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담양지명 천년 기획/㊴창평면 일산(一山)·장화(長華)·창평(昌平)·해곡(海谷)리
담양인신문  |  webmaster@wdy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8.26  16:06:3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창평리 고분(전남 문화재자료 제222호)
   
▲ 창평면 해곡리 유종헌 가옥(전남 문화재자료 제192호)
   
▲ 창평면 장화리 장전이씨 고택
   
▲ 창평면 일산리 마을 정자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일산1리 하산(下山)마을

일산리는 약 400년전 양산보의 4남인 제주양씨 서용이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흐르는 명당이라 하여 터를 잡았다. 마을 뒤 산이 마치 한 일(一)자와 비슷해서 일산마을이라 불렀다. 그 후 마을 가구수가 점점 늘면서 상산과 하산으로 나뉘어 불리게 되었다. 하산마을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둥우리 형국이다. 그래서 마을을 떠나면 잘 안된다는 속설이 있다. 마을 뒷산이 기러기 형국이라 하여 암기러기 홍자를 써서 홍골이라고도 하였다. 마을 너머는 연화촌인데 수기러기 형국이라 했다. 또한 뒷산 연화봉에 묘를 쓴 사람은 권세를 부리니 둘레를 막아야 좋다고 해서 막아 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2)일산2리 상산(上山)마을

상산을 예전에는 ‘사당골’이라 부르기도 했다. 사당골은 한 일자로 뻗은 뒷산 산맥 줄기에 움푹 들어간 곳에 해당된다. 이곳은 따뜻하고 개울이 보이는 명당 터인데 한량들이 그곳에 모여 활을 쏘며 놀았던 사장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장터가 와전되어 사당골로 불려졌다. 그 후 마을 이름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 하여 상산으로 개칭했다. 이 마을에는 전주이씨, 제주양씨, 밀양박씨, 경주정씨, 전주이씨 등이 살고 있다. 마을에 관한 전설로 옛날 한양에 사는 선비가 명당 상산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에 정착하려고 꿈에 부풀어 찾아와 일산이 어디냐고 물으니, 한 늙은이가 답변하기를 쌍다리(쌍교)를 건너서 한바다(일산리)를 횡단하여 다섯강(오강리)를 건너 삼천리(삼지내)를 더 간 뒤 주산을 돌아 반나절 쯤 가면 일산이 있다고 하니 이 이야기를 듣던 선비가 줄행랑을 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무나 마을에 들어 올 수 없음과 상산마을이 지세가 뛰어난 명당임을 보여주고 있다.

 

3)장화1리 장전(長田)마을

장전마을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마을의 지세가 좋아 명종 15년(1560) 금성나씨 위규가 대덕면 장산리에서 이주해 와 처음 터를 잡기 시작했으나 그 후 전주이씨들이 입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이름은 밭이 길게 형성되어 있어 장전이라 하고 진밭골(진매)이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진밭골로 부르면 큰 인물이 못난다 하여 한 스님이 장전마을이라 부르게 했다 한다. 그래서 인지 임진왜란부터 인조반정을 거치는 동안 국난극복에 일임한 정충신 장군, 17세에 무과에 급제한 양귀생, 월양공 허익복 장군 등 걸출한 인물들이 났다고 한다. 장전마을은 소쿠리 형국으로, 남쪽은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게 열려 있고, 앞에는 영산인 서석산이 아름다운 형태로 바로 보인다. 정 북쪽 중심에 전주이씨 고택(장전이씨 고택)이 있다. 이곳은 전주이씨 양녕대군 11대손 위정공이 1682년에 대덕면 매곡에서 분가하여 정착한 곳이다. 그 후 자손들이 번창해 후손 이승기 박사도 배출했다. 이승기 박사는 최초로 비날론 소재를 개발한 과학자인데 6.25때 월북했다.

