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89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2월 8일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서 노다 가즈오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이 ‘일본 경제 부활의 빛과 그림자’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왜 나카무라 슈지는 일본을 떠났을까?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졌다. 여기서 ‘가까워졌다’라는 단어에는 서울(김포)과 동경(하네다)의 비행거리가 2시간 남짓으로 짧아졌다는 ‘물리적 차원’의 의미만 포함돼 있지 않다.

18세의 나이에 종전(終戰)을 경험한 나로서는 도리어 한일 양국 시민의 친밀도나 신뢰도의 증진이라고 하는 ‘사회적 차원’의 의미에 더욱 주목하고 싶다.”
노다 가즈오(野田一夫)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은 ‘가깝고도 멀었던’ 한일 양국의 특수 관계를 언급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 같은 사람도 있지만 지난 80년 동안 단 한 번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나 같은 일본인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한국인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고백과 함께.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한 한국인 친구는 일본인이라면 무조건 못마땅해 했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몇 번이나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결코 일본인 대표가 아니다’라고 양해를 구한 뒤 출신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우정을 나누는 것이 나의 정책(Policy)이라고 설명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전후 일본 경제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수(特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불행’이 ‘일본의 행운’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 한국과 일본은 42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OECD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동의 운명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일본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잃어버린 10년’의 악몽을 청산하고 전후 최장의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경제가 완전히 부활했다는 징후는 각종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노다 이사장의 진단은 조금 다르다.

“일본 경제가 이제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구조 변화 과정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인구 감소라고 하는 국내적 조건이나 후발 성장국의 대두라고 하는 국제적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튼 일본 경제가 가까운 장래에 다시 강력한 성장력을 되찾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더욱이 현재 일본의 호경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적 특징이 있다. 지역별, 산업별, 기업별, 직업별 경제 격차가 현저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학생들의 상대적 학력 저하, 1980년대의 경제버블로 인한 전통적 근로정신 상실, 근친간의 엽기적 범죄 발생율의 상승과 검거율 저하 등도 개발도상국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일본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노다 이사장은 “따라서 한국이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이후에 한일 양국의 경제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면, 그 책임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는 경고가 바로 그것이다. 아울러 그는 ‘일본이 여전히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후 일본의 경제적 성공은 일찍이 세계로부터 칭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후 일본인이 ‘풍요로움’에 빠지면서 급속히 활력을 잃게 됐고, 일본에 대한 세계의 평가는 짧은 시간 안에 변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관찰하면, 다행히 일본에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직 몇 개는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지재(知財) 즉 특허(特許)라고 답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렸던 1990년대의 심각한 경제침체기에도 일본 기업의 연구개발(R&D) 의욕은 약해지지 않았으며, 투자액도 모든 선진국을 웃돌았다. 그 결과 1996년 이후 특허와 관련된 일본의 국제수지는 모든 나라에 대해 흑자를 기록하게 됐고, 2004년 흑자액은 드디어 1조엔을 넘어섰다.”
예컨대 산업용 로봇이 일본의 경제 성장률 저하에 브레이크를 거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될 가능성은 지극히 높다. 이와 관련 노다 이사장은 지재 혹은 특허야말로 틀림없이 일본의 쇠퇴를 구할 수 있는, 아니 적어도 일본 경제의 성장을 연장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재와 특허의 나라 일본에도 근본적 고민은 있다. 세계 최초로 청색발광레이오드(LED)를 개발하고도 결국 일본을 떠나버린 나카무라 슈지가 생생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명의 지방대 출신이었던 나카무라는 무명의 지방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지독한 학벌사회’였던 일본에서는 그의 연구 성과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특허법에도 문제는 있었는데, 특허는 대개 회사에 귀속됐다. 정작 특허를 가능하게 한 연구자에게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나카무라는 생각했다. 그의 진면목을 알아본 것은 ‘기회의 나라’ 미국이었다.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바라교 교수가 된 그는 아직도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이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학벌’보다 ‘실력’을 우선하는 ‘기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터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노다 가즈오 이사장의 이력서

▲ 도쿄(東京)대 사회학과 졸업
▲ 도쿄대 대학원 특별연구생(기업 경영론 전공)
▲ 릭교(立敎)대 교수, 관광학과 초대학과장
▲ 미 MIT, 하버드대 ‘기업경영의 국제비교’ 연구
▲ (재)일본종합연구소 초대소장
▲ (사)뉴비즈니스협의회 초대 이사장
▲ 다마(多摩)대학 초대학장, 명예학장
▲ 미야기(宮城)대학 초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