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495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9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오준호 KAIST 교수가 ‘인간형 로봇 휴보와 떠나는 미래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2012년이 되면 한 번 충전으로 2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나오고, 2018년이 되면 의료용 로봇이 수술을 하게 되는 등 상상의 기술이 현실화 된다. 동시에 PC·게임기·TV 간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정보 단말기가 인터넷에 연결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방 분야에선 위험한 공간에서 군인 대신 근무하는 ‘무인 경계 로봇’이 나오고, 군인의 시력과 청력을 향상시키는 디지털 군복도 등장할 것이다.”

국내 최초의 휴먼로봇 ‘휴보’와 ‘알버트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한국과
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IT 미래예측 2020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오 교수는 “이러한 미래 예측은 수요자(혹은 소비자)의 상상력과 생산자(혹은 공학자)의 기술력을 동시에 고려할 때 나올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미래예측 보고서에서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봇산업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시장 수용’ 가능성인데, 로봇산업은 상상력과 기술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함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료용 로봇이나 위험한 공간에서 자유자재로 활약할 수 있는 군사용 로봇도 처음에는 황당한 바람과 상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술력의 발전 수준과 속도에 따라 SF소설 속에서나 가능했던 ‘꿈’은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로봇산업은 경제적인 전후방 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국가경쟁력 강화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국내의 로봇생산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5년 기준으로 생산액은 3302억원, 출하액은 5680억원이다. 두 해 전인 2003년의 생산액과 출하액이 각각 1679억원, 2836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장 속도라고 할 수 있다. 로봇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은 2262명으로 집계됐는데, 180개 업체에 분산되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봇은 크게 산업용과 비산업용으로 나뉘는데, 주로 제조업 분야에서 활용되는 산업용 로봇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3%이다. 비산업용에서 세계시장 선점 가능성이 큰 가장 대표적인 ‘스타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지능형 로봇이다. 서비스용 로봇, 의료용 로봇, 군사용 로봇, 오락용 로봇, 도우미 로봇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예컨대 의료용 로봇의 부가가치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전립선 수술은 설사 성공한다 해도 후유증이 워낙 커서 수개월 동안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기능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립선 치료용 로봇이 개발된 이후에는 수술 뒤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성기능 장애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다.”

서구에서는 이미 개발에 성공한 이 전립선 치료용 로봇의 혜택을 받기 위해 많은 환자들이 고액의 수술비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수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문명의 첨단인 원자로 내부의 수리나 청소를 위해서 사람이 교대로 투입됐던 가장 원시적 방법도 위험한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이 등장하면서 종식을 고하게 됐다.

“로봇산업 시장규모가 자동차와 컴퓨터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런 몇 가지 성공사례들을 전제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분적 성공사례의 특수성이 일반화의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느냐에 있다. 그러다 보니 지능형 로봇의 시장 수용 가능성과 관련해 이런 질문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예측되는 미래 로봇 시장규모가 과연 타당한가? 타당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향후 5~10년 내에 로봇이 실용화 될 수 있는가? △실용화 된다면 어떤 형태의 로봇이 시장성을 갖게 되는가? △미래 로봇산업의 기술 확보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수요자나 소비자의 높은 기대 수준과 로봇이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의 한계가 충돌하며 빚어낸 부조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로봇산업이 선택해야 할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오 교수는 △제한적이지만 현실화된 기술력을 활용한 의료용, 군사용, 실버용, 오락용 로봇의 다양한 개발과 이를 통한 틈새시장 공략 △제조업 로봇밀도 세계 3위의 수요를 활용한 자동화, 무인화 등 산업용 로봇 시장 확대 △로봇에 적합한 부품, 소재와 관련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장기적 투자 △컨버전스에 입각해 BT, NT, IT와 결합한 신기능 개발 및 도입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빌 게이츠는 ‘로봇산업이 미래 세계를 먹여 살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한 ‘로봇’에 대한 단기적 집착보다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인 ‘로봇화(化)’에 대한 장기적 투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 우리가 ‘컴퓨터화(化) 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앞으로 10~20년 내에는 ‘로봇화(化)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오준호 교수의 이력서

▲ 연세대 기계공학과 졸업
▲ 연세대 기계공학 석사
▲ 미 U.C. Berkeley 기계공학 박사
▲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 한국과학기술원 신기술창업지원단장
▲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
▲ 2004년 한국형 휴먼로봇 '휴보' 개발
▲ 2005년 알버트 휴보 개발

상훈: 2004 올해의 카이스트인, 제23회 정진기언론문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