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나이 50을 갓 넘었다. 우리들 세대에서는 완장 문화가 유난히도 심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번에게는 완장이 주어졌고 중·고등학교 때는 완장의 상징성이 더 커졌다. 선도부 혹은 규율부로 불리우는 힘센 친구들의 팔에 둘러진 완장의 위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군대식으로 조직된 학도호국단(요즘의 학생회) 중대장, 대대장의 완장 앞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한껏 주눅이 들어야만 했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서는 졸부 최 사장의 눈에 들은 동네 날건달 종술이가 최사장 소유의 널금 저수지 감시인으로 발탁되면서 종술의 팔에 감시인 완장이 채워지고 종술은 완장의 힘에 도취되어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오히려 눈물겹게 그려지고 있다.
작가 이외수는 그의 저서 '감성사전'에서 완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임무를 타인들에게 식별시키기 위해 팔에 착용하는 표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배들이 완장을 착용하게 되면 갑자기 자신을 영웅시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타인을 멸시하려는 습성을 가지게 된다."
얼마전 군 자치행정과 사무실에서 직협 회장단과 자치행정과장 사이에 공무원노동조합 출범식을 둘러싸고 고성이 오가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법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노동조합 출범식은 인정할 수 없다"는 행정과장의 주장에 직협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며 앞으로 계속 견제할테니까 두고보자"는 식의 반발로 맞섰다.
논리적으로 볼 때 행정과장의 주장이 백번 옳고 직협의 주장은 억지다.
공무원노동조합법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에서 가결됐으나 아직 공표도 되지 않은 상태고 시행 역시 공표일로부터 1년 후로 못박았다. 따라서 시행은커녕 공표조차 되지 않은 노동조합법을 이유로 노동조합출범식을 한다는 것은 법리해석상에 문제가 많다.
현 단계에서 공무원노동조합은 모태가 존재하지 않는 사생아이며 유령단체일 수밖에 없다. 또 엄연히 직협이 존재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담양군은 직협과 노동조합이라는 두 개의 단체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일선에서 법을 가장 잘 준수해야 할 공무원들이 공표조차 되지 않은 법을 이유로 탈법을 강행한다면 그 모양새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이와관련 자신을 일반회원이라고 밝힌 한 공무원은 직협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공무원노동조합출범에 이의를 제기했다. "어떠한 근거에서 직협이 노동조합이 된단 말인가, 회원들 대다수가 모르는 노동조합이 웬 말이며 일반회원들도 모르는 출범식이라니요? 회장이하 간부들만의 생각입니까? 몹시 기분이 상하는군요."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출범식을 강행하려는 이유에 대해 회장 개인의 명예욕과 감투욕에서 빚어진 것일 뿐 대다수 회원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는 불만 섞인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3기 직협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역사회를 선도하고 맑고 깨끗한 공직풍토 조성을 위해 열심히 일해줄 것을 내심 기대했었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조합 출범식도 일방적인 강행으로 적법성 논란에 휩싸여 분란과 투쟁의 양상을 보이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모든 회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군민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치러지는 잔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의 주장이 다소 일방적이라고 항의할 사람도 있을 것이나 감히 당부하건데 직협은 보다 큰 뜻을 갖고(大義), 큰길(大路)을 걸으며 공무원 사회에 큰 획을 긋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직협의 본분이 무엇인지, 어떤 행동이 진정 직협의 위상을 세우는 모습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사족(蛇足)을 달자면 날로 쇠퇴해가는 지역경제나 인구감소 문제에 대해서 과연 직협이 얼마나 고민하고 논의했는지 한번 묻고 싶다. 직협 회원이기 이전에 국민을 위한 공복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이 한줌도 안 되는 조그마한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동안 우리 군민들의 가슴에는 시퍼런 멍자욱이 깊게 깊게 자리잡아 간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