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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에세이 제7호/샐러리맨 아내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행복양윤덕(시인·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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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9  0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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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울타리로 서 있는 쥐똥나무에게 월급쟁이 아내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봄이 되면 맨 먼저 파릇파릇 싹을 틔우는 사랑스러운 쥐똥나무에게.

남편의 월급날은 다른 날보다 더 행복한 날이었어. 적은 월급이지만 월급날이면 우리 가족은 때때로 외식을 했지. 흔히 먹는 짜장면이지만 그날에 먹는 짜장면 맛은 특별했어.

그리고 남편이 또 옷을 사주었지. 애들과 함께 옷집에 가서 옷을 고르고, 내 옷도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을 손수 골라주며 행복해 했지. 나도 아이들처럼 아이 좋아라, 너무 좋아. 기뻐하면 남편은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이지. 행복의 꽃밭이었어. 남편이 골라주는 옷은 언제나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었단다.

내 옷장에 걸려있는 대부분의 옷들은 남편이 월급을 타서 여러 곳을 다니며 골라주고 입혀보고 제일 잘 어울린다 싶을 때 사준 옷들이야. 옷장 속에 걸려있는 옷들을 볼 때마다 남편이 굳이 사랑해 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피부에 닿지. 비록 백화점 옷은 아니더라도 남편의 값진 월급으로 남편의 마음까지 담긴 옷을 볼 때면 몇 십만 원대 백화점 옷이 부럽지 않아. 그저 명품이 라벨에 있는 것이 아닐 뿐이지. 나의 옷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로지 단 하나 남편의 사랑이 명품라벨이지.

남편이 받아온 월급은, 내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한 달 동안 꼭꼭 씹어 삼킨 한숨소리와, 순간순간 화를 억누른 마음과, 어린상사의 거친 말을 견뎌낸 치욕의 순간들과 승진에서 밀려난 날의 좌절감, 그리고 처자를 떠올리며 문득 문득 참아낸 인내의 마음이 담겨있지. 남편이 일일이 그런 맘을 드러내지 않아도 회사생활이란 원래 언제나 순탄치 않다는 걸 잘 알지. 그런 월급으로 나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일은 늘 뒷전으로 미루었으니. 그리고 우리가 웃으면 함께 웃으며 행복해 했지.

아이들이 다 자라서 객지로 나간 뒤에도 남편은 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옷을 사주는 일을 빼놓지 않고 있단다. 늘 잘 먹이고 잘 입히려 하고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언제나 그 말뿐이지. 한 달에 꼬박꼬박 받는 월급처럼 한결같은 남편의 마음을 꼬박꼬박 받으며 나는 내일 쓸 돈 천 원만 있어도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이었지. 돈은 금방 바닥이 나도 남편이 채워주는 사랑으로 마음은 늘 가득했지.

지금까지 남편의 그런 월급으로 우리 가족은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았다. 관리비도 내고, 은행 융자도 갚고. 딸·아들도 가르치고, 내가 경력단절이 된 날부터 지금까지 글을 쓰고 책만 읽고도 살 수 있었지. 밥 맛있게 먹었고, 간간히 찻집에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와 모임 회비도 내고.

특히 더 좋았던 건 아침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남편을 손님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결혼 전에 꾸었던 꿈을 이룬 거였지. 큰 행복이었어.

나는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남편하고 결혼한 걸 최고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비록 월급은 얼마 안 되지만 사장이나 의사, 박사 사모님인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어. 나는 월급을 받는 정직한 내 남편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거든.

얼마 안 되는 월급이지만 그 부족함 속에서도 사과 한쪽을 놓고도 당신 더 먹어, 당신이 더 먹어. 당신 옷 사요. 아니 당신 옷 사 하는 훈훈한 날들이었지. 잔잔한 정이 서로의 가슴에 차고 넘쳤지.

친구가 유럽여행을 몇 번씩 오고가고 했다고 자랑처럼 얘기하면 그 친구가 더 신나도록 나는 “부러워!” 진심으로 흥을 돋워주고, 밍크코트를 자랑하는 친구에겐 “나는 언제 입어보지”하고 흥을 돋워주었지. 나는 월급쟁이 아내로 살면서 마음을 내주는 여유를 배웠고, 낮아지는 자세를 배웠고, 욕심을 비워 넉넉해진 내 마음자리로 고통 받는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되었지. 나를 겸손해지도록 눌렀지.

누가 내 남편에게 지금도 회사 다닌다고 융통성 없다고 빈정거릴 때면 ‘당신들보다 내 남편이 훨씬 나아’ 속으로 시원하게 한방 먹였지.

그런 남편이 이젠 정년퇴직을 며칠 앞두고 있어. 그 소박하던 날들의 행복 끝까지 잘 지켜가도록 노력해야겠지.

창고에 저축되어 있는 곡식이 없으면 흉년과 기근에도 대처할 도리가 없다고 하는데 오늘만큼은 통장 잔고에 대한 생각은 미뤄둘까 해. 왠지 들떠있는 남편의 기분을 망치지 말아야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고마운 날들이야.

이건 꿈인데 말이야. 남편이 정년퇴직하는 날 꽃다발 들고 정문 앞에 가서 기다렸다 남편에게 안겨주고 싶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어. 그리고 기념패를 전달해야겠어.

*축*

정년퇴직

이재성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1982년 11월에 입사해서 2020년 6월 27일 정년퇴직을 끝으로 중간에 퇴사한 2년 정도를 빼고도/ 37여년을 한 직장에서 강인하게 버텨온 당신 덕분으로 /우리의 딸(이서이), 아들(이기석), 아내 양윤덕이 큰 어려움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전된 삶을 살아왔어요./ 한 회사에 젊음을 바친 보람되고 좋은 추억으로만 기억되길 바랄게요. /우리의 딸, 아들도 당신의 강인함과 성실성을 이어받아 잘 살아갈 겁니다. 여보! 존경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당신은 우리 가족의 자랑! 이 마음 영원합니다. /나의 남편 이재성!/만세! 만세! 만세!/ 2020년 6월 /당신의 아내 시인 양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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