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만화 전두환>(시대의 창)이 세간의 화제다. 광주민중항쟁을 경험하지 못했던 20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이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서 가졌을 법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라는 원초적 의문을 확실하고도 입체적으로 풀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 전두환>에 대한 기사는 이미 많은 언론 매체에 실렸다. 여기서는 기존 언론에 언급되지 않았거나 국회와의 특수관계를 보여주는 몇 장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편집자주)

입장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화려한 휴가>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만화 전두환>은 2년 전에 나왔던 <만화 박정희>의 후속작이다. 저자인 백무현 화백은 “<만화 박정희>가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면, <만화 전두환>은 ‘시대’에 방점을 찍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백 화백은 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1년 6개월 동안 60여권의 단행본 등 방대한 자료를 독파했다고 한다.

영화와 이름이 같은 ‘화려한 휴가’라는 부제가 달린 1권은 5월 광주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분량이 무려 150여쪽에 이르고 있다. 이런 분량으로 광주민중항쟁을 만화로 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소설과 이름이 같은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부제가 붙은 2권은 5공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우리들’에 대한 헌사이다. 저자는 “여기서 ‘인간’은 ‘뜨겁게 살았던 우리들’이다”라고 설명했다.

만화에 등장한 17대 의원은 누구?

17대 국회의원 중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인물은 신계륜(의원직 상실), 유시민, 심재철, 유기홍 의원이다. 이들 4명은 1권 2막 3장인 ‘통한의 오판…서울역 회군’에서 일대 논쟁을 벌인다.

1980년 5월 15일 비상계엄 해제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10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서울역에 집결했다. 그런데 저녁이 되면서 공수부대가 효창운동장에 집결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학생 지도부는 시위를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가자는 측과 서울역을 끝까지 사수하자는 측으로 갈렸다.

저자는 신계륜(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유시민(서울대 대의원회 의장) 의원을 ‘서울역 사수파’로, 심재철(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유기홍(서울대 총학생회 부활추진위) 의원을 ‘서울역 회군파’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회군으로 결정난 이 논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리는 저자가 작품에서 재연한,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신군부 지도부의 다음과 같은 대화에서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뭐야? 10만이나 되는 학생 놈들이 청와대로 쳐들어올 기세라고? 이거 큰일이데이…인마들을 우짜노….”
“이거 막지 못하면 우리 계획도 모두 무산되는 거 아이가?”
“10만명이라… 이 노무 자슥들을 그냥….”
“사령관님!! 대학생 놈들이 공수부대 집결에 겁먹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답니다.”
“그으래?”
“휴!! 살았데이!!”
“이젠 몰아쳐야겠어. 학생 놈들 보니까 겁쟁이들이야!!”
“그렇습니다. 하하하.”

실제로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발간된 다큐집 <6월항쟁을 기록하다>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참고로 이 글은 신계륜 전 의원이 작성한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15일 회군 결정을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계속 연좌하는 전술을 채택했더라면 광주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하는 가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군을 주장했던 사람이나 반대했던 사람이나 그 가정 앞에 할 말은 없을 것이며 서울역에서 좀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공통적으로 하는 것 같다…하루 뒤 80년 학생 대표들과 학생들은, 광주에서 시작된 피의 학살과 처절한 항쟁을 전해 들으면서 학생운동의 낭만에 대하여 가슴 저리게 반성하면서 진정으로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냉정해야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1권 67쪽)

신계륜, 유시민 vs 심재철, 유기홍

그 다음으로 등장한 인물은 김근태 의원. 2권 12막 4장 ‘인간 백정…김근태 전기고문사건’에서 모두 5쪽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현직 의원 중에서는 가장 긴 분량이다. 저자는 ‘인간 백정’ 이근안 등이 1985년 9월 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실에서 김근태(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의원을 상대로 벌였던 살인적인 고문을 상세히 묘사했다.

“아, 오늘로 전기고문, 물고문만 열 번…아, 버틸 수가 없구나. 나의 한계인가…아우슈비츠가 이곳인가….”

