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여의도 보고서> 출간한 이희열 기자

“술 마시면 자식 걱정하고, 대출 받아 전셋집 얻을 궁리하는 국회의원들 역시 우리 이웃입니다.”
‘국회 출입기자’라고 밝힌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질문. “국회의원들은 매일 그렇게 싸우나요?” 대중이 의원들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안다. 의원들이 적어도 ‘매일’ 싸움질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왜냐. 기자들은 의원들의 ‘다른’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 감’은 아니다. 기자들끼리 입에 오르내리다 말뿐. 의원들의 색다른 모습, 이웃같이 푸근한 모습들을 담아 대통령부터 일개 국민을 대상으로 ‘보고서’를 쓴 사람이 있다.
지난 2일 <말랑~말랑 여의도 보고서>(이하 말랑~말랑 보고서) 출판기념회를 마친 저자 이희열 기자를 그의 일터인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내년이면 근속연수 20년차가 되는 이 기자는 편집국 영상취재부 부장을 맡고 있다.
한 치 오차도 없이 각지고 딱딱한 건물이 빼곡한 여의도 국회에서 <말랑~말랑 보고서>를 들고 나타난 이 기자. 그는 대중들이 정치인의 ‘뒷이야기’에 보내는 높은 관심을 보고 블로그(책 제목과 같다)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자가 풀어놓는 뒷이야기는 단순한 ‘뒤 담화(談話)’가 아니다.

사람냄새 실은 의원 뒷 담화(談話)

“입법기관 높은 자리의 국회의원. 그들도 술 한 잔 들이켜면 돈 걱정하고, 대출 받아 전셋집 마련할 고민하고, 자식 걱정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중은 의원들의 인간적인 면과는 유리돼 있어요. ‘정치판?정치꾼’이라며 욕만 하죠. 하지만 우리 삶에서 정치를 뗄 수도 없고, 국회의원을 없앨 수도 없죠. 어차피 함께 해야 할 의원이라면 그들의 인간적인 면도 보고 애환도 들어보자는 것. 그것이 말랑~말랑 보고서의 목표죠.”
때문에 말랑~말랑 보고서는 의원들의 정치활동보다 활동 중에 드러나는 의외의 모습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공주’ 같은 박근혜 의원이 찢어진 우산을 받치고 있는 장면. ‘한 판 싸움’을 위해 밤새 의원회관에서 밤을 잊고 공부하는 의원.
“국정감사를 위해 잠 못 자고 밤새 공부하는 의원들도 있죠. 열심히 공부해서 질문하면 격앙된 상태에서 언성을 높인 대목만 화면에 포착되고 방송 되죠. 앞 뒤 맥락 다 자르고. 실제 이상으로 의원들이 폄하되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 연재를 시작했어요. 기사로 쓸 수 없는 이야기들 중에서 의원들의 따뜻하고 사람냄새 나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걸 대중과 같은 눈높이에서 전달할 뿐이죠.”
눈높이를 맞추고 사람냄새를 풍겨서일까. 이 기자의 블로그는 하루 방문자 144명. 총 방문자 수는 1백50만명을 곧 넘어설 기미다. 방문자 중에는 물론 의원들도 있다. 이미 알음알음 의원들도 이 기자들의 블로그를 즐겨 찾는다.
말랑~말랑 보고서가 입소문을 타자 몇몇 의원들은 직접 ‘출연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블로그에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도 많고 “종종 자신을 써달라는 요청도 들려 온다” 하지만 이 기자는 본업이 ‘기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단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이 기자도 블로그를 위한 독립적인 취재를 한 번 했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가 출소한 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당시)과 인터뷰 했어요.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이기 때문이죠. 나도 궁금했던 부분이예요. 김근태 의장의 의중이 어떠했을까. 그 때뿐이었어요. 블로그는 청탁을 받는다고 등록하진 않으니까요. 포항제철 용광로를 식히는 열로 겨울 딸기밭 하우스를 키우는 것처럼. 블로그는 일의 차선일 뿐입니다.”
말랑~말랑하게, 그것도 여의도를 말랑말랑 전달하는 이유 한 가지 더. 주의?주장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블로거에게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기자는 “눈만 뜨면 주의?주장이 담긴 칼럼?사설 심지어 기사까지 넘치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지쳐있을 것”이라며 “내 블로그는 일 하다가도 5분 이내에 보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되도록 짧고 가볍게 쓴다”고 말했다. 때문에 분량 조절이 가장 힘들다고.

‘붕어빵 답변’ 비판은 ‘붕어빵 기사’로?

