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는 1497년 리스본에서 출항했다. 그러나 미지의 해역인 인도양 항해에 회의적이었던 승무원들은 항해도중 폭풍을 만나게 되자 회항을 요구하며 폭동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바스코 다 가마'는 배에 있던 항해도구와 지도 등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리고는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고 소리쳤다. 이듬해 '바스코 다 가마'는 무사히 인도에 도착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다.
또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에는 이런 글이 실려있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 있을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달 12월도 며칠 안 남았다.
12월은 섣달이며 극월(極月) 성찰의 달이라고도 한다. 세모에는 금전채무는 물론이고 마음 빚까지 모두 갚는 달이다.
또한 12월은 물같이 원숙한 멋이 있는 달이다. 우리는 사물을 대함에 있어 많은 부분을 겉모양에 현혹된다. 하지만 멋이란 온갖 사물의 내적 진미가 제대로 된 멋이다. 사람에게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인품이 멋이고, 물건은 고급스럽게 보이는 품격이 멋이다.
마음을 편협하게 쓰는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힘들고 피곤하다. 자신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타인의 소중함은 모르는 사람, 참 멋없는 사람이다. 또 황금만능시대라고 모든 것을 경제력으로만 판단하려는 못된 습관을 가진 사람, 정말 멋없는 사람이다.
발랄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물 한잔으로도 즐거운 연회를 만들 수 있고 쾌활하고 명랑한 아내는 남편을 항상 즐겁게 하고 아이들을 밝게 키운다고 했다. 참 멋있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에 대해 그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참 멋이다. 물은 만물에 혜택을 주지만 남과 다투는 일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만 머문다. 이렇게 이웃을 생각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마무리를 하는 달이 바로 12월이다.
삶이란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도 여문 곡식의 추수를 위해 온갖 시련들을 참고 견디며 그 아픔을 보듬는 것이요, 때로는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한 의지와 오랜 참음으로 출렁이는 파도까지도 잠재울 수 있는 너그러움과 용서와 이해의 과정이다.
살다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때로는 자의든 타의든 얽히고 설켜서 복잡미묘한 관계를 갖게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관계 속에서 여린 마음이 상처를 입기도 하고 또 그것이 약이 되어 한 뼘 키 자람을 느낄 때도 있다.
12월은 한해를 갈무리하는 달이다. 주변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부질없는 것들은 모두 버리자. 나보다 못한 사람 깔보지 말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 하지 말자. 대립과 반목, 시기·질투와 갈등을 버리고 화합과 협력, 용서와 포용이 가득한 멋있는 세상을 만들자.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으로 신바람 나는 일만 만들어 서로 서로 칭찬하는 세상을 만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