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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조선 선비정신의 표상 석헌 류옥 선생담양 창평태생, 서거 500주기 기념 학술대회 성황
김관석 기자  |  wdy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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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1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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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현 류옥 선생 초상화

“조선시대 최초 토지소유제도 개혁 주창”

우리의 역사에서 그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은 조선의 선비였다. 선비의 기상, 그것은 여러 가지의 특징이 있지만 그 중요한 점은 사사로운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아니하고, 국가와 민족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었던 데 있었다.

자기보다 나라를 걱정하고, 스스로의 이익보다 백성들의 평안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마음과 그 정신을 선비정신이라 한다.

담양은 선비의 고장이다. 조선 조 500년을 통하여 담양에서 수많은 사림과 선비들을 배출했다.

이 중 조선 중종 조 때의 인물로 조선의 역사를 의리의 역사로서 흘러가게 하고 선비로서 지켜야 할 사명과 그 신념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몸소 보여 주었던 창평 태생의 석헌 류옥(石軒 柳沃 1487∼1519)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석헌 류옥 선생 서거 500주기를 맞아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문화류씨전간공대종회 주관으로 지난 19일 전남도립대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사육신현창회 부이사장인 이은식 박사가 ‘사육신 류성원의 생애와 절의정신’을, 광주대 류한호 교수가 ‘석헌 류옥의 정치경제사상’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학술토론이 펼쳐졌다.

이은식 박사는 발표에서 “사육신 류성원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등과 함께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쿠데타에 맞서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복위를 추진하려다 실패하고 처형당한 충신이다.

류성원은 집현전 학사로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의방유취’ 등을 편찬하기도 했다”면서 “사육신의 절의정신은 고려말 정몽주, 이색 등 학자들의 사상을 계승했으며, 조선 중기 이후 사림의 역사적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오종일 명예교수는 종합토론에서 “석헌 류옥, 눌재 박상, 충암 김정이 주도한 ‘삼인대 신비복위소’는 중종반정 과정에 왜곡된 정의와 의리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로 기득권세력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며 “삼인대 상소는 포은 정몽주로부터 시작된 조선조 의리정신이 호남으로 계승되었으며, 이후 사림정신, 가사문학으로 전승되었다”고 진단했다.

류옥 선생은 기묘명현으로 불리는 정암 조광조, 충암 김정, 눌재 박상 등 사림파들과함께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서 간관과 언관으로 활동하면서 중종의 정치개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류옥은 1515년 무안현감을 지내던 중 순창 강천사에서 담양부사 눌재 박상, 순창군수 충암 김정 등 사림의 거두들과 기묘사화(1519년)의 도화선이 되는 중종의 비 신씨(단경왕후) 복위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는 당시 세력을 확장하던 신진사림세력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던 반정공신세력에 정면도전한 첫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신진사림세력은 조광조와 김정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힘을 키웠으나, 4년 후인 1519년 기묘년에 이른바 주초위왕 (走肖爲王)사건을 조작한 기득권세력의 공격에 밀려 처절한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기묘사화에도 불구하고 사림세력의 등장은 막을 수 없었다. 1500년대 중반에는 조선의 지배권력이 사림세력으로 완전히 넘어갔으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면앙정 송순, 서애 류성룡 등이 이 시기 조선을 좌우하던 중요한 인물들이다.

또 류옥은 백성들의 균등한 생활이 국가경영의 핵식과제라고 보고 조선시대 최초의 한전제와 균전제 등 토지소유제도 개혁을 주창했으며 변방 지역 관료의 폐단을 퇴치하고 민중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9세 때 장문의 시를 지은 류옥은 15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후 21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했으나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로 좌천당하는 등 부침을 거듭하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실제로 석헌 류옥은 청렴한 정치를 펴고 백성을 위한 선정을 실시하여 가는 곳 마다 추앙을 받았는데 이 사실은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기록에 나온다.

선생 등이 올린 상소는 기묘사화의 원인이 되었지만, 이는 결국 성리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백성을 위한 정치는 중종 조의 도학정치를 발흥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선생이 소중하게 여겼던 의리정신은 조선조의 정신적 이상이 되었다.

이처럼 선생이 남긴 교훈과 그 업적은 너무나 크다.

석헌 류옥 선생 서거 500주기를 맞아 선생의 삶이 새롭게 인식되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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