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492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3월 8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 학장이 ‘나는 한반도의 희망을 설계한다’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한반도’서 ‘동북아’로 시야 넓혀라!

“공간학적으로 그리고 건축학적으로 100년 전 우리는 큰 변혁의 시기를 겪었다. 국제 사회를 향해 열린 5개 항만(港灣), 그리고 그 각각의 항만과 서울을 연결하기 위한 철도(鐵道)와 신작로(新作路) 등 새로운 하드웨어가 구축된 것이다.

그것은 500년 동안 공간학적으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되던 한반도가 근대화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조와 정조 이후 조선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기는 했지만, 당대의 유럽처럼 새로운 하드웨어 구축의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조가 야심차게 추진했으나 결국 좌절되고 말았던 수원 천도가 그나마 건축사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100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는 그때보다 더 큰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최근 생존율이 40%에 불과한 수술을, 그것도 세 번이나 받은 뒤 ‘생환’했다는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 학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김 학장이 현재를 ‘더 큰 변혁의 시기’라고 진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3가지의 근거를 제시했는데, (1)중국의 등장 (2)흔들리는 분단체제 (3)지식산업사회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수도나 혁신도시 같은 건설계획은 한반도를 기준으로 국가의 하드웨어를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국가의 하드웨어를 구축하면서 더 이상 한반도만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황해를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의 출현이라는, 이른바 새로운 판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중국의 등장인데, 실제로 중국과의 교류나 교역 규모가 미국이나 유럽과의 그것을 훨씬 앞선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한국의 서남 해안, 즉 중국의 동남 해안이자 일본의 서북 해안이 연결되는 삼각형의 공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성장한 미국의 동부 해안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김 학장은 강조했다. 중국이라는 ‘너무나 거대한 나라’에 대한 섬세하고 구체적인 분석 없이 무조건 한국과 대등하게 바라보고 대응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던 이른바 ‘동북아 중심국가론’이나 ‘동북아 균형자론’을 비판의 도마에 올린 것이다.

“예컨대 상하이는 중국의 동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 중 하나이지만 권역 인구만 자그마치 5천만명에 이른다. 어디 그뿐인가. 동부 해안 도시에다 지린성(吉林省)·랴오닝성(遼寧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 동북3성의 인구까지 합치면 무려 5억명이 넘는다.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별개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형식논리적으로 중국과 대등하게 관계를 맺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흔히 ‘동북아’라고 할 때 우리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대등한 관계를 생각하지만, 정작 중국은 자신들의 지방정부인 동북 3성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중국의 지방정부와 상대한다는 생각을 갖고 경제협력이나 지역협력에 임하는 것이 실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김 학장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상황도 비슷하다. 도쿄를 중심으로 요코하마, 가와사키 등이 포함된 권역의 인구만 3천만명이라고 한다. 동북아의 상황이 그럴진대 고작(?) 2천만명이 모여 사는 한국의 수도권 과밀화를 거론하며 행정수도 건설을 가지고 갑론을박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김 학장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대한민국의 공간학적 하드웨어를 새롭게 구축하려면 그 시야의 기준을 ‘한반도’에서 ‘동북아’로 확대시켜야 한다.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황해도시연합’이라는 마스터플랜의 연장선 위에서 한반도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매니지먼트’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도시개혁이나 국토계획은 동시에 장기적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등이 자신들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20년 혹은 10년 후의 정책이나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최근 대선주자들이 꺼내놓은 경부운하와 열차페리 등의 대선공약 역시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선거꾼 교수들이 급조한 캐치프레이즈에 불과하다고 본다.”

예술의 전당, 해인사 신불교단지, 영화박물관, 여의도 마스터플랜, 서울대 마스터플랜, 베이징 경제개발특구 등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수많은 건축작품과 도시설계로 유명한 김석철 학장. 그는 그러한 ‘발상의 전환’과 ‘시야의 확대’라는 기초를 튼튼히 다진 뒤 그 위에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설계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

“수도권 전략은 △4대문 안 서울(서울의 얼굴 만들기) △꿈꾸는 한강(서울의 서쪽으로 진출하기) △강북 르네상스(대학 중심 지식산업 활성화) 등으로, 지방권 전략은 △호남 바다 오아시스 계획 △금강-새만금 어반 클러스트 △낙동강도시연합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을 ‘불편한 짐’이 아니라 ‘위대한 기회의 땅’으로 볼 필요도 있다.” /정지환 기자

김석철 학장의 이력서

▲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 베네치아 건축대학, 뉴욕 컬럼비아 건축대학원, 베이징 칭화대학, 츙칭대학 객좌교수
▲ 아키반(ARCHIBAN) 건축도시연구원 원장
▲ 한국건축가협의회 이사
▲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대표
▲ 대한건축사협회 이사
▲ 건축작품 : 예술의 전당, 해인사 신불교단지, 영화박물관, 베이징 iCBD 外
▲ 도시설계작품 : 여의도 마스터플랜, 서울대 마스터플랜, 베이징 경제개발특구, 취푸 특별신도시 외
▲ 전시회 : 베니스대학, 베니스시 초청 '서울 건축과 도시'전, 크로아티아 미마라 뮤지움 '백남준-김석철' 2인전 외
상훈 :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보관문화훈장, 아시아건축상 금상,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 특별상 외
저서: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 2000년 한국인의 주거,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