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공특위 및 광주특위 합동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증언도중 야당의원들로부터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면서 장내가 소란해지자 문동환 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하고 있다. (1988.12.31)

“전두환은 ‘연희동’에만 있지 않다. 우리 주변 곳곳에 전두환이 있다. 삶의 공동체보다는 탐욕을 좇는 모든 사람과 그런 사회적 분위기, 이게 모두 전두환이다.”

최근 발간된 <만화 전두환>의 저자 백무현 화백(서울신문 시사만평가)의 말이다. 실제로 ‘전두환 시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합천군의 ‘일해공원’ 추진 계획, 팬클럽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의 출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여기 ‘또 다른 전두환’의 원조에 해당하는 한 기자 출신 의원의 드라마 같은 인생 내력을 소개한다.

1980년 5월 27일. 신군부의 ‘화려한 휴가’는 끝났다. 권력의 중심은 빠르게 이동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최규하를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8월 27일 전두환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 3개월 동안 수많은 군상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이 있었다.

김길홍. 1980년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으나 이후 5공에서 청와대 비서관, 6공에서 민정당 전국구 의원, 문민정부에서 지역구 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아마도 김길홍 기자만큼 전두환 찬양에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1980년 8월 19일부터 23일까지 4회에 걸쳐 ‘새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 시리즈를 연재했다. 전역도 하지 않은 현역 군인을 ‘새시대 영도자’로 만든 것이다.

이 글은 전두환의 출생과 가계부터 권력에 오르기까지의 인생역정을 기술하고 있는데 마치 이성계의 공덕을 적은 정도전의 사초(史草)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중에서 몇 대목만 골라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련번호와 소제목은 기자가 임의로 붙여본 것임을 밝혀둔다.

1탄-신비한 탄생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소백산 줄기의 용덕산 기슭 87가구가 모여 사는 내동마을이 새 시도자로 부각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의 고향이다…물의 흐름과는 달리 남에서 북으로 역곡하는 지세의 한복판이라 해서 예로부터 큰 인물이 난다고 전해 오고 있다.”(1980.8.21)

2탄-생도의 우정

“진해 육사 연병장은 봄부터 가을까지 파란 클로버로 뒤덮인다. 학과 후의 자유시간이 되면 전두환 상임위원장은 마음에 맞는 생도들과 이곳에 나와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홍두 소년기의 부푼 꿈을 얘기하고 시국에 관한 토론과 갖가지 화제로 밤 가는 줄 모르면서 제복의 우정을 나누었다.”(1980.8.22)

3탄-과감한 혁명

“정의감에 투철한 이념집단과 새시대 주도세력의 뒷받침을 받고 또 스스로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천성(天性)을 지녔던 까닭에 전 위원장은 국보위 상임위가 주관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회개혁운동과 사회정화작업을 과감하게 단행할 수 있었다.”(1980.8.19)

김길홍 기자는 전두환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10?26 이후 새역사 창조 주도한 전두환 대통령’이라는 후속기사를 썼다. 마침내 ‘현대판 용비어천가’를 완간한 것이다. 전두환 찬양 시리즈의 완결편에 해당되는 이 기사에는, 제3자의 입을 빌린 이런 표현도 등장한다.

“만약 전두환 대통령이 그때 보안사령관직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없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운명과 진로가 달라졌을 것이다.”(1980.8.27)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아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기자로서는 치욕적인 물증임에 분명하다. 그 덕분이었을까. 김길홍 기자는 1982년 청와대 언론담당 2급 비서관과 1984년 1급 비서관을 거쳐 6공 때는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한마디로 전두환 찬양의 대가로 출세가도를 달린 것이다.

그러나 15년 후에 김길홍 의원은 너무나 극적인 반전(反轉)을 선보인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며 민심도 잃기 시작한 대통령 김영삼은 1995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두환을 비롯한 5?6공 세력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자신이 총재로 있던 신한국당 의원들로 하여금 5?18특별법안에 서명토록 지시했다.

당시 신한국당 소속이었던 김길홍 의원. 그렇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여의도통신 정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