저자가 만화에서 재연한 김근태의 독백은 5공 정권 당시 야만적인 국가폭력 앞에서 너무나 약할 수밖에 없었던 한 시민의 처절했던 상황을 잘 말해준다.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해찬 의원은 2권 16막 2장 ‘광주의 진실을 말하라…광주특위’에서 청문회 스타로 등장한다. 1988년 4?26총선 결과 빚어진 여소야대 정국에서 16년 만에 국정감사가 부활했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문회도 열렸다. 당시 막 원내에 진출한 이해찬 의원은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을 상대로 송곳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저자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은 대화로 재연했다.

“5.18 광주사태 이전에 신군부는 12.12 하극상을 일으켰는데…당시 노태우 9사단장은 임의로 사단 병력을 이동시켰나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재가 없이 참모총장을 연행하고 병력을 이동한 전두환.누태우씨의 행위는 반란죄. 항명죄가 아닌가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 행위는 잘못된 것이 많이 있습니다.”
“5.18 광주사태 발포 명령자는 누굽니까?”
“(쩔쩔매면서) 그거야 하급 장교들이…윗선은 모르겠습니다.”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임길동’, ‘맥가이버’ 등의 애칭을 얻었던 임종석 의원은 2권 17막 1장 ‘조국은 하나다…방북 쇼크’에서 등장했다. 그해 6월 29일 밤 한양대에서 그는 임수경 양의 방북을 다음과 같이 전격적으로 알린다.

“전대협 100만 청년학도 여러분!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은 기어이 해냈습니다. 전대협 대표로 임수경 동지가 지금 평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꽃’ 임수경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태우 정권이 대대적인 사상공세를 벌이면서 공안정국이 조성된다. 공교롭게도 임종석 의원의 현재 상임위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이다.

임종석의 통일과 강재섭의 통일

제일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물은 현재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는 강재섭 의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임수경 방북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1989년 6월 무렵 평양에 있었다. 북방정책을 주도하던 ‘6공 황태자’ 박철언과 함께 허담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와 밀담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박철언은 5공 시절이던 1985년부터 북방정책의 선구자였다. <월간조선> 1998년 9월호에 실린 기사 '장세동-김일성 비밀회담의 생생한 대화록'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려 33회에 걸친 비밀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방북을 앞둔 실무자에게 "북한이 원하는 대로 들어 주라"면서 "북측에 불편을 주지 말고 아픈 곳을 먼저 공격하지 마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17일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장세동 안기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제하의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40년 간 김 주석께서 북녘 땅을 이끌어 오시고, 그 동안 평양의 우뚝 솟은 의지를 보고, 이러한 발전을 위하여 심려해 오신 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비록 체제와 이념은 다르지만 주석님의 조국애와 민족애를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기왕에 우리 민족이 전쟁이 아닌 대화를 통해 통일을 추진하려 한다면, 어쩌면 그러한 양보와 이해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런 전력이 있었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마저 사사건건 햇볕정책을 물고 늘어지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갈한 것이 아니겠는가?

"최소한 '달빛정책'이라도 내놓고서 '햇볕정책'을 비판하라."

조금은 아쉬웠던 대목 한 가지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전폭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전남도청으로 진격했다. 저자는 계엄군이 때맞춰 발표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여론조작의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조금 약한 것이 기자로서는 아쉬웠다.

1980년 5월 24일 오후 3시 김대중 조선일보 기자(현 이사 겸 고문)는 광주시 외곽의 한 고개에 서 있었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던 여러 공간 중의 하나인 화정동 고개. 계엄군은 전국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의 간부급 기자들을 이곳으로 초청, 대치 현장을 보여준 뒤 보도자료를 제공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일제히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는 비슷한 논조의 ‘광주사태’ 보도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기자의 ‘광주르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광주시를 서쪽에서 들어가는 폭 40미터의 도로에 화정동이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그 고개의 내리막길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그 바리케이드를 마주 보면서 6백여미터쯤 떨어진 이쪽, 도로 중앙에 철조망과 함께 ‘무기 회수반’이라는 글자가 쓰인 5개의 입간판이 길을 막고 있다. 바로 이곳이 총기의 반납을 기다리고 있는 당국의 전초선이다.”(조선일보 1980년 5월 25일자)

