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저주라고 들어보셨나? 펠레가 공식 석상에서 한 경기 예측은 반드시 반대의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이긴다고 했지만 결과는 예선탈락. 74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점쳤지만 결과는 8강 탈락.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의 약진을 예견했지만 셋 다 탈락.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 우승을 점쳤지만 탈락.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와 이탈리아의 결승 격돌을 예상했지만 두 나라 모두 결승에 오르기 전에 걸러졌다.

저주 시리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콜롬비아와 독일 우승을 점쳤지만 콜롬비아는 조 예선 탈락, 독일은 8강 탈락이었다. 그 해 브라질은 자격도 없다고 했는데 결과는 브라질의 우승으로 끝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을 우승 후보로 꼽았는데 조 예선에서 탈락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프랑스 우승을 점쳤지만, 기억하실 거다. 조 예선에서 탈락했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한국이 스위스를 이기고 예선을 통과할 것이라 했는데 어떻게 됐나?

‘펠레의 저주’ 능가하는 ‘대선의 저주’

정말이지 하나도 빠짐없이 빗나갔다. 아니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낙관적으로 전망한 나라는 다 미끄러졌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분들이 있다. ‘이길 것’이라고 이야기한 후보가 항상 지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분이다. 대표적인 몇 사람을 꼽아본다.

우선 김동길 전 연세대 명예교수이다. 이 분은 1987년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모처럼 다시 시작된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를 밀었다. 그러나 떨어졌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정주영 후보를 밀었다. 그러나 떨어졌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밀었다. 그러나 떨어졌다. 2002년 16대 때 다시 이회창 씨를 밀었다. 역시 떨어졌다.

또 다른 ‘저주’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이분은 1987년 민통련이라는 재야단체에 몸담고 있으면서 반 노태우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그해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1992년에는 김대중 민주당 후보를 밀었다. 하지만 낙선했다.

1997년에는 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통합해 한나라당으로 출범하면서 이회창 후보를 밀었고, 역시 쓴 잔을 마셔야 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맞붙긴 했지만 어쨌든 대선 국면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그 뒤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여당 사람이 됐지만, 이 분 역시 지난 네 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승리감을 맛보지 못했다.

다음 이재오의 저주다. 이건 김문수의 저주기도 하다. 1987년 대선 때 민통련 내부에서 원로그룹과 각을 세우긴 했지만 ‘반 노태우’ 편에 선 것만은 확실하다. 1992년 대선? 그 때는 누구를 지지하고 말고 할 처지가 못 됐다. 속해 있던 민중당에 간첩 자금이 유입됐다는, 이른바 이선실 간첩사건 때문에 하여튼 곤욕을 치르던 때였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차출된 이재오는 김문수와 더불어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에 입당한다. 그리고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해 내리 도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있다. 홍사덕의 저주이다.

홍사덕은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하면서 김영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야당 주자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 때 동지가 홍사덕, 조순형, 이철, 박찬종, 허경구였다. 어쨌든 그 때 노태우를 지지하지 않았다.

1992년 대선 때는 통합된 민주당의 대변인이었다. 김대중 후보를 밀었다. 그러다 문민정부 때 정무장관으로 발탁돼 김영삼 대통령 밑으로 들어갔다. 1997년 대선 그 날까지 정무장관이었다. 정권교체 되라고 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를 찍었을까? 어쨌든 알 수 없는 일이다. 2002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씨를 밀었다.

마지막으로 손학규의 저주이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1993년 광명 보궐선거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하기 전까지는 소장파 학자였다. 어쨌든 군부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인 평가를 내놓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노태우, 김영삼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을 공산이 대단히 높다. 그 후 손학규 전 지사는 정치에 입문한 순간부터 최근까지 한나라당에 속했다. 당연히 한나라당 후보를 밀었겠지? 그러나 당선은 딴 당 후보가 됐다.

자, 그렇다면 지금까지 거론된 김동길, 이부영, 이재오, 홍사덕, 손학규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그림이 나온다. 김동길 전 교수는 이명박 후보, 이부영 전 의장은 현재 지지후보는 없지만 범여권에 속한 인물이다. 그 다음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후보캠프의 좌장이고, 홍사덕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원장이다. 손학규 후보는 범여권 대선 후보이다. 이 치열한 다섯 명의 후보 중에 누가 ‘저주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궁금하다.

100% 성공률 ‘코리아나’를 주목하라?

한편 ‘저주’의 대척점에 선 ‘축복’의 주인공도 살펴보자. 역대 대선에서 하여튼 미는 사람마다 되는 경우 말이다. 우선 ‘손에 손잡고’를 부른 코리아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를 밀었다. 나머지 대선에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여튼 대선에 참여했을 때마다 그 후보가 됐다. 대선 준비하는 분들, 이 분들을 주목하시라.

그리고 또 한 명. 이 분은 1992년, 1997년, 2002년에 밀었거나 지지했던 후보가 모두 당선됐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누굴까? 공통분모를 찾기 힘든데, 바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다. 이 분은 1992년 대선에는 김영삼 후보가 속한 민자당의 대표위원이었다.

1997년 대선에는 DJP공조를 통해 김대중 후보를 밀었다. 2002년 대선 때는 명시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 반대를 분명히 언급했다. “대통령 할 자격이 없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한 이인제 의원에 대해 야단쳤다.

한편 김종필 총재는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는 “급진좌경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하지만, 특정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두고 자민련 내부에서는 사실상 노무현 후보 지지의 뜻을 표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김종필 전 총재의 말 중에 아직도 가슴에 남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대선은 딱 두 달이면 돼!”라는 말이었다. /김용민 여의도통신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