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8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5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타릭 후세인 맥스메이커컨설팅 한국지사 대표가 ‘다이아몬드 딜레마-주식회사 한국의 숨겨진 성장 코드’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광채 나는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스위스계 컨설팅 회사인 맥스메이커컨설팅의 한국지사 대표를 맡고 있는 타릭 후세인. 1997년 한국의 IMF 사태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주인공으로 알려진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출신 아버지와 파키스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인 청년 후세인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런던정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과정에 진학한 것은 1995년의 일이었다.
“내가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공간은 케임브리지대의 한 강의실이었다. 여러 개발도상국가에서 온 학자들로부터 ‘개발경제학’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라틴 아메리카나 인도의 성장과정을 설명한 강의는 그저 평범하여 그다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어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날카로운 눈빛의 한 젊은 교수(나중에 그가 장하준 교수라는 사실을 알았다)가 강단에 올랐는데, 그가 열정적으로 소개한 한국의 성장 스토리는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온갖 난관을 뚫고 경이로운 성장을 이룩한 한국 이야기에 매료된 나는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한국에 관한 모든 자료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듬해 학기말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행사에 참석한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서울대와 하버드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 학술행사에는 청와대와 수원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었다. 책으로만 접하다가 ‘리얼 코리아’를 목격한 그는 한눈에 한국에 반해 버렸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면서 다짐했던 대로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으며, 다시 1년 뒤 대구 출신 여성 ‘박근혜’와 결혼도 했다.
“컨설팅 회사에서 약 7년 6개월을 보내는 동안 나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더욱 뜨거워져 갔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과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외국기업과 밤낮으로 부대끼면서 한국 경제에 관한 나름대로의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여러 번의 해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한국을 좀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도 갖게 됐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나에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동북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 중에서도 더욱더 역동적이고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나라인 동시에 아직도 넘어야 할 한계와 문제가 많은 나라였다. 나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접하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2006년 1월에 한국에서 번역, 발간되면서 주목을 받았던 저서 <다이아몬드 딜레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렇다면 그가 책 제목에 ‘다이아몬드’라는 말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을 다이아몬드에 비유하는 것이 일면 적합해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후세인의 생각은 다르다. 둘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다이아몬드는 작고 단단하다. 한국과 한국인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 속에 단련된, 작지만 강한 강소국(强小國)이다. ‘터프’한 한국 축구 역시 다이아몬드를 닮았다. 다이아몬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한국도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중국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시스템을 축적해 왔다. 다이아몬드와 한국의 공통점은 ‘잠재력’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가 정성스런 세공 과정을 통해서 그 빛을 발하며 가치가 높아지듯이, 한국 역시 절대빈곤과 외환위기의 난관을 극복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사고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한국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이제 거친 각과 표면을 조금 다듬었을 뿐이다.”
아직은 덜 다듬어진 다이아몬드 한국. 그것은 한국을 둘러싼 5개의 스펙트럼(중국의 무서운 도전, 독점과 개방의 기로에 선 재벌, 중소기업과 벤처 붐의 짙은 그늘, 아직은 멀기만 한 ‘인베스트 코리아’의 길, 황폐해진 교육과 사육된 인재들),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이라는 거울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터넷, 한류, 박지성 등 겉으로만 보면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니 겉과 속이 달랐다. 우선 관료, 재벌, 노조 등 어느 나라보다 그 파워가 강력한 이익집단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고 있다. 여전히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개방성도 심각한 문제다. 1960년대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가 꾸준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과 비교해도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예컨대 노사관계, 외국인 직접투자, 대학 해외교류, 성 평등 영역에서 한국은 각각 세계 평균의 43.3%, 6.0%, 0.2%, 57.7%를 기록한 반면 중국은 각각 63.5%, 27.4%, 2.1%, 72.5%를 기록했다. 이것은 한국이 하루빨리 ‘수출 제일주의’에서 ‘인베스트 코리아’로 거듭나지 않으면 조만간 중국에 덜미가 잡힐 것이라는 경고음이다.”
세공을 거친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5천 달러에 이르지만 가공되지 않은 원석은 10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이라는 다이아몬드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광채와 암흑의 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한국과 결혼한 ‘푸른 눈의 목격자’는 물었고, 우리는 답해야 한다. /정지환 기자

타릭 후세인 대표의 이력서

▲ 영국 런던정경대 경영학과 졸업
▲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수학
▲ 부즈앨런해밀턴 한국사무소 주니어 컨설턴트
▲ 부즈앨런해밀턴 한국사무소 이사
저서: 다이아몬드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