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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洋을 向한 推進의 原動力
서영준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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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8.17  11: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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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석과 아울러 재평가 돼야”



담양읍에 진입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만나기 전, 멀고도 먼 그 예부터 우릴 지켜주던 큰 형 같은 기둥이 있었으니 바로 보물 제505호 석당간(石幢竿)이다.
읍 객사리 45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단 윗면에서 맨 끝까진 12.6m로 당간지주는 2.95m이다. 7.68m의 8각 석당간과 4.32m의 철통형 당간으로 구성됐으며 상단엔 철제 보륜이 있어 풍령이 달려 있고 첨단에는 48cm 높이의 삼지창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석당간(石幢竿). 사람들은 석당간이라 하기보단 ‘종대’란 말을 많이 쓴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은 종대가 서있는 삼거리를 ‘종대삼거리’라 하며 옆에 있는 5층석탑과 연관해 많이들 기억한다.
그러나 이 ‘종대’가 언제부터 불교식 ‘석당간’으로 이름 지워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전에 이미 석도(石棹)란 이름을 지니고 있었으니 석도(石棹)라 해야 연원에 따른 의미가 명확하다.


석당간(石幢竿)과 석도(石棹)




담양평야를 보듬으며 지긋이 내려 보는 남산. 그 아랫자락에 자리 잡은 이 석도는 풍수지리설과 관련이 깊다.
이 석도는 1172년 고려 명종 2년에 읍지(邑址)를 담주(潭州)로부터 옮기던 때 처음 세워졌다고 추정되며 당시엔 담양을 상추성(尙秋城)이라 했다. 그런데 그 지형이 행주형(行舟形, 나룻배의 모양, 즉 도시가 물위에 떠 있는 모양)같아 풍수해를 막기 위한 염원을 담아 이를 세웠다 한다.
이 석도(石棹)란 이름은 1756년(영조 32년) 담양부사로 재직하던 이석희가 그간의 자료를 수집해 편집한 추성지(秋城誌, 담양읍지)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주변의 석탑과 세워진 연유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왜 현대에 이르러 갑자기 ‘석당간(石幢竿)’이란 이름을 붙었는지 모르겠다.
전설과 비문, 문헌에 의하면 이는 분명 풍수지리상 배와 관련된 물건인데 갑자기 ‘깃발을 매다는 긴 장대’라 이름을 붙여 놓았으니 왜곡되어도 한참 왜곡됐다.
또 근래 간행된 문헌을 보면 온통 이를 “‘돛’을 의미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에도 문제가 있다.
위의 추성지에 의하면 동변면의 경계를 “初境自官門外 客舍內里 始終境內洞里五里(처음 면경계는 관문 밖 객사내리로 시작하여 종점은 경계안 동리 5리이다. 다시 요즘으로 말하면 담양동초교 앞 사거리에서 2km지점)”라 하고 있다.

또 석도는 “在府東五里 高百餘尺 大一圍餘 以鐵索鎭之冠其上(담양부의 동쪽 5리에 있다. 높이 백 여 척이 되고 크기가 한 아름이 넘으며 철삭으로 그 위를 진정시켰다)”라 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석도가 자리한 위치는 담양읍의 동쪽 가장자리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3백여년 전에도 담양읍의 가장자리는 현재 석도가 서있는 자리인 것이다. 따라서 ‘돛’을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왜냐하면 돛을 배의 끝 가장자리에 세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미 3백여년 전부터 문헌으로 담양의 형국이 배와 같아 그 가장자리에 석도(돌石 노 또는 노 저을 棹) 즉 ‘돌노’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후세에 얼른보기에 돛대처럼 보인다고 해서 원이름을 무시하고 ‘노’를 버리고 뜬금없이 ‘돛’이라 해석하고 있으니 도(棹)와 장(檣)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석도 앞에 세워진 비에는 “石棹之立年不可考 盖自設邑始幾 年至甲寅爲大風折以木代立昨春 又頹今則如初重建歲己亥三月也 崇禎紀元後四己亥三月日知府洪耆燮記”라 하여 “석도를 처음 세운 때는 알 수 없지만 대게 처음 읍을 설치한 때다. 갑인년(1794년)에 큰 바람에 쓰러진 것을 나무로 대신 세웠다가 작년 봄(무술년, 목조건립 후 44년 후인 1838년)에 또 훼손되어 처음과 같이 다시 세운 것이 기해(1839년, 헌종 5년) 3월이다. 숭정기원후 4기해 3월 일 부사 홍기섭 기록하다.”고 해 잠깐 목조로 세워졌다가 원 모습을 찾아 다시 세운 것임을 알 수 있어 현재의 모양이 본래의 모양임을 조심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담양이라는 배’는 바람의 힘으로 돛을 밀어 나아가는 범선(帆船)이 아니라 ‘노를 저어 가는 배’인 것이다.
‘석당간’이나 ‘돛’을 운운하는 학자들이 다시 와 저 석도를 보면 꼭 물을 젓는 ‘노’처럼 생겼을 터이니 앞으로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사공석과 재평가

