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독자투고/인터뷰
‘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제4호양윤덕(시인·수필가, 담양시댁)
담양인신문  |  webmaster@wdy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5.15  09:18:1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우아한 하객들과 함께

결혼생활의 목표는 서로 존중하며 행복하게 사는 일이다. 그래서 결혼기념일도 열심히 챙긴다. 결혼기념일은 부부로 탄생한 생일인 만큼 서로 최소한의 선물이라도 주고받고 싶은 날이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않으면 서운한 것처럼 서로 챙겨주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이 오래간다. 많고 많은 인연 중에 부부로 탄생되어 살아가니, 당신을 만나 행복하다, 그동안 수고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 그런 감사와 사랑의 마음과 미래를 담아보는 것이 선물이다. 서로 맘껏 축하하고 축하받자. 그리고 살아있는 한 함께 살아가야할 소중한 인연을 잘 챙겨보자.

하지만 더 좋은 선물은 부부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 일이다.

“딩동, 딩동”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 택배를 신청한 것도 없는데 오전 11시 현관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하는 순간 남편이 활짝 웃으며 들이닥친다. “여보, 33년차 결혼기념일 축하해!” 나는 당황하며 “아, 그렇구나, 결혼기념일이었구나!” 그때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리고 먼저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잠시 스쳤다. 남편은 잠깐 외출을 신청하고 나왔다고 한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하객들까지 대동하고 왔다. 장미꽃송이와 안개꽃송이들, 그리고 제나늄과 영산홍 화분까지, 우아하고 기품 있는 하객들에 나는 압도당했다. 텅 빈 거실이 금세 시끌벅적하면서 향기로운 잔칫집이 된다. 나는 남편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화려한 옷차림의 하객들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신부인 나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치장을 서둘렀다. 치장하는 내내 설렜다. 처음 신부화장을 하던 그날의 결혼식 날 설렘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었다. 새 신부처럼 수줍게 웃으며 그의 앞으로 다소곳 다가가자, 남편이 정식으로 꽃다발과 함께 ”여보! 우리의 결혼기념일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 사랑 고백과 사랑의 세레나데를 중후한 바리톤 목소리로 멋지게 한곡 부르고 포옹으로 마무리를 했다. 이어서 나도 한 곡 ‘오늘 다시 보아도 처음 본 그날처럼 그리움에 눈매 깊어지네요 ……. 내가 직접 작시한 가곡 ’당신 곁에 있어요‘를 화답으로 부르고, 오래전에 배운 고전무용 ’태평무‘를 선보였다. 그리고 ”여보, 사랑하고 축하해요“ 사랑 고백과 포옹을 했다. 우리부부는 하루하루 사랑 고백을 하고 사는 날이 많지만, 오늘 주고받는 사랑이라는 말이 첫날밤의 사랑 고백보다 더 두근거리게 했다.

꽃송이들 하객이 환호성을 지르며 마주보고 선 남편과 나를 향해 일제히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듯하였다. 신부입장 때 울려 퍼지는 결혼행진곡처럼 꽃향기는 황홀하고 은은하다. 이 남자만을 사랑하며, 절대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만 살아야지. 평생 연애하듯이 낭만적으로 멋지게 살아야지……. 33년 전 결혼식을 마치고 결혼식장을 나설 때 새긴 각오 못지않은 새로운 각오들이 문득 생긴다.

돌아본다. 그 순수한 날에 새겼던 그 마음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살아왔는지, 남편에게 성실했는지, 일편단심 진심으로 이 남자만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낭만적으로 연애하듯이 행복하게 살아왔는지, 서로 싸우지는 안했는지……. 아쉬운 점이 많다.

우리 결혼기념일은 4월 19일이다. 마치 4.19 투쟁처럼 전투적으로 살아온 날이 많다. 남편 말이 옳다 해도 조선시대 여인처럼 무조건 “네 네” 하며 살 수는 없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일도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해시켜야 하는 논리적 충돌도 피곤했다.

부부문제는 부부만이 안다고, 서로 귀 기울이고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 불만만 쌓였고, 각자 자신의 단단한 고집의 옹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것이 벽으로 단단히 굳어졌다. 앞으로 함께 무너뜨려야 할 벽이다. 부부는 칼로 물 베는 사이라 하니 그 벽이 쉽게 무너지리라 믿는다.

이제 30여 년을 산 우리 부부 모습이 호수를 닮아갔으면 한다. 좁은 웅덩이로 있던 가슴의 벽을 툭 터 넓은 호수로 만들어가고 싶다. 해와 달과 비와 진눈개비를 함께 담고도 잔잔한 것이 호수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넓고 높게 성숙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넓고 높은 마음만 있으면 밋밋하다. 호수에는 물고기가 살아야 생동감이 있다. 부부의 마음에도 ‘사랑’이라는 물고기가 살아야 한다.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싱싱하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물고기다. 아가미가 펄떡거리고 지느러미가 흔들흔들하는 생동감 있는 물고기처럼 두 사람이 만든 마음의 호수에 늘 사랑의 물고기가 노닐어야 한다. 알록달록한 물고기 같은 사랑, 그러나 그 사랑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끼가 낀다.

결혼기념일은 그동안 살아온 날들에 대한 결산보고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성찰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관계가 잘 굴러가려면 이런 성찰의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결혼기념일이 그날이다.

남편이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고 포옹을 서두른다. 오늘의 신랑·신부 퇴장을 알리는 향기가 잔잔히 깔린다. 창창한 오후를 향해 함께 팔짱끼고 나란히 발맞추어 걸어가는 남편과 나의 뒷모습을 딸·아들이 보았을 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담양인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기자코너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담양군 담양읍 미리산길 28 별해리A 상가동 3층  |  대표전화 : 061)383-2772  |  팩스 : 061)383-9945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다 174호(2002.10.25)
대표이사·발행인 : 김동섭  |  편집인 부사장 : 김광찬  |  편집국장 : 정용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용택
Copyright © 2013 담양인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