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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에세이 제13호/귀뚜라미도 잠 못 이루는지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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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3  14: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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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 추한 것도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고. 누군가가 던진 추한 말 한마디가 아름다운 꽃이 될 때까지 가슴에 담는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끈기를 갖고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만 꽃 한 송이를 겨우 얻게 되더라. 견뎌야할 말들이 내 가슴에 가득하다. 그대들 덕분으로 내 안은 향기 가득한 화원이 될 것이다.

평화롭게 노니는 수족관 물고기를 보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꼭 한마디라도 던지고 가는 것이 사람이다. 그것도 칭찬이면 듣는 물고기도 기분 좋을 텐데, 비웃는 듯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물고기가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는 동물이 그 수준밖에 말을 못하냐?”

‘팔불출’ 언제 적 말인가, 까마득하다. 그런데 그 말을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참석한 저녁모임에서 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주인공이 그 누군가의 남편으로 오랫동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나이 들어 말이 어눌해진 건가 싶어 자꾸 쳐다보았다.

서각가인 내 남편이 시인인 나의 시를 서각해서 다음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계획을 말하자,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남편을 향해 “팔불출...” 비꼬듯 말했다. 서각을 하는 남편이 이왕이면 아내의 시를 서각에 접목시켜 서각예술로 승화시켜보겠다는데, 그걸 ‘팔불출’이라니, 오히려 그가 칠불출이 아닌가 싶었다. 활짝 열렸던 가슴이 접혔다. ‘침묵이 금이다’라는 말만 속으로 되뇌며 입을 다물고 온 마음으로 삐걱거리는 의자를 견뎠다. 식탁 위 물 컵 속에서도 격랑이 일었다. 남다른 일을 할 때 어떤 말에도 의연해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내가 일찍이 채득한 내용을 눈빛으로 남편에게 보냈다. 의자에 느긋하게 걸터 앉아있던 저녁 해도 불편했던지 서쪽으로 서둘러 날아가고 있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남편 역할을 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아내 역할을 할 뿐인 우리는 그저 마음이 동해서 기쁘게 서로의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우리부부의 자연스런 생활 모습이다. 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에헴! 소리가 기세당당하게 하늘로 치솟는 걸 보니, 그는 아내의 헌신을 당연한 걸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식당을 나오며 옷을 거꾸로 힘껏 털었다. 저 고리타분한 소리에 창밖 바람도 윙윙 심한 소리를 냈다.

그동안 많은 아내들의 삶이 고달팠던 게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가부장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편들 때문이었으리라, 시대의 흐름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 내 나이 수십 평생을 살아도 그런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가부장적인 말은 마음에서부터 청소되어야 한다. 팔불출이라는 어설픈 말도 사전에서 사라져야한다. 부끄러운 말이다. 창가에 떠있는 가을 달도 고개를 끄덕끄덕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가린다.

요즘 티브이를 보면 젊은 층 부부들이 가부장적 사고를 허무는 일을 용감히 해댄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맛있게 요리해서 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하는 등 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을 ‘사랑꾼’이라고 한다. 참 달콤하고 예쁜 말이다. 이런 젊은 층 부부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위로가 된다. 처음부터 이런 길을 가는 내 남편이 동지를 만난 듯 외롭지 않아 보여서다. 가부장적 태도를 일찍 내려놓은 남편은 일찍 생각이 트인 사람이다. 저 사랑꾼 젊은 남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점에 나는 행복하다. 내가 아직 이 세상을 좋아하는 이유다.

행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남편이 나를 존중해줄 때 가장 행복하다. 남편이 “나는 팔불줄? 사랑꾼!” 하고 살아서 행복하다. 내가 행복해서 콧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가 남편의 숨소리를 타고 속으로 들어간다. 남편 또한 노래 소리로 안을 채우고 그 노래 소리가 내 속으로 들어가 돌고 돈다.

팔불출이든 사랑꾼이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아무나 못하는 일을 젊은 층 남편들이 하고 내 남편도 한다. 내 남편이 앞선 등불인가 싶기도 하다. 남편은 사랑꾼 자리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여전히 내 시를 한 자 한 자 나무에 새기는 일을 정성껏 한다. 그걸 여기저기 공모전에 출품해서 상까지 척척 받는 영광도 차지한다.

이른 아침부터 탁탁탁 남편이 나무에 글을 새기는 소리가 작은 북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타악기 소리처럼 듣기 좋다. 그 곁에서 나는 컴퓨터 자판기에 시를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다. 자판기 소리와 나무에 글을 새기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시의 향과 나무의 향이 우리 집에 가득하다.

‘말은 화학 원소가 아니라서 쉽게 결합하지 않아 사과는 사과대로 욕은 욕대로 오래 남는다.’는 말을 오래 생각해본다. 귀뚜라미도 잠 못 이루는지 그래그래 귀뚤귀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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