치되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시장건물 2층을 삼계면 복지회관으로 용도를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1층은 여전히 텅 비어있어 아까운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

사창 5일시장의 장옥을 허물고 사창시장을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은 지난 97년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되면서 장성군은 96년 당시 7900명이었던 삼계면 인구를 97년 3만2천명으로 늘어 날 것으로 추정하고 인근 함평 영광 고창의 일부 면과 상무대 면회객 등을 포함 4만6000명의 시장이용인구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시작했다.

그러나 장성군의 시장이용인구에 대한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 상무대 이전이 거의 완료될 무렵인 97년 삼계면의 인구는 8000여명에 머물렀고 더 이상의 인구유입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군은 97년 8월 국비 3억과 도비 1억 그리고 군비 1억 4800만원과 지방채(장성군의 빚) 발행 7억2800만원 등 총사업비 12억 7500만원을 들여 공사를 강행, 98년 4월 2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한 현대식 사창시장건물을 완공했다.

건물이 완공된 후 장성군의 적극적인 임대홍보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임차인이 나서지 않아 반년이 넘게 빈 건물로 놀리다가 같은 해 11월 송모씨가 이 건물 1층을 보증금 8500만원에 임대료 3600만원으로 임차하여 마트를 운영하였으나 장사가 안돼 시작한지 7~8개월 남짓 지나면서 부도를 내고 말았다.

2000년 3월 다시 신모씨가 장성군의 홍보만을 믿고 시장조사도 하지 않은 체 계약금 850만원을 걸고 3년 계약을 했으나 장사도 하기 전에 계약금을 포기하고 말았다.

게다가 시장건물을 임대해 그 임대수익으로 갚을 예정으로 건물 신축 과정에서 빌려온 7억2700만원에 대한 원금과 이자가 부담이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2001년 장성군은 군의회의 동의를 얻어 일반회계에서 7억여원을 꺼내 차입금을 갚아 재정자립도도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뼈아픈 군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꼴이 되었다.

담양죽물시장 성장 동력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담양 죽물시장의 역사는 어느 때부터인지 확실한 기록이 없으나 약 350여년전부터 담양읍 만성리 관어정 아래 객사리 쪽 넓다란 하상(河床)에 자연 발생적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이른 새벽에 죽물을 가득 지고 나오면 호랑이도 도망쳐 버린다’는 말도 있는데 부피가 많은 죽물을 태산과 같이 지고 오는 장사에는 호랑이 같은 맹수도 무서웠던 모양이다.

죽물시장이 이곳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장소가 넓어서 좋고, 자갈이 깔려 있어서 죽물을 땅에 놓아도 흙이 묻지 않는 이점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하상이 변하면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죽물을 땅에 놓을 수 없고 눈, 비를 맞은 죽물은 그 독특한 노란 색채가 흰색으로 변하면서 마디가 끊어지고 원형이 뒤틀리는 등의 피해가 늘어났다.

이에 담양군은 1980년에 市場美와 품질 보존책을 도모코자 2.3평 규모의 시멘트 진열대 140개를 설치하고 고수부지 정리를 하여 죽물시장의 면모를 새롭게 하는 등 그 당시로는 드물게 시장 현대화 사업을 펼쳤다.

현대화된 담양의 죽물시장은 전국에서 하나 밖에 없는 특유한 시장이며 타지방에서 생산된 죽세품도 이곳에 집산 판매 될 정도로 특화된 시장으로서 천년만년 지속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충만했다.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의 대나무는 만사형통의 재료로 인근에서 만들어진 갖가지 죽물이 담양 죽물시장에 모였다가 전국으로 나갔고 멀리 중국까지도 수출될 정도로 담양엔 대나무로 거둔 돈이 흔해 든든한 경제문화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80년대 초까지도 담양 죽물시장은 흥청거려서 "대나무로 돈을 긁었다"는 말은 아직도 상인들 사이에선 즐거운 추억이다.

그러나 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죽물시장도 근대화의 물결에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콘크리트 주차장에게 자리를 내어준 채 옛 영화만 간직하고 있고 몇몇 죽물상가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85년경 대나무 자리를 시작으로 대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한 중국산 죽물은 종류를 기하급수로 늘리며 죽물의 본향 담양까지 "완전 점령"했다. 아무리 국경 없는 글로벌 경제시대라 하지만 담양의 자존심인 죽물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중국산이 값이 매우 싸다. 가격에 비해 기능성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의 손이 국내산보다 중국산으로 갔고 이젠 도저히 중국산을 당해낼 도리가 없어 보인다.

아예 우리 죽물을 중국으로 들고 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전량 수입하는 일이 흔해서, 크기와 디자인이 판박이인 상품이 즐비하다. 이렇게 특정 제품의 판박이 상품이 나오면 그 제품의 원형인 국내산 제품은 상인들 말로 "죽어 버린다".

최근 들어 담양군이 많은 예산으로 사유지였던 대밭을 사들여 '죽녹원'을 운영하고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담양군이 죽물의 옛 명성 살리기에 백기를 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직 요원해 보이지만 이런 노력은 죽향 담양을 되살리는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규모나 소유형태, 운영방식 등은 각기 다르지만 성공한 시장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장을 둘러싼 제반 여건의 변화에 시장의 관련 주체 특히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는 점이다.

이들이 나서 '내가 생계를 꾸려가는 시장', '지역주민이 운영하고 지역주민이 이용하는 시장'을 유지·발전하기 위해 서로 협의하고 노력하였다. 즉 상인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현대식 장비와 기법으로 무장한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재래시장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고, 그 결과 시장이 활성화 될 수 있었다. 결국 재래시장의 활성화는 상인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시장의 부활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재래시장 활성화는 우리의 전통시장이 갖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장사하고 있는 영세 상인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의 문제를 논의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아나가며, 그 과정에서 전문가와 행정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종대 記者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