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노래방문화는 서민들의 보편화된 일상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술자리를 하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 가는 곳이 노래방이다. 그곳에서는 유행가가 제격이다. 이른바 고상하고 품위 있는 가곡은 노래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유행가는 서민들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유행가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부초와 같은 사람, 실연의 아픔을 맛보고 있는 사람, 사업의 실패로 좌절하고 있는 사람, 정작 찾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 등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는 유행가가 한순간 위안이 돼 주기도 한다.

나는 요즈음 ‘한 방의 불루스’라는 유행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이다. 가수 이름도 모르고, 아직은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지는 못한다. 가사를 제대로 익혀 언젠가는 노래방에 가서 한번 불러볼 생각이다.

그 노래의 가사에는 한 사나이의 하소연이 들어 있다. 그 사나이는 한 때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만나면 먼저 술값을 낼 정도로 호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업이 여의치 않아 그럴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옛날의 기질이 남아 있어, 내일 당장 돈 걱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밤은 내가 쏜다!’면서 호기를 부린다. 그 사나이는 이렇게 큰소리를 친다. “나도 한 때는 잘 나갔다. 오늘 밤은 내가 쏜다. 한 방의 불루스!”

고향을 떠나 살면 무시로 고향집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 고향집에는 여든을 넘긴 할머니도 계시고, 부모님, 형과 누이, 그리고 조카도 있다. 그런데 그 고향집의 대표성은 어머니가 갖고 있다. 가족들 모두가 그리운 대상들이지만 어머니라는 존재 속에 포함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고향집은 어쩐지 구심점을 잃어버린 것 같고 포근한 맛도 덜하다. 설령 다른 가족들과 약간의 갈등과 불화가 있다 하더라도 어머니만 계시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어머니가 안 계시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발길이 뜸해지고 결국에는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말 것이다.

고향도 마찬가지이다. 고향에는 부모형제, 일가친척, 선후배, 그리고 깨북쟁이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대표성을 갖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 타향에 사는 사람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고향집을 찾듯이,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고향으로 달려간다. 우리는 그 누군가에 해당하는 사람이 거처하고 있는 곳을 ‘정거장’이라고 말한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정거장’이라고 부르게 된 모양이다.

나는 직장 문제 때문에 섬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거의 매주 주말이면 고향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형제들도 만나고, 친구와 선후배들도 만난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한 방의 불루스’ 그 후배가 거처하는 정거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한 방의 불루스’ 후배와 자정을 넘기며 술자리를 같이 했다. 요즈음 그는 사정이 무척 어렵다. 그런데 어느새 술값은 미리 계산되어 있었고, 택시비마저 막무가내로 자기가 지불했다. 사정이 어려운 걸 잘 아는데 왜 그러느냐고 거절을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가는 작은 재미 아닙니까?”

그렇다. 우리네 서민들은 가끔씩 자잘한 재미에 엄청난 감동을 맛보면서 사람살이의 힘든 고갯길을 싸묵싸묵 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후배의 하는 일이 잘 풀려 담양의 영원한 ‘한 방의 불루스’로 버티며 고향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설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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