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행을 신중히 하는 것은 미덕이었다. 특히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儒敎倫理가 지배했던 국가에서는 사람의 言行에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했다.
죽음에 대해 來世를 제시했던 불교와는 달리 肉身은 죽되 정신은 영원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삼불후(三不朽)로 제시하면서 그중 하나로 立言(훌륭한 말을 남김)을 꼽았다.
삼불후란 春秋左傳의 襄公 二十四年條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몸이 죽어 없어지고 오랜 세월이 흐르더라도 절대 썩지 않고 영원히 전해지는 세가지, 즉 立德, 立功, 立言을 말한다.
'언여기인(言如其人·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이라고 해서 말 그 자체가 인격을 대신한다고도 여겼다.
이처럼 말이 중요했으므로 신중(愼重)에 신중을 기해야 했으니 이른바 '신언(愼言)'이 그것으로 군자의 필수 요건이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내뱉는 말을 '放言'이라 했으니 시정잡배(市井雜輩)의 소행으로 치부했다.
세치 혀(三寸舌)를 여하이 놀렸느냐에 따라 인격을 달리 평가받았으며 심지어는 一身의 영달과 망신이 극명하게 갈리기까지 했으니 역사를 통해 그런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옛날 전국시대 소진과 장의가 현하의 달변으로 제후를 요리해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殷나라 비간은 혀를 함부로 놀려 심장에 구멍이 일곱 개나 뚫려야 했고, 한생은 탕확(사람을 삶아 죽이기 위해 만든 커다란 가마솥)의 형벌을 받았으며 사마천은 거세의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선인들은 말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晉의 부현은 병종구입 화종구출(病從口入 禍從口出·病은 입으로 들어오고 禍는 입에서 나온다)이라고 했으며 五代때의 풍도는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입은 禍의 大門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다.
사불급설(駟不及舌)도 비슷한 뜻이다. 駟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다. 지금 말로하면 배기량 3000cc가 넘는 대형차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빠른 마차로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뜻으로 '말을 삼가서 해야 한다'는 경구다.
최근 담양군공무원직장협의회 게시판에 "기자들은 거지..... 개XX떼 같은 족속들" 운운하며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저질스러운 욕설로 가득찬 비방글이 올랐다. 그러자 기자들이 연명으로 "불특정 다수가 열람하는 공간인 직협게시판에 기자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한 글을 올린 '보름달'이란 아이디의 공무원을 찾아달라"는 탄원서를 경찰에 접수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이 공무원은 이번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기자들을 비방하고 음해 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명색이 지식층이자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들이 이용하는 직장협의회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이 흡사 방언(放言)을 연상케 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지역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고 이런 공무원들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군민들은 또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다.
수사를 의뢰하는 탄원서가 접수되자 급기야 '보름달'이란 아이디의 공무원이 자기가 올린 글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겁이 나서 그리했든 아니면 본인 스스로 뉘우쳐서 그리했던 이미 그의 행위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사결과 보름달의 실체가 밝혀지면 과연 그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지 자뭇 측은한 생각이 앞선다. 사불급설(駟不及舌), 한번 내뱉은 말은 어떤 수단으로도 주어 담지 못한다는 경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한명석 局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