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에 살림을 차린 제비를 보면서 직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길조'를 봤다며 즐거워했다는 내용과 함께 희귀조로 전락해버린 제비의 애환을 실었다.
사실 제비야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새다. 심보가 고약한 시골 노인도 처마 밑에 제비집 정도는 짓도록 배려한다. 더욱이 받침을 달아 배설물을 받아주고 새끼들을 보호한다.
삼짇날(3월3일) 왔다가 중양절(9월9일)에 돌아간다는 제비는 우리와 가장 친숙한 새다. 해충을 잡아먹고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판소리 흥보가도 “제비 몰러 나온다” 부분에서는 절로 흥이 난다. 물찬 제비란 말도 있다. 서양에서도 제비는 풍요와 행운의 새로 알려져 있다.
부정적인 의미의 ‘제비족’이란 말도 있다. 오렌지족이 주로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10대와 20대를 일컫는다면 제비족은 카바레에서 노는 30대 이후의 장년들을 가리킨다. 제비족은 날렵한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물 좋은 서울 강남이라는 지역 때문에 생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착한 제비로서는 억울한 말이다.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지구온난화 탓도 있고 지난 40여년 동안에 과다 사용한 농약으로 메뚜기, 잠자리, 나비 등 제비의 먹이인 곤충들이 거의 멸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각종 환경호르몬의 섭취로 제비 수컷의 정자가 거의 없어져 버렸다. 제비는 이렇게 사라지면서 우리 인간에게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다.
몇해 전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거북이 한 마리가 뭍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날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 한말을 사서 거북이에게 주었고, 놀랍게도 거북이는 막걸리 한말을 다 비우고 비틀거리며 바다로 돌아갔다. 거북이가 용궁에 돌아가서 마을사람들의 따스한 인정을 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날 이후 바닷가 사람들은 물고기가 많이 잡힐 때마다 거북이에게 막걸리를 후히 대접한 덕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 시대는 가히 '파괴의 시대'라 일컬을 만큼 도처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합리적 이성이 더욱더 인간중심주의를 합리화시키고 과학적 사고가 자연지배의 기술을 발전시켜 가는 이 시대에도 자연의 신성을 저버리지 않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생태계의 위기에 직면한 이 지구의 희망을 본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죄로 코가서스 산의 바위에 묶인 채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당한 프로메테우스처럼, 당산나무 허리에 묶여 말라가고 있는 한 마리 명태의 희생이 마을을 평화롭게 한다고 믿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풍습들은 개인 혹은 집단의 현세의 기복만을 비는 물신숭배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기에 미래지향적이고 실천적 의지가 요청되는 생태담론 측면에서야 그다지 탐탁스럽게 여길 바는 못된다. 다만 이러한 풍경들에서 잠시 밀려나기는 했을 뿐 우리 마음 저편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자연에 대한 신성성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해서인지 그저 막연한 연민처럼 다가선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환경문제를 푸는 열쇠는 무엇보다도 인식의 전환에 있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그동안 무자비한 자연 착취를 일삼았다. 자연의 신성은 사라지고 다만 자연을 인간문명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여기게 됨으로써 자연에 깃든 생명들은 처참히 유린됐다. 오직 인간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 현실주의와 개체 이기주의에 깊이 물들어왔던 까닭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겪고 있는 전지구적 생태의 위기는 그로 말미암은 필연적 결과이다.
지금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도래한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움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먼저 자연은 인간의 번영만을 위해 존재하는 백그라운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뭇 생명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살아있는 큰 단위의 생명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또한 뭇 생명이 지니는 바 신성한 가치를 존중하는 생태윤리를 새롭게 정립하고 인간과 자연이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하찮은 제비 몇 마리 없어진 게 무슨 대수냐고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제비가 살지 못하고 떠나는 사연이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왜 우리가 생태도시를 지향하고 친환경농업을 육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 또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