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496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2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환경은 21세기 반도체다’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을 네 차례 만난 적이 있다. 부시보다 더 많은 지지표를 얻고도 불합리한 선거제도 때문에 낙선한 고어에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이 당신에게 단 하루 동안 주어진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고어는 조금도 주저 없이 ‘교토의정서에 가입하겠다’고 답했다.”

한국 환경운동의 개척자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최 대표가 강연 서두에 한 편의 영화, 한 명의 정치인, 하나의 국제협약을 동시에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이 세 개의 고유명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전 지구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바로 그것이다.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2월 21일 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시내 중심가에 있는 기념공원에는 동백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내가 결혼한 날짜가 3월 6일이고, 신혼여행지는 해남이었다. 그러나 약 30년 전만 해도 대구보다 훨씬 남쪽인 해남에조차 동백꽃이 개화하지 않았다. 지난 2월 28일에는 경남 창녕의 우포늪을 방문했는데, 호랑나비를 발견했다. 심상치 않은 징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사과는 더 이상 대구의 특산물이라고 가르칠 수 없게 됐다. 대구보다 한참 북쪽인 충북 영동이나 강원도 영월에서 사과 농사가 더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처음 원주에 갔을 때만 해도 감이 열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을만 되면 주렁주렁 열린다고 한다.”

이런 ‘심상치 않은 징후들’이 지구온난화 문제와 직결돼 있음은 물론이다. 최 대표는 겨울이 와도 이제 더 이상 한강이 얼지 않게 된 사실, 2002년 8월 31일 강릉에서 850mm라는 살인적인 강우량을 기록했던 사실 등을 거론하며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이상기후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음을 경고했다.

“환경이 밥 먹여 주느냐, 환경은 골치 아픈 일이다, 환경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경에 대한 국내 기업의 시각은 그랬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환경경영’이라는 개념이 등장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 계기가 1991년 발생한 페놀사건이었다. 당시 두산전자는 30t의 페놀을 대구 시민의 상수원인 다사수원지에 유출했고, 이렇게 오염된 물이 48시간 동안 가정에 공급됐다. 어린이들이 구토 증세를 일으키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고,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항의하자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그러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 달 만에 공장 가동이 재개됐다. 그런 상황에서 2차 오염사건이 터졌고, 결국 환경부 장관과 차관이 동시에 사임해야 했다.”

당시 국내 기업의 환경에 대한 무지와 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환경단체가 반성할 줄 모르는 해당 기업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계열사인 OB맥주에 대해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불매운동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70%에 육박하던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무너진 것이다.

“두산그룹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뒤에야 친환경 기업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스스로 ‘환경경영’을 실천한 기업도 있었다. 1984년부터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꾸준하게 나무심기운동을 전개해온 유한킴벌리가 대표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유한킴벌리는 나무심기에 머무르지 않고 제품의 생산에 소요되는 용수와 에너지 사용량까지 환경적 관점에서 조절하는 등 환경경영을 전 분야로 확산시켰다. 나아가 이러한 환경경영을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한 결과 매출액과 순이익이 10배나 성장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지금은 삼성전자, 롯데백화점 등 약 50개 기업이 매년 환경경영보고서를 발표할 정도로 환경경영은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됐다.”

환경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아니라 디딤돌이다, 환경을 잘만 활용하면 많은 사람에게 밥을 먹여 줄 수 있다, 환경은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 경영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마도 최 대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였으리라. 그는 ‘도요타의 승승장구’와 ‘소니의 지지부진’도 환경경영에 대한 접근방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약 3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 능력을 가지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분류할 줄 알아야 한다. (1)지금도 중요하고 앞으로도 중요한 일 (2)지금은 중요하나 앞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일 (3)지금은 중요하지 않으나 앞으로는 중요한 일 (4)지금도 중요하지 않으나 앞으로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4)에 빠진 채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2)에 만족하곤 한다. 물론 (1)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다소 쉬운 일이다. 정작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것은 (3)이다. 산업혁명의 혜택을 누렸던 공업지대가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못 사는 지역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지환 기자

최 열 대표의 이력서

▲ 강원대 농화학과 졸업
▲ 강원대 명예 철학박사
▲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설립, 소장
▲ 환경운동연합 창립, 공동대표
▲ 환경마크협회 회장
▲ 에너지시민연대 상임대표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 생명의숲 공동대표
▲ 서울시민포럼 공동대표
▲ 환경영화제 집행위원장
▲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
▲ 강원대 겸임교수

상훈: 제1회 시민인권상, 유엔환경계획 ‘글로벌 500인상’, 골드만재단 ‘골드만 환경상’

저서: 최열 아저씨의 우리 환경이야기, 살아 숨쉬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최열 아저씨의 지구촌 환경이야기, 지구온난화와 부메랑(공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