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498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9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이재웅 명지대 경영대학 객원교수가 ‘FTA와 세계경제의 변화, 그리고 아시아 금융통합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코러스(KORUS).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이 신조어는 다분히 중의적이다. 우선 한국(KOREA)과 미국(USA)이라는 두 국가의 시장이 통합됐다는 1차원적 의미가 담겨 있다. 아울러 양국 시장의 통합이 조화(Harmony)의 과정을 거쳐서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협상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희망과 염원도 담겨 있다. 하모니는 코러스(Chorus), 즉 합창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한미FTA가 도리어 비극적 파국을 가져올 것이라는, 협상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비판과 경고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은 세계 3위의 시장블록이 탄생했다. KORUS의 주요 지표를 보면 △경제규모(14조 달러) △참가국가(한국+미국) △인구(3억5천만명) △역내무역규모(13%)로 나타난다. 참고로 EU와 NAFTA의 주요 지표도 살펴보면, EU(경제규모 15조 달러, 참가국가 유럽 27개국, 인구 4억9천만명, 역내무역규모 60%), NAFTA(경제규모 15조 달러, 참가국가 미국+멕시코+캐나다, 인구 4억4천만명, 역내무역규모 40%)로 나타난다. 이 3개의 시장블록은 각각의 분명한 특징도 가지고 있다. 경제와 정치의 통합체인 EU, 가까운 국가들의 자유무역협정인 NAFTA와 달리 KORUS는 먼거리 국가의 상품중심 자유무역협정이다.”

이로써 한미FTA를 바라보는 이재웅 명지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의 입장은 어느 정도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곧바로 뉴턴의 만유인력설을 소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교수가 한미FTA 타결로 무조건 장밋빛 미래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만유인력설은 거리에는 반비례하지만 질량에는 정비례한다는 이론이다. KORUS 시대의 개막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와 특히 금융의 거시적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야만 우리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암시한다.

“세계사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정치?문화의 장파(長波) 사이클과 기술·경영의 중파(中波) 사이클이 교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지 모델스키의 장주기 이론(Long Cycle Theory)에 따르면, 세계의 정치·문화는 100~120년의 주기를 갖는다. 미국이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 대한 패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볼 때 2020~2030년은 주목되는 시기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1997>은 2015년경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고, 1998년 OECD에서 발간한 한 보고서도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하는 시기를 2015년으로 내다봤다. 한편 콘트라티에프의 경기순환 사이클과 슘페터의 기술혁신 사이클에 따르면, 기술·경영은 50~60년의 주기를 갖는다.”

이어서 이 교수는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이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그 이동 경로는 리스본(포르투갈)→암스테르담(네덜란드)→런던(영국)→뉴욕(미국)이다. 아울러 이 교수는 미국이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유네스코(UNESCO) △국제사법재판소(ICJ) 등 5대 전략 축을 활용해 세계경영을 해왔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역사학자 기본은 ‘로마는 세계를 세 번 재패했다. 한번은 무력으로, 또 한 번은 로마법으로, 세 번째는 로마문화로’라는 명언을 남겼다. 미국도 지금까지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아온 셈이다. 그러나 영원한 제국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주도해온 IMF와 GATT 체제가 동요하기 시작한 것은 필연적이다. 애초에 GATT는 무역자유화 촉진을 위해 1948년 발족됐다. 그런데 패권국가인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지면서 경제적 비교우위를 상실하게 되자 1970년대 보호무역이 만연하게 됐다. 경제민족주의가 가장 첨예하게 나타났던 농산물시장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1986년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와 1995년의 WTO 출범도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취해진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아성은 쉽게 붕괴될 것 같지 않다. 베를린 장벽이 먼저 무너지면서 시장경제와 금융시장의 1극화가 초래된 것이다. 시장경제의 인구규모는 20억명에서 60억명으로 급팽창했고, 뉴욕은 독보적인 세계금융의 센터로 우뚝 섰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 경제에 예상치 못했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소련, 동구권, 중국과 베트남 등지의 저임금 노동력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 유입되면서 일본, 한국, 대만과 동남아 국가는 경쟁력을 잃게 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기술·경영 사이클, 그 중에서도 제5순환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초전도체, 뉴세라믹, 유전자공학, 생명과학, 해양과학 등 제5순환기의 핵심기술이 상용화되는 2015년까지 세계경제는 ‘형용할 수 없는 대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동시에 블록화와 세계화의 갈등과 조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이재웅 교수의 이력서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고려대 법학 석사
▲ 미 롱아일랜드대 아써T로쓰 경영학 석사
▲ 미 아메리칸대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 중앙대 경영학 박사
▲ 1955년 한국은행 입행, 외환관리부장, 문서부장, 관리부장
▲ 은행감독원 부원장보
▲ 대우경제연구소(주) 사무국장, 상임고문
▲ 고려투자자문(주) 사장
▲ 고려증권(주) 부사장
▲ 고려종합경제연구소(주) 사장
▲ 숭실대 연구교수, 서강대 초빙교수, 고려대 연구교수
▲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상훈: 한국은행 총재 포상

저서: 외국환 관리론, 국제금융외환정책론, 국제금융경제기구론, 글로벌 금융경영론, 글로벌 기업경영론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