무정부 상태의 광주, 총을 든 난동자…

그로부터 꼬박 8년이 흐른 뒤 국회에서 ‘광주청문회’가 열린 것을 계기로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 받았다. 계엄군이 던져준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었던 김대중 조선일보 기자의 기사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정부 상태의 광주’나 ‘총을 든 난동자들’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주목하고 분노해야 할 것은 이러한 ‘직설적 표현’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

김대중 기자의 기사에 등장하는, ‘동쪽 너머’와 ‘이쪽’이라는 ‘방향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가 던지는 상징적 의미는 너무나 크다고 본다. 그렇다. 김대중 기자에게 광주는 단지 난동자들이 설치는 무법천지의 ‘동쪽 너머’일 뿐이었다. 그는 역사의 가해자가 있는 ‘이쪽’에서 피해자가 있는 ‘저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기자로서(!) 현장에 들어가지 않고 정황을 사실 그대로 보도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렇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김대중 기자가 상징하는 한국언론은 계엄군이 던져주는 보도자료만 가지고 과감하게 기사를 썼다. 실제로 한국언론이 광주르포 기사를 쓰면서 ‘독자적인 취재나 반론권 보장 없이’ 계엄군의 보도자료에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김진규 서울신문 기자의 ‘광주르포’ 기사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그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광주는 죽음의 도시, 공포의 도시가 되어 있다. 포화가 잠시 멎은 전쟁 속의 고요같은 것이 온 시가를 짓누르고 있었다. 24일 하오 3시, 광주시 화정동 광주육군통합병원 입구에서 시가를 향해 8백미터 거리를 두고 계엄군과 과격파 난동자들이 맞서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서울신문 1980년 5월 25일자)

김진규 기자 역시 김대중 기자처럼 시민군을 ‘과격파 난동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선의 거리에 대한 인식의 차이만 있을 뿐(김대중 기자는 ‘6백여미터’, 김진규 기자는 ‘8백미터’라고 기술했다. 하기는 보도자료에 거리까지 적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보도자료를 가지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진규 기자의 기사는 이렇게 계속 이어졌다.

“광주는 현재 외곽 사방이 계엄군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시가지는 공권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군인을 잡아 낫으로 찔러 죽이고 껍질을 벗기는 만행을 저질렀는가 하면 한국 방송은 못 믿으니 이북 방송을 들으라 권유하는 사례 그리고 사상범 등 중범이 가득한 광주교도소를 7차례나 습격하고 그때마다 어린이?중학생을 앞장세운 행태 등은 도저히 데모나 소요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당국의 설명이다.”(서울신문 1980년 5월 25일자)

이런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는 신문뿐만 아니라 그날 저녁 방송 9시 뉴스에서도 집중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런 보도는 다음 날에도 계속 이어졌다.

제도언론, 계엄군을 지원사격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광주에서 군인을 잡아 낫으로 찔러 죽이고 껍질을 벗기는 만행, 한국 방송은 못 믿으니 이북 방송을 들으라 권유하는 사례, 사상범 등 중범이 가득한 광주교도소를 7차례나 습격하고 그때마다 어린이와 중학생을 앞장세운 행태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홍수를 이루는 상황에서 과연 그 누가 광주를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었겠는가.

광주는 여론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외로운 섬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27일 새벽 4시. 3백여명의 시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계엄군 1만2천여명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전남도청으로 진격했다. 그날 저녁 9시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계엄군을 향해 뜨거운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진압 이틀 전부터 계엄군이 의도한 대로 여론이 조성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군부 계엄군이 총칼로 시민을 도륙하고 있을 때 제도권 언론은 펜과 카메라로 지원사격을 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만화 전두환>에서도 소개한, 1980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광주 시민에게 매우 잔인한 폭력이었다.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 6?25의 국가적 전란 때를 빼고는 가장 난삽했던 사태에 직면한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여의도통신 정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