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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전우치 설화 살아 숨쉬는 담양‘금성면 원율리·수북면 황금리’ 신비의 전설 간직
김관석 기자  |  wdy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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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6  13: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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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수북면 황금들녘
   
▲ 전우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금성면 금성산성
   
▲ 금성면 원율마을 전우치 설화 벽화
   
▲ 금성 원율마을 전우치 설화 벽화
   
▲ 금성면 원율마을 전우치 설화 벽화

녹색농촌체험마을 스토리텔링 자원 활용 기대

“백리(白里) 담양(潭陽),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큰강(萬頃)되니, 용담의 맑은 물은 용(龍)이 살던 곳 아닐런가.”

조선후기 판소리 명창 신재효는 ‘호남가’에서 이렇게 담양을 노래했다.

담양이라는 지명을 사용한지 어언 천년.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우리 고장 담양에는 지명유래담, 자연물 관련 설화, 사찰연기설화와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그 중에서도 소설 ‘전우치전(田愚治傳)’으로 유명한 전우치는 조선중기 원율현 출신의 담양전씨(潭陽田氏)로, 금성면 원율리와 수북면 황금리에 그에 관한 설화가 남아 있다.

해적이 들끓고 관리의 탐학이 심하여 당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이에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는 동자 한 쌍과 함께 구름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전우치는 기행과 이적을 행하다가 명나라 자금성에서 황금대들보를 훔쳐와 들보의 일부는 팔아 쌀을 사서 궁곤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때를 만나면 쓰기 위해 어느 강변에 묻었다.

황금 대들보를 묻은 강은 영산강이다. 설에 따르면 황금을 찾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강변과 들판을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대신 그들이 뒤집어엎은 땅은 곡식이 자라기 좋은 옥토(玉土)로 변해 해마다 풍년을 이루게 되었다.

영산강변 수북면에 있는 이 마을 행정명은 황금리이고 주민들은 마을을 황금마을이라 부른다.

전우치가 공부했던 절은 연동사다. 금성면 금성산성에 있다. 전우치가 공부했다는 굴도 있다.

당시 연동사 스님들이 빚어 전우치에게 지키게 했으나 흰여우의 꾐에 빼앗긴 술은 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고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라 불렀는데 지금 추성주라는 이름으로 복원돼 있다.

추성지에 “연동사 스님들이 절 주변에서 자라는 갈근, 두충, 오미자 등의 갖가지 약초와 보리, 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곡차로 마셨다”는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를 지낸 예전 이곳 원율현 출신 이영간의 증언을 적고 있다.

전우치의 신통방통한 행적은 비단 담양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 여러 곳에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놓고 있으니 부천문화대전에는 전우치가 경기도 부천지역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설에 의하면 이길은 부평부사를 역임했다. 이길(李佶)의 전장(田莊)이 부평에 있었는데, 1522~1566년간에 전염병이 크게 발하여 전장에 있던 이길의 종이 심하게 앓아누웠다. 이를 해서(海西) 사람 전우치(田禹治)가 고쳐 주었다는 말이 전한다.
뿐만 아니라 전우치의 기이한 행적은 전남 광양에도 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전우치는 이곳 궁기마을에 와서, 도술(道術)로 궁궐을 짓고 섬진강을 한강으로 바꾸어 놓았단다. 그리고 왕명(王命)을 빌어 섬진강을 끼고 있는 남원, 곡성, 순창, 구례, 하동 등지에 명하여 조곡(租穀)을 한강으로 가져 올 것을 명하니 순식간에 양곡(糧穀) 수만 석이 모이더란다. 전우치가 이 양곡으로 충청도 백성을 살리고자 충청도로 떠나 간 후…궁궐은 간곳이 없고 궁궐터만 남게 되었단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궁터마을로 불렀으니, 지금 광양시 태금면 태인리 궁기(宮基)마을이 바로 그 곳이란다.

지금까지의 전우치 행적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는 중종때 실존했던 인물임이 분명하고, 개성과 서울을 중심으로 생활하다가 필시 조광조의 기묘사화와 연루되어 수배를 받으며 남도 지방으로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곳곳에서 신기에 가까운 무술로 의적 노릇을 하며 민중들의 지지와 인기를 받았던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관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을 때 그 죽음을 아깝게 생각한 민중들에 의해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등의 갖가지 신기한 이야기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는 신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화를 모면하기 위해 족보에서도 지워져야 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해주고 민중들에게는 신선이 된 그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 새 세상을 열어주리라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때문에 전우치는 이미 어느 집안에 소속된 개인이 아니라 민중 전체의 희망이요 미완의 꿈에 대한 상징이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재미난 스토리를 지닌 전우치 설화의 활용방안에 대해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차제에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은 이연년, 전우치와 관련된 설화가 담양 금성산성과 원율마을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역사문화 체험학습장으로 삼아 스토리텔링에 이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관객들의 관심과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로 황금금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북면 황금리에서는 녹색농촌체험마을의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민들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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