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에는 무엇보다도 자치단체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사권, 재정권 등 막강한 지방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만큼 지역발전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이들에게 주어진 4년의 임기는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초스피드시대에서 4년의 시간이면 자치단체장의 경영능력에 따라 해당 자치단체가 경쟁력을 갖춘 ‘일등도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퇴보해 ‘낙오도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일본 재계의 총리로 불리는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 최악’이라며 ‘변화의 정신’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도 “LG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남을 따라 하거나 경쟁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남이 모방할 수 없는 차별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임직원들에게 혁신역량을 집중하는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수장의 이러한 ‘변화의 정신’이 세계에서 ‘초일류, 일등’기업으로 만드는 원천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직을 이끄는 수장의 능력과 마음가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지금껏 보아온 자치단체장들의 유형도 가지가지지만 가장 최악의 유형으로 꼽히는 것은 임기동안 자리에만 앉아 있다가 제대로 한 일도 없이 가는 무임승차형 자치단체장이다. 자치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혁신, 개혁 등 변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중앙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중앙종속형 자치단체로 전락시키는 자치단체장. 이러한 단체장이 이끄는 자치단체는 희망도 비전도 없다.
마치 누워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우매한 사람처럼 그저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예산에 감지덕지 하면서 그 돈으로 공무원들 월급이나 주고, 그렇게 한살림 꾸리다가 때 되면 사라지는 이런 단체장에게서 무슨 비전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런 단체장이 과연 무슨 능력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민선4기가 들어선지 100여일이 지났다. 이웃 장성군은 무소속 군수임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자마자 중앙부처를 수시로 방문,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결과 무려 700억원에 달하는 국비를 확보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반면 담양군은 군수의 노력으로 확보한 국비가 땡전 한 푼 없다. 장성군이 확보한 국비 700억원은 담양군 1년 예산의 40%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담양군에 7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고 가정해보자. 이에따른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정말 배가 아프다 못해 뒤틀릴 정도로 장성군이 부럽다.
최악으로 꼽히는 또 다른 유형은 독불장군 형 단체장이다. 자신만이 옳고, 자신의 뜻에 무조건 따라오도록 강요하는 독재자, 독선자 형 단체장에게는 미래가 없다. 문민정부 시절 YS가 한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모름지기 바람직한 단체장은 반대하는 목소리와 쓴소리까지 수용하는 포용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쓴소리는 우선은 듣기 싫겠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고 지역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포용의 자세가 갖춰지지 않으면 주변에는 아부하는 무리만 들끓고 참된 인재는 그 곁을 떠난다. 아부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주민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군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존경받는 군수가 될 것인지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
삼성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사회 공헌, 노사 관계, 중소기업 지원 등 여러 부문에서 비판과 조언, 즉 쓴소리를 해 주는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을 구성한 의미를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9일 군수는 취임 100일을 맞아 무려 249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를 앞두고 공식석상에서 수차에 걸쳐 “보복인사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군수가 실상은 원칙과 순리를 무시한 채 보복과 보은으로 점철된 소위 ‘손봐주기식’ 파행인사를 실시했다. 이같은 인사의 파장으로 36년간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해오던 한 공무원이 정년을 8개월여 남겨놓고 사표를 제출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명색이 담양읍의 부읍장을 부면장도 아닌 면의 담당요원으로 발령 낸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만이 아니다. 부면장 중 상당수를 담당요원으로 격하시킨 것을 비롯해 통상적으로 사무관 승진코스로 인정되던 면장 직무대리를 6급 사업소장으로 발령 낸 것 등은 다분히 감정적인 보복인사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군수는 사령장 전달식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내가 보복인사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자꾸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해서 이번 인사는 정치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요즘 타 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들을 보면 민선4기 단체장 취임 100일을 맞아 단체장의 치적과 활약상을 홍보하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띤다. 이 또한 슬프고 안타깝다. 왜 우리는 아무것도 쓸 것이 없을까? 우리 군수도 다른 지역의 군수들처럼 자랑도 하고 싶고 치적도 홍보하고 싶은데 도무지 쓸 것이 없다.
취임 100일정도 지났으면 단체장의 정책의지나 지역의 미래발전지표, 지향하는 군정목표 등에 대한 소신과 철학 등이 정립되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세부실천계획 등이 제시돼야 하는 것이 통례이거늘 무엇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이 없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민선4기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민선3기까지가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시기였다면 지금부터는 실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자치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장은 선거로 인해 발생된 지역간, 계층간 갈등과 알력을 해소하고 주민의 역량을 지역발전에 집중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개혁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는 한편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쓴소리도 과감하게 수용해 화합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춘 자치단체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직무에 임했으면 한다.
비록 우이독경(牛耳讀經) 격일지라도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 /한명석 局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