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는 90년대를 풍미한 국가대표 축구팀 스트라이커다. 우리나라 축구팀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지만 막상 프랑스 본선무대에서는 벤치에 머물렀다.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최선수가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기독교신자인 차범근 감독이 최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확인결과 유언비어였다. 최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공격진의 투톱을 이루다 최선수가 빠지자 원톱으로 분투했던 김도훈 선수도 불교신자였다.
부산지방에서는 또 다른 소문이 나돌았다. 최용수 선수가 부산출신이기 때문에 선발에서 제외됐다는 것이었다. 역시 유언비어였다. 월드컵팀 철벽의 골키퍼 김병지 선수는 다름 아닌 부산 소년의 집 출신이다. 호남정권이 들어서더니 경상도 출신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도 물을 먹는다는 투정도 들렸다. 그러나 그해 최종심에 오른 12명의 미녀 중 3명이 대구 경북대표였고 8명의 수상자중 2명이 역시 대구 경북대표였다. 부산지역의 호남정권에 대한 시기가 뜬소문으로 번진 것이다.
유언비어란 원래 이런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부정을 잔뜩 품고 있으며 박탈을 두려워하는 불안과 박탈해갈 것으로 상정되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묻혀낸다. 원망(怨望)일 수도 있고 원망(願望)일 수도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나돌던 대표적인 유언비어로 '전라도에는 실업자가 없다', '대기업 빅딜은 경상도 죽이기다', '구미공장을 뜯어다 광주에 짓고 있다'는 설이 분분했다. 이처럼 근거없는 풍문들에도 숨겨진 뜻은 있다. 바로 정권을 놓친 허탈감과 지역감정이 섞인 불만이다.
유언비어 연구의 고전인 올포트와 포스트먼의 '유언비어의 심리학'이 전하는 예도 있다. 1943년 미국 남부에 묘한 소문이 나돌았다. 흑인 하녀들이 루스벨트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의 정신적 지원 아래 백인 여성들에게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백인 여성이 외출했다 돌아오니 흑인 하녀가 주인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는 따위의 유언비어가 불처럼 번져나갔다. 반(反)흑인감정과 뉴딜정책의 자유주의에 대한 증오심이 루머로 표출된 것이다. 올포트와 포스트먼은 이를 '지위의 전도(顚倒)'에 대한 공포라고 정의한다.
한번 유포된 유언비어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소재 자체가 소멸되지 않는 한 진실에 압도돼 잠시 잠행하다가 옷을 바꿔 입고 다시 나타난다. 숨겨진 욕구와 기대가 충족될 때까지, 불안과 공포가 줄어들고 해소될 때까지 재생산된다. 유언비어의 속성이다.
요즘 선거를 앞두고 우리지역에도 유언비어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군 중점시책으로 추진중인 대나무신산업은 관광수요 창출이나 신기술, 신소재 개발 등을 통해 산림청과 환경부 등 중앙부처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낸 지역의 미래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부분은 모두 감춘 채 그저 군수가 몇몇 특정인을 먹여 살리느라 대나무를 몽땅 심고 있다는 내용으로부터 심지어는 모 기업에 대해 “진작 망해 없어질 회사인데 군수가 예산을 몽땅 쏟아 부어 살리고 있다”는 식의 근거없는 부정적인 소문만 만들어 내고 있다.
이같은 유언비어를 날포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직 군수를 선거에서 낙선시키고자 하는 의도하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른바 선거법 제250조 ‘허위사실공표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이같은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옛날 전국시대 소진과 장의가 현하의 달변으로 제후를 요리해 부귀영화를 누린 반면 殷나라 비간은 혀를 함부로 놀려 심장에 구멍이 일곱 개나 뚫려야 했고, 한생은 탕확(사람을 삶아 죽이기 위해 만든 커다란 가마솥)의 형벌을 받았으며 사마천은 거세의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晉의 부현은 병종구입 화종구출(病從口入 禍從口出·病은 입으로 들어오고 禍는 입에서 나온다)이라고 했으며 五代때의 풍도는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입은 禍의 大門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다.
또 이해인 시인은 자신의 詩 ‘말을 위한 기도’ 중에서 말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한명석 局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