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494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2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김주성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경영은 예술이고 문화도 경영이 필요하다-세종문화회관 혁신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구조조정 전문가가 온다!!”



김주성 전 코오롱 부회장이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부임한 2005년 12월 문화예술계 주변에서 비명처럼 터져 나왔던 말이다. 당시까지 김 사장이 걸어온 삶의 내력을 훑어보면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코오롱그룹 회장비서실장, 기획조정실장, 코오롱 구미사업장장, 코오롱개발 사장, 코오롱호텔 사장, 코오롱 구조조정본부 사장, 코오롱 부회장…. 더욱이 그가 반평생 몸담았던 코오롱의 창업주는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의 리더이기도 했다.

“코오롱의 이동찬 회장은 오랜 동안 경총을 이끌었다. 그러다 보니 노사분규가 한창이었을 때 코오롱 사업장은 노동단체가 주도하는 파업투쟁의 표적이 되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파업투쟁이 가장 격렬했던 곳이 구미공장이었다. 365일 동안 단 하루도 불이 꺼지면 안 되는 화섬업체의 특성상 파업에도 취약한 편이었다. 실제로 예정에 없이 불이 꺼지면 300억원, 계획한 대로 불을 꺼도 50억원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춘투의 계절이 오면 노조원들은 파업투쟁 찬반투표에서 80%의 압도적 찬성으로 모든 권한을 지도부에 위임했고, 현장 관리자나 경영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4년 내가 그곳의 책임자로 부임한 이후 거꾸로 노조원의 80%가 파업을 반대하는 기현상이 2년 연속으로 발생했다.”

사실 그 전부터 코오롱 경영진 사이에서는 ‘해결하기 힘들고 골치 아픈 일에는 김주성을 보내면 돼’라는 말이 돌고 있었다고 한다. 1997년 IMF 위기가 왔을 때도 어김없이 코오롱 경영진은 구조조정본부 사장이라는 궂은일을 그에게 맡겼다. 그런 전력 때문이었을까. 2005년 12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기용한 사람도 바로 해결사 ‘김주성’이었다. 마치 1980~90년대 축구대표 감독들이 야생마 ‘김주성’을 기용했던 것처럼!

“주변에서는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며 만류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종문화회관은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예술을 공연한다는 건물 벽에는 ‘압살’ ‘퇴진’ ‘타도’ 등의 살벌한 문구가 달린 울긋불긋한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고, 노조원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던 주변에서는 커다랗게 틀어놓은 노동가요가 하루 종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더욱이 예술단 내부에서는 ‘예술의 ㅇ 자도 모르고 사람만 자를 줄 아는 구조조정 전문가가 문화예술 영역을 침범하려 한다’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상황이었다. 사장직 제의를 받고 조직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경영진과 노조원 사이에는 깊은 불신이 쌓여 있었고, 조직은 목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었다.”

그나마 취임식을 무사히 치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초기에는 주변의 모든 여건이 안 좋았다. 그러나 그가 경영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상황은 급반전했다. 업무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난 뒤 조직을 강도 높게 개혁하면서 CEO로서 정직과 열정을 가지고 솔선수범하자 오히려 다수의 노조원이 사장을 지지하는 전대미문의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김 사장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세종문화회관에는 9개의 예술단이 있는데, 그들이 노조원의 중추를 이루고 있었다. 조직을 꼼꼼하게 점검해 보니,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체 인원이 90여명에 불과한 사무국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예술단원의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면서, 조직의 비전과 자부심과 일체감은 사라져버리고 적대감과 패배의식과 기회주의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모든 원인을 예산과 감사 타령으로 돌리면서 경영과 원가 개념도 실종된 지 오래였다. 세종문화회관은 왜 존재하는가? 그때 내가 잡은 화두이자 원칙이었다. 아울러 사무국에는 공익성과 수익성의 합리적 관계를, 예술단에는 자율성과 책임성의 올바른 관계를 고민거리로 던져줬다. 내년이면 30주년이 되는 세종문화회관 시설의 낙후성도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구성원 각자가 고민거리를 풀어나가자 조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시민 누구나 1천원만 내면 10만원 가치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천원의 행복’,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사랑의 37도’, 학교를 찾아가 미래의 고객과 만나는 ‘영 아트’,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컨벤션홀을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개조한 세종체임버홀(443석), 기존의 주차장 공간을 개조한 ‘예술의 정원’ 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변화와 개혁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현재진행형’이기에 성과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아직도 조마조마하고 위태위태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30년 넘게 기업에 몸담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일을 시키기 전에 하면 ‘주인’이지만 시킨 뒤에 하면 ‘종’이 된다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재미있으니까 하는 일은 성취도가 높지만 억지로 하는 일은 역효과만 난다. 어디 그뿐인가. 성취도가 높으면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편안한 길보다 험난한 길을 더 많이 걸어왔지만 오히려 할 일이 많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김주성 사장의 이력서

▲ 연세대 철학과 졸업
▲ 미 하버드 비즈니스스쿨(PMD) 및 U.C. Berkeley HAAS School 수학
▲ 코오롱그룹 회장비서실장, 기획조정실장
▲ (주)코오롱 구미사업장장
▲ 코오롱개발(주) 사장
▲ (주)코오롱호텔 사장
▲ 코오롱 구조조정본부 사장
▲ 코오롱 부회장
▲ 전경련 기업경영협의회 회장
▲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이화여대 겸임교수
▲ 코오롱그룹 고문
▲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