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록원이 서두에 군 담당자의 답변처럼 공원의 의미를 갖고 있다면 竹綠苑은 분명 잘못된 표기다. 竹綠苑의 苑은 군 담당자의 주장처럼 공원(公園)에 쓰는 원이 아니고 '사슴이나 가축 등 주로 짐승을 사육키 위해 조성한 우리 혹은 동산'이라는 개념에 더 근접하다. 따라서 죽록원이 공원의 개념이라면 '竹綠園'으로 표기함이 타당하다.
"상부에서 결정하면 무조건 하는 것이지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쌍팔년도 군대에서나 나왔을법한 이야기가 공공연히 공무원의 입에서 그것도 기자에게 당당하게 한 답변이다.
이게 무슨소리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명색이 군청 계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이고 보면 유독 담양군청만이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연인즉 이렇다. 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죽록원(竹綠苑)의 한글표기를 둘러싸고 이견이 분분한 가운데 지난 3일 한 네티즌이 군청 홈피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얼마전 담양주간신문에 보도된 내용과 대나무해설사 교육과정에서 남도대학 최한선 교수님께서 죽녹원은 잘못되었고 죽록원이 맞다고 하시는데 담양일대의 이정표를 보면 죽녹원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죽록원이 맞다면 담양군정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에 대한 군청 담당자의 답변이 가관이다. 답변 내용을 보면 "죽녹원이라고 표기하는데는 두음법칙과 관계가 없으며 죽녹원은 대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진 대나무테마숲공원을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즉 대나무와 차나무(죽로차)를 함께 볼 수 있는 공원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명칭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답변이라고 올려놓은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죽록원 표기가 두음법칙과 관계가 없다는, 다시말해 한글맞춤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근거에 대해 묻자 담당 직원은 근거는 없고 그냥 우리가 만든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어떻게 써도 상관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말로써는 더 이상 어렵다는 판단하에 기자는 죽록원 표기에 대한 담당부서의 공식입장을 문서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담당계장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가 뭐하러 그런 것을 보내느냐, 상부에서 결정하면 무조건 하는 것이지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항변했다.
덧붙여 "다들 아무 말이 없는데 왜 신문사에서만 자꾸 문제를 삼느냐"며 "지금은 군수가 외유중이므로 정 필요하면 군수가 돌아오면 결재를 받고 답변해주겠다"고 했다.
마치 마마보이를 보듯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모든 것을 군수에게만 의존하고 군수에게 미루려는 한심한 사고를 지닌 공무원이 무슨일인들 소신있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이유로 제시하고 있는 상부의 결정이라는 것도 순간적인 착각이나 실수로 인해 잘못될 수도 있는데 이를 그저 예, 예 하고 따르는 것이 충성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아마도 그 조직의 상관들은 이렇듯 한심한 부하를 원치 않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참고로 한글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제5절 12항 한글 두음법칙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한자음 '라, 래, 로, 뢰, 루, 르'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나, 내, 노, 뇌, 누, 느'로 적는다. [붙임 1] 단어의 첫머리 이외의 경우는 본음대로 적는다.'
한글맞춤법 규정을 눈 씻고 뒤져봐도 '고유명사는 두음법칙과 관계없다'는 구절을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국립 국어연구원에 죽록원의 조성 배경을 설명하고 지명이자 고유명사인데 죽녹원으로 써도 되지 않겠느냐는 질의를 한 결과 고유명사일지라도 두음법칙을 적용해야 하고 따라서 '죽록원'으로 표기함이 옳다는 답변을 얻었다. 한국 땅이름학회 회장이자 한글학회 회원이신 정재도 박사께서도 지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일지라도 한글 맞춤법에 따라 '죽록원'으로 표기함이 옳다고 했다.
자신들의 생각이 한글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보다 우선한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에게야 이같은 설명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마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답변은 정말 근거없는 엉터리라는 점만은 알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한글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은 국민들간에 이루어진 약속이자 모두가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에 유치원에서부터 맞춤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행정기관에서 앞장서서 이를 무시하고 잘못된 표기를 고집한다면 어쩌자는 것인가? 부끄러운 줄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혹자는 이렇게 강변한다고도 한다. 죽(竹), 녹(綠), 동산(苑)이라는 별개의 단어들을 나열한 것이므로 죽녹원으로 써도 된다고. 그렇다면 '죽·녹·원'으로 표기해야 옳다. 하지만 이 주장은 본질을 벗어난 변명에 불과할 뿐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죽록원의 한자표기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지적코자 한다.
죽록원이 서두에 군 담당자의 답변처럼 공원의 의미를 갖고 있다면 竹綠苑은 분명 잘못된 표기다. 竹綠苑의 苑은 군 담당자의 주장처럼 공원(公園)에 쓰는 원이 아니고 '사슴이나 가축 등 주로 짐승을 사육키 위해 조성한 우리 혹은 동산'이라는 개념(예: 苑유 - 새와 짐승을 놓아기르는 동산, 鹿苑 - 사슴을 사육하는 곳)에 더 근접하다. 따라서 죽록원이 공원의 개념이라면 '竹綠園'으로 표기함이 타당하다.
몰라서 잘못 쓴 것이야 바로잡으면 되지만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추후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담당자들도 '아무 근거도 없는 고유명사 운운'이나, '상부에서 결정하면 무조건 하는 것이지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라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답변보다는 '근거를 찾아보고 답변하겠습니다, 혹 잘못된 표기라면 바로잡겠습니다'라는 성의있는 답변 자세를 갖춰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