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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에세이 제8호/정이 아니고 사랑으로양윤덕(시인·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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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4  1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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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사랑의 빛이 퇴색하면 정으로 산다고 한다. 그러나 부부가 아직도 사랑으로 산다고 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결혼반지의 보석은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다. 나는 약혼반지로 십팔금에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라고 불리는 여러 빛깔의 큐빅이 별처럼 오밀조밀 박힌 반지를 받았다. 값으로 치면 그다지 비싸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 중 푸른 사파이어는 진실과 성실, 초록 에메랄드는 행복과 부부애, 빨간 루비는 깊은 애정 등 저마다 결혼생활 내내 새겨야할 약속 같은 마음들이 담겨있다.

그런데 그 소중한 반지를 오래전에 손에서 잠깐 빼놨다가 남편과 내 반지 모두를 잃어버렸다.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그 사랑의 반지가 언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았는지, 서로의 마음속에서 알게 모르게 변함없이 사랑의 빛을 지금까지도 안전하게 발휘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부부로 살아오는 동안 지금까지도 보석반지처럼 변함없이 “여보, 사랑해”라는 말을 주고받고 있다. 집안에서도 서로 눈빛이 마주치면 “여보, 사랑해” 하고 다가가 포옹을 할 때도 있다. 전화할 때, 또는 카톡으로 문자를 보낼 때 “여보 사랑해”로 문자 내용의 끝을 마무리 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어느 날엔 뜬금없이 장난스럽게 “여보, 사랑해”라는 말만 보내기도 한다. 내 남편이기에 언제든지 문자를 보내도 상관없다. 그러면 남편도 “그래, 여보 사랑해” 답이 온다. “여보 사랑해” 라는 말은 영원히 반짝이는 보석반지다.

만약 남편과 내가 “여보, 사랑해”만 천만번 주고받았다면 수십 년 결혼생활 내내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지 싶다. 누구나 말하듯 결혼하고 몇 년 지나면 사랑이 아니라 정으로 산다는데,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챙겼다. 오래전 남편이 서각을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걸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기회가 되었을 때 서각학원에 등록해서 서각을 배워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그 때 내 마음을 남편은 두고두고 “여보, 고마워” 하고 표현한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올 때쯤이나 집에 있을 때, 나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남편이 쾌적하게 쉴 수 있도록 하고, 늦은 시간에도 빈대떡이 먹고 싶다고 하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든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과 늘 함께 마트에 가는 날이 많은데 그때마다 남편은 무거운 짐을 꼭 챙긴다. 그리고 외출할 때 신고 나가라고 구두를 반짝반짝 윤기나게 닦아놓는 일 등 작은 일이지만 남편 사랑을 느끼게 하는 날들이다.

어느 날 서각을 하고 있던 남편이 슬며시 웃으며 십장생 그림인 푸른 소나무에 학이 앉아있는 디자인민화 쌍학도 한 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 송반무여학(松伴無如鶴)이라는 글을 전서체로 새길 거라고 했다. 송반무여학은 푸른 소나무와 흰 학의 만남은 가히 환상이다. 즉 소나무의 짝은 학과 같은 것이 없다는 뜻이라면서 “이재성의 배우자로서 양윤덕이만한 사람이 없어”라는 말을 곁들였다. 순간 뭉클했다. 평소 “평생 당신만을 사랑해” 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남편이지만, 헛말이 아니었구나, 평생 믿고 살아도 되겠구나, 싶어 눈물이 살짝 났다. 그러더니 며칠 후 그림과 글씨 솜씨를 멋지게 발휘한 작품에 ‘이재성의 배우자로서 양윤덕(詩人) 만한 사람이 없다 (2020년 7월 7일)’ 라는 글귀를 그림 뒤에 써서 내게 선물로 안겨주었다. 그 마음이 진심이냐고 하니 머뭇거림 없이 그렇다고 해서 바로 나만을 위한 말로 특허등록을 해두었다. 벽에 걸어놓고 바라보는 일 자체만으로도 남편의 사랑이 느껴진다.

우리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건 함께 꿈꾸며 초원을 달리는 것과 같다. 남편이 하는 사소한 일일지라도 나를 위한 특별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노라면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 되어 “여보, 사랑해”라는 말이 나온다. 그건 바로 나의 기쁨이 되고 가정의 행복이 된다.

큐빅 보석반지가 누구에게는 흔한 것이 되고, 누구에게는 귀한 것이 되겠지만, 그리고 “여보 사랑해”같은 말이나, 남편의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특별한 일이 아니겠지만, 나는 남편이 나를 위해 하는 하나하나의 표현과 행동들을 나만을 위한 특별함으로 받아들인다. 가끔 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는 손길 하나에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며 “여보,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 하고 말한다.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마음에 활기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니 권태로움이 쉬이 찾아들 틈이 없다.

하지만 살다보면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기계일지라도 잠깐씩 멈추듯, 티격태격 다투는 날도 있다. 이런 일은 탄력을 위해서나 환기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기계도 오래 멈춰있으면 녹이 슬 듯 우리는 빨리 화해를 서두른다. 다툼이 있은 뒤 서로 서먹서먹할 때 “여보, 사랑해” 포옹을 하며 먼저 다가가면 남편이 빙긋이 웃는다. 그러면 그때 다시 사랑의 마음이 봄 나무의 싹처럼 파릇파릇 돋는다. 거짓말 같은 참말이다.

외출할 때 “여보 잘 다녀와, 사랑해”라는 말을 남편으로부터 듣고 집을 나서면 듣지 않은 날보다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이런 날은 목걸이나 반지를 굳이 하고 나가지 않아도 왠지 당당하다.

보석으로 치장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남편의 표현 하나하나가 최고의 보석이 된다. 몸에 지닌 귀금속은 도둑맞을까 조바심이 날 수 있지만, 남편의 한마디 표현과 행동은 늘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 있으니 아늑하고 우아하다

남편이 나를 위한 행동과 한마디 표현은 세월이 흘러도 내 영혼 속에서 빛나고 있다. “여보, 사랑해”로 말하는 순간 내 마음도 남편에게 스스럼없이 달려가 안긴다. 초록 에메랄드의 빛으로, 빨간 루비의 빛으로 남편의 영혼 속에서 영원히 빛나고 싶다, 이 순간 우리는 지상최고의 빛나는 보석반지를 나누어 낀 느낌을 가진다.

내가 먼저 “여보 사랑해”하는 게 좋고, 남편이 “여보 사랑해”라고 마음을 받아주는 것이 좋다. 사랑하면서 서로 닮아간다.

부부가 정으로 산다는 어떤 부부들 틈에서 나는 우리 부부의 “여보 사랑해”를 늘 자랑삼는다. 오래전 경상북도 안동의 어느 옛무덤에서 나온 원이엄마 편지가 문득 생각난다. “여보,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까요.” 원이엄마가 원이아버지 무덤 속에 넣어둔 그 사랑의 편지가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 모두가 울었던 것 같다.

부부가 사랑의 빛이 퇴색하면 정으로 산다고 하는 말은 내게 너무 멀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사랑으로 사는 부부라야 진짜 행복한 부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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