말랑~말랑을 추구하는 이 기자도 딱딱하게 굳어지는 분야가 있다. 바로 ‘동일 업종’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해 김종대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붕어빵 답변’에 언론은 ‘붕어빵 기사’로 답했다. 조간 ‘ㄱ 신문’ 기사를 한 석간신문이 거의 비슷하게 ‘찍어’ 낸 것. 이 기자는 책에 “펜을 놓든가 아집을 놓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할 때가 된 것 같다”며 기자업과 관련해서는 항상 강한 어조를 유지했다.
이 기자는 기자들이 너무 많은 힘을 가지고 있고 또 힘을 가지려고 하다가 자신의 위치를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기자는 주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절제를 해야 하는 것”이라며 “주가 되려면 직접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정과 객관을 최대 무기로 하는 기자들에게 그것도 현직 기자가 날리는 비판은 매섭다. 하지만 이 기자는 다른 집단보다 내부의 자정목소리가 더 힘 있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역시 ‘가벼운 문체’로 기자 집단 내에서 일상화된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사실 누구든 다른 사람이 비판하는 것을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잖아요. 특히 ‘비판’을 업으로 하는 기자들은 더욱 심하죠. 하지만 같은 업종이니까 남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기자인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이 호소력 있지 않을까 싶어요.”
기자들에게 ‘주가 되려면 직접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고 비판하는 이 기자. 대선?총선을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정치인. 혹시 이 기자도 대선?총선을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말랑~ 말랑한 ‘뒤 담화(談話)’ 대신 ‘주’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1만여 팬들은 어디에서 말랑~말랑한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을까. 이 기자는 정치적 의도라면 헌정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한 것인데, ‘책 좀 많이 팔아볼까’ 하는 출판사의 의도 정도 밖에는 없다며 웃어 보인다. 굳이 또 한 가지를 뽑으라면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날을 출판기념일로 택한 것이다.
“사실 본회의?상임위 회기 중에 의원들이 출판기념회 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본회의?상임위까지 비우게 만들 순 없죠.” 하지만 이내 이 기자는 “정말로 많이 안 왔었어요”라며 살짝 섭섭했던 속내를 드러낸다.
바쁜 일상이 자리가 잡히면서 이 기자는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한다. 4개월간 공백기를 가진 말랑~말랑 보고서가 기대된다.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

김근태의 진정성, 전여옥의 순발력
발췌록 / 말랑말랑 보고서에 담긴 말랑말랑 에피소드

에피소드 1. 총리 차량, 오해하지 마세요

총리 차량 정도면 경찰이 설치한 속도위반 딱지를 겁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중생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고 일반인들의 차량과 마찬가지다. 행사시간에 맞추느라 아무리 바쁘게 가다가도 속도위반 설치 장소 앞에서는 속도를 여민다. 총리 차량이 고속도로든 순환도로든 요금소를 횡 하니 지나가는 것을 보는 중생들이 있다면 괜히 공짜로 간줄 알고 부러워하지 말길 바란다. 비서실에서 미리 다 지불하고 있으니까.
총리 취재를 하면서 경험한 것은 총리가 이것저것 일정이 많다는 것이다. 강남의 코엑스 행사에도 갔다가 집무실에서 외교사절도 만나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한 행사장에서 오래 있을 수도 없고(기분 내켜 연설이라도 길어지면 애타는 쪽은 의전팀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기 위해선 부득불 교통편의가 보장돼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 서로를 안다는 것은 쓸데없는 불평과 불만을 줄어들게 하고 없는 아량이나 배려마저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 2006.09.22

에피소드 2.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김근태 의장

출근하면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새벽에 출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리석고 몹쓸 사람. 하고 많은 기술자 중에 고문기술자가 뭐란 말인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언론에 난 것처럼 정말 마음의 정리가 됐는지, 정치인으로서의 수사가 아닌지를 물었다. 그는 여주교도소에 있었던 이근안 면회건 뒷얘기를 해줬다.
작년인가 추석 직전 여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도봉구청장과 이상락 전 의원 면회를 가려는데 출발 전날 자기를 고문했던 이근안이 같은 교도소에 있다는 걸 알았단다. 면회 맨 나중에 만난 이근안 전 경감. 긴장이 되고 어색한 순간이었는데 무릎을 꿇고 “눈 감을 때까지 사죄하겠다”고 하더란다. 그런데 고맙기는 한데 그 말이 진심일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라고. 눈물조차도 흘리지 않은 사죄. 혹 가석방을 생각하고 저러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더란다. 그래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왔다”는 말을 하고 돌아 왔다고.
그동안 이근안의 사죄가 진심일까라는 생각이 솟구쳐 마음 정리가 안됐는데 어느 목사 얘기를 듣고 정리가 됐단다. 그 목사는 후배 목회자가 교회를 짓다 돈이 없어 공사가 중단되자 자신의 집을 잡혀 지어 줬는데 아직도 돈을 갚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워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 하고 있는데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만 해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했단다. 눈을 감을 때까지 사죄한다는 이근안의 말은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말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신의 영역이고. 그렇게 마음의 정리가 됐단다. 아멘이요 나무아미타불이다. / 2006.11.10

