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나무는 봉황과 관련이 있다. 봉황은 고대 중국 사람들이 상상하는 상서로운 새로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영물로 일컬었으며, 덕망 있는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고 한다. 그밖에 뛰어나게 재주가 있는 사람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는가 하면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봉황은 식성이 꽤나 까다로운 새여서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이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대나무는 50～60년 만에 어쩌다 꽃이 피니 식성이 고상한 것은 좋으나 자칫하면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벽오동나무는 봉황이 앉는 나무여서 옛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심고 가꾸어온 행복한 나무의 하나이다.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옛 시조에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내가 심는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빈 가지에 걸려있네’라고 했다. 태평성대를 몰고 온다는 봉황이 벽오동나무에 내려않기를 기원하는 애절한 바람을 엿볼 수 있다.
“갑자기 웬 벽오동 타령?”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벽오동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봉황새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벽오동을 심어 봉황을 내려 앉힌 전남 나주시 봉황면 봉황농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해 연말, 직원 명예퇴직 위로금 과다지급 문제로 촉발된 봉황농협 개혁투쟁이 조합장의 자진사퇴 결심으로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지난달 28일 열린 봉황농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조합장이 이달 말일까지 자진 사퇴하겠다는 결심을 밝혔고 조합장과 직원의 인건비, 인건비성 경비 등 5억여원을 삭감하는 수정예산안도 통과됐다. 이와함께 임원 실비도 15만원에서 10만원으로 하향 조정해 방만한 조합경영의 책임을 이사, 감사들에게도 물었다. 4개월여에 걸친 개혁투쟁의 승리는 조합원들이 힘을 합치면 농협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향후 타 지역 농협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 지역농협이 사실상 농협의 근본취지나 본분을 망각한 채 신용사업 위주의 방만한 조합경영으로 치닫고 있고 심지어 부총리급 연봉에 맞먹는 연봉 8천만원짜리 전무가 상당수에 이르는 등 농가부채에 신음하는 농민의 현실과 괴리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지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결산서와 예산서를 바탕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상당수 농협이 매출 총 이익 대비 판매관리비가 70～80%를 넘나들고 있는 반면 교육지원사업비는 평균 10%대에 머물고 있어 농민교육과 비료 및 퇴비 등의 무료 지급 등에 쓰이는 교육지원사업비보다 인건비 및 사무용품 교체,구입 등에 쓰이는 판매비와 관리비 지출이 훨씬 많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지역농협이 조합원의 이익은 뒷전에 미룬 채 직원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난을 양산하고 있으며 여느 지역을 막론하고 조합원을 위한 진정한 농협으로의 개혁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의 욕구를 끊임없이 분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농협은 ‘농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과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설립목적 아래 농업인들 스스로가 출자금을 십시일반 모아서 만든 협동조직이다. 설립목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협의 주인은 분명 농업인인 조합원이다. 그러나 현실은 주인은 배를 곯고 있는데 세경 받는 머슴들은 고액연봉에 배 두드리고 있는 꼴에 다름없지 않는가?
일각에서는 “이같은 농협 임직원들의 고액 고용비용이 농협부실을 초래하고 나아가 조합장 선거에서 금품선거 등 부작용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임직원들의 임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타 직종과의 형평성을 유지하고 조합원들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장흥군농민회에서 발간한 ‘장흥군 농협 백서’에서도 “명분없는 수당으로 임금의 몇배를 받는 보건단련비, 출근하면 무조건 4천원이 지급되는 업무활동보조비 등이 바로 대표적 도둑질이다."라는 글을 통해 농협의 이같은 현실을 비난하고 있다.
봉황농협의 개혁투쟁이 조합원의 승리로 마감되고 조합장을 비롯한 임직원의 임금문제가 현실적으로 조정되는 등 상당부문에서 개혁이 실현되고 있음은 실로 바람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우리지역 농협들도 한 그루 벽오동을 심는 마음으로 개혁을 실천에 옮겨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