바로 잡아야 할 것은 명칭이나 잘 못된 해석만이 아니다. 석도가 가지는 의미와 문화재로서의 평가도 다시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전국에 담양의 석도와 유사한 문화재는 총27개로 대부분 하부 지주만 남아있고 원형이 보존된 것은 용두사지철당간과 동문외석당간, 담양읍석당간 단 세 개다. 그중 철조와 석조가 혼합된 형태는 담양의 것이 유일하며 유려한 장식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용두사지철당간(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은 국보 제41호로 지정돼 있으며 건립연대가 명문으로 남아있으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동문외석당간(전남 나주시 성북동 108-1번지)은 보물 제49호로 지정돼 있다.
조형미를 따져보면 담양의 석도가 가장 화려하다. 맨 꼭대기 첨단부위에 삼지창과 철산, 풍경은 담양의 석도에서만 볼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공석’이 함께 하는 유일한 석도라는 것이다.

‘천변리석인상’(문화재자료 제21호, 지정일: 1984년 2월 29일)이라 명명된 이 ‘사공석’은 부사 홍기섭이 세운 것으로 홍 부사가 석도를 중건하기 1년 전 1838년(헌종 4년)에 역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배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공이 있어야 한다 하여 세운 것이다.
이 처럼 그 도시의 풍수지리적 연원과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표현물이 그 원형에 따라 중건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일이 짧다하여 하등으로 취급되고 보다 높은 수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역사 보존의 노력


▲ 1980년 9월 간행된 ‘담양군지’에는 “풍령이 두 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은 풍령이 하나였는지 두 개였는지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러는 사이 소중한 문화재는 소실돼 가고 있다.

2004년 군이 실시한 ‘담양읍석당간 정밀안전진단 보고서’에 의하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순창방면으로 약 3.4m 떨어진 메티세콰이어 나무 1그루가 습윤환경을 지속시켜 석재와 철재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거인나무로 분류되고 있는 이 나무의 뿌리가 석당간의 하부에 근접해 지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농경지 방향으로 약 2.2m 떨어진 곳에 전신주 1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도로를 건너 대면한 곳에 세워진 전신주와 전도방지용 강선을 이용해 긴결돼 있어 긴결용 강선의 파단이 발생되거나 강풍 등으로 강선에 심한 진동이 발생될 경우 심한 부식과 편기가 발생돼 석당산 상부 철재의 손상이나 이탈이 우려된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신주가 겨우 2.2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외관을 크게 손상하고 있으며 상호 연결된 두 전신주 중 하나가 변위나 변형이 심할 때 문화재 보존에 큰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군관계자는 “인접한 농경지는 계속 매입 중이며 이미 46-1, 46-2번지는 매입한 상황이다”고 밝히고 “주변 5층석탑과 연계해 삼거리 전역을 역사소공원으로 가꾸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나 예산 운용상 가시적인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전신주 문제는 “이설에 노력하고 있으나 관계기관의 의지박약으로 협조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문화재 보호를 위해 공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주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공석은 도시계획도로 개설시 이전을 계획했으나 문화재 특성상 이전을 포기했으며 이로 인해 인근주택과 협상에 난항을 겪어 현재로서는 현 위치에서 철책 교체와 전신주 이전 등 전면적인 보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번 취재를 통해 철통에 음각된 글자를 최초로 밝혀내는 성과를 올렸다.

野形行舟 石棹屹然

於千万年 與國偕存

己亥暮春 知府洪耆燮

들판이 달리는 배와 같아 석도를 우뚝 세우니

천만년동안 나라와 더불어 함께 하라 (與는 약자로 쓰였음)

기해년 늦봄(음력 4월) 부사 홍기섭

그러나 한 번도 해체된 적이 없어 철통부와 석조부 맞닿는 부분이 어떻게 연결됐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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