에피소드 3. 전여옥 의원의 몸매 비교

확실히 딱딱함보다는 말랑~말랑이 한수 위다. 인상 팍팍 쓰고 소리만 꽥꽥 지르는 것은 원숭이나 할 짓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해 7월 4일 역도경기장 합동연설회. 노타이 차림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온 이재오 후보 연설 뒤 강재섭 후보 또한 단상에서 말을 하다 말고 양복을 벗어 던지고 이번에는 넥타이까지 덤으로 풀어 제쳐 버렸다.
전여옥. 그녀 또한 가만 넘어 갈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도 벗을 수 있단다. 지방선거 때 밥도 못 먹고 전국방방곡곡 돌아다닌 선거다이어트를 해 몸매도 괜찮다면서. 그렇게 분위기를 띄워놓고서 두 후보를 꼬집는다. “지금이 넥타이 풀고 옷 벗어 던지는 쇼를 할 때입니까?”
오늘 주제는 전여옥의 과거와 현재의 몸매 비교 되겠다. 한때 잘 나갔던 선데이서울 아닌 선데이 연합판이다(그래도 쪼매 켕긴다). 그래도 간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을 기자출신이라는 걸 하나 믿고. 기자실에서 합동연설회 돌발영상을 보면서 벗으라면 벗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이구동성 오, 노우!였다. 그런데 최고위원이 되고서 기자실에 인사를 하러온 전여옥 최고위원의 몸이 정말 과거의 몸매가 아니었다. 합동연설에서 “몸매가 괜찮다”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 2006.07.24

에피소드 4. 유시민 복지부 장관 내정자와의 단독 인터뷰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를 기쁨자(이희열 기자)가 어제 홀로, 단독으로 기어코 만나고야 말았다. 장관에 내정된지 5일, 입각파문으로 대외활동을 전면 중단한지 7일만의 쾌거라 아니할 수 없겠다.
지난해 1월 9일 유 내정자를 의원회관 816호실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윤숙 보좌관의 말대로 요즘 청문회를 준비 중이라니까 처음엔 그냥 그 분위기만 한 컷 하려고 했다. 초심은 그랬다. 정말. 유시민 장관 내정자는 과외 받는 학생처럼 서류를 펴 놓고 얌전히 장윤숙 보좌관과 의료정책에 관한 문제들을 정리하면서 하나씩 짚어 가고 있었다. 저렇게 공부를 하고 있나. 국민연금 개정안 문제도 빠뜨릴 수 없었다. 대한민국 월급쟁이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큰 문제 아닌가. 계속 시험공부 분위기인데 눈치 없이 더 앉아 이거 저거 묻기가 미안하다.
30분쯤 지났다. 스스로 일어난다. 배웅하는 유 내정자에게 마지막으로 차세대 지도자 반열에 오른 걸 축하한다고 하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황급히 손을 젓는다. 떠나는 기쁨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관료가 다 됐다. 아님 원래부터 그랬던가. / 2006.01.10

에피소드 5. 송영선 의원 “나도 처녀예요”

언젠가 국회 146호실에서 열렸던 한나라당 운영위원회의. 회의장으로 들어가면서 미리와 앉아 있던 김희정 의원과 인사를 하고 잠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미리와 기다리고 있던 동료기자들이 심심했던지 이런 모습들을 플래시를 터트리며 마구 찍었다. 김 의원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송영선 의원이 기자들을 보며 한마디 한다. “왜 나는 안 찍어 줘요?” 예의 그 투박한 목소리다.
당시에는 카메라에 찍힐만한 주요 당직을 맡고 있지 않은 초선의원으로 좀 서운했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김희정 의원도 같은 초선인데 말이다(실은 김희정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 당 부대변인 때부터 기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송영선 의원은 당 출신이 아닌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단 탓에 기자들과는 거리가 좀 있는 듯하다.). 내가 웃으면서 말을 돌린다고 “김 의원은 처녀잖아요. 그래서 호감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가 한 리플. “나도 처녀예요”, “예~?” “몰랐어요?”
허걱~ 세상에나… 정말이지, 나는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기자실에 돌아와 국회수첩을 펼쳤다. 53년생. 미 하와이대 정치학박사, 일본 방위대 교수,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 소장…. 그러나 처녀임을 알만한 정보는 없었다. / 200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