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웰컴투동막골’ 중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전투 중 낙오돼 동막골에 들어온 인민군 장교는 총과 수류탄으로 동막골 주민들을 위협하지만 주민들은 꼼짝하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할 일을 위해 자리를 떠난다. 한참 뒤 동막골 촌장의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 모든 주민들이 복종하는 것을 본 인민군 장교는 촌장에게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총도 무서워하지 않는 주민들이 촌장 명령에는 순순히 복종하는 겁니까? 촌장은 이렇게 답한다. “별거 아녀, 그냥 배불리 먹게 해주면 돼.”
논어(論語)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애공(哀公)이 공자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까지 따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답하길 “곧고 올바른 사람을 등용해서 곧지않은 사람들 위에 놓으면 백성들은 마음까지 복종하지만 곧지않은 사람을 등용해서 곧은 사람 위에 앉히면 백성들이 진심으로 따르지 않습니다”고 했다. 즉 백성들은 권력 앞에서는 굴복(屈服)하지만 德 앞에는 심복(心腹)한다는 뜻으로 민심을 얻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人事는 萬事’라는 말이 시사하듯 인사는 조직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일뿐더러 정실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인사는 조직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바로미터다.
9일자로 군 인사가 대폭 시행됐다. 인사를 앞두고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인사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막상 인사가 터지자 “역시나”하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군수가 공식석상에서 수차에 걸쳐 “보복인사는 하지 않겠다”며 정실인사에 치우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해왔고 심지어는 “모 인사가 돈을 싸들고 찾아와 인사를 부탁했지만 거절하고 돌려보냈다”는 무용담(?)을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았기에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던 공무원들도 상당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그러면 그렇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여”하는 볼멘소리가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군수 자신의 생각으로는 결코 보복인사가 아니라고 강변할 줄 모르겠으나 한때 후임 기획실장 물망에 오르기까지 했던 모 과장을 신설 사업단장으로 좌천시킨 것이나 담양읍의 부읍장을 부면장도 아닌 면 담당요원으로 발령 낸 것 등을 비롯해 꼼꼼히 뜯어보면 다분히 감정적인 인사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여기에다 지난 지방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보은 인사까지 곁들여졌다는 평도 나온다. 지난번 특채에 이은 보은 인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문민정부의 YS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된 원인중의 하나로 흔히들 인사를 꼽는다. 오랫동안 민주화 투쟁을 함께 해 온 많은 동지들을 홀대할 수 없어 자리를 나누어주다 보니 결국 스스로도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패거리정치의 폐단을 아무리 지적해도 시정할 수 없었던 것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사람들에 대한 의리와 이에 대한 보답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의 민주화운동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쟁취를 위한 투쟁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시대는 행정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생활 어느 부분도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역할과 비중이 막중하다. 아울러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뛰어난 감각과 열정을 지녀야 행정의 효율성과 서비스가 제대로 되는 위민행정을 펼칠 수 있다. 따라서 행정에서 인사는 최고의 예술이며, 철학이 있어야 한다.
보복과 보은으로 이뤄진 인사는 짐짓 ‘인사권자의 힘’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원칙과 순리를 무시한 것이기에 편중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철학이 없는 인사는 두고두고 말썽의 소지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인사는 인사권자가 즐거워하는 인사가 아니라 주민들을 기쁘게 하는 인사라는 것도 늦었지만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