 

4)장화2리 화양촌(華陽村)마을

화양촌마을은 1500년 전에 성씨가 거주하였다 하나 문헌이나 자료가 없어 고증할 수 없다. 중종 15년(1520) 채안택이 장성군 진원면에서 외가인 이씨 댁에서 살다가 조부 채수원을 따라 근처에 새터를 잡은 것이 기초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조선조 중엽에 홍주송씨의 후손들이 입주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마을 뒷산에 화양사란 절이 있어 절의 이름을 따라 화양촌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지금은 대밭에 묻혀 버렸지만 아직도 사금파리나 기와장이 나오고, 스님들이 찾아 온다. 원효산으로부터 장전산에 이르러 일지맥이 뻗어 주봉이 되어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은 훌륭한 인재가 많이 출생하였으며 예의를 준수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 우의하고, 친인척 간에 화목하고, 미풍양속을 선양하며 상부상조하는 모범된 마을로 알려졌다. 모든 명절 음식은 함께하고 나누어 가지며, 타성받이가 없이 송씨 자작일촌 마을이었다.

 

5)창평1리 시동(市洞)마을

창평은 백제 때는 굴지현, 신라 때는 기양으로 개칭하여 무주(지금의 광주)에 속하였다. 그 후 조선 성종 5년 갑오년에 마을사람인 강구연이 현령인 김순도를 능욕했다 하여 창평현을 폐지하고 광주에 속해 오다가 10년 후에 다신 창평현으로 복귀시켰다. 창평리 시동마을은 시장 쪽 마을을 일컫는다. 마을의 주요 문화 유적인 녹천정은 창평면 득인산 아래에 있으며 춘강 고정주의 별장인데 그가 한말의 어려운 시기인 순종1년(1907)에 벼슬을 사직하고 돌아와 밭갈이하고 소요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한다.

 

6)창평2리 사동(射洞)마을

창평은 마을 주산이 이구산인데 중국의 노나라 공자 마을과 흡사하여 예로부터 선비의 고을이며 한사촌이라 불려 왔다. 창평은 연무장인 사동마을과 시장 쪽 마을인 시동마을로 나뉜다. 사동마을은 금성나씨 위규가 나주군 문평면에서 이주해 와 처음엔 대덕면 장산리 노랑굴에서 살다가, 장산, 장전, 양산, 창평 등의 지형을 살피던 중 이 마을 산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 있고 지세가 너무 좋다고 생각해 4형제가 함께 이주하여 개척하였다. 마을 설화로 이조 말 고서면 고읍리에 박씨, 김씨,문씨, 한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 호열자 병이 돌아 김흥룡의 중시조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창등이라 불렀다. 그리고 지금의 당산나무 옆에 샘을 팠는데 이 샘은 극심한 가뭄이 들어 다른 샘들이 다 말라도 마르지 않아, 오 리(五 里) 이상의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였다 하여 오리샘이라 부른다.

 

7)해곡1리 얼그실마을

유문표의 아버지인 생원 유인흡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성원의 재종형인데 단종 때 사육신의 화를 당하여 세조 2년(1456)에 호남의 순창으로 내려와 살았다. 그 때 유문표의 나이 네 살때 였다. 그로부터 유문표는 순창에서 성장하였으며 성년이 된 뒤에 담양 고을에 사는 성주현씨 가에 장가들게 되었는데 얼마 후에는 처의 고향인 담양 창평의 얼그실로 이거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유문표는 창평 얼그실마을에 최초로 들어간 문화유씨의 입향조이며 그 때 지었다는 종갓집 와송당은 그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여 5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고색이 창연하여 지난날 전성하였을 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8)해곡2리 내동(內洞)마을

내동마을은 조선조 성종 1년(1470) 성주현씨가 얼그실에 거주하면서 풍수지리설에 얼그실마을은 삼현이 나고 내동은 세 사람의 정승이 난다는 설에 의하여 유곡에서 내동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현재 현씨는 한 가구도 없고 문화유씨, 함양박씨, 창녕조씨의 3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유진성 씨의 제보에 의하면 얼그실마을의 실제 삼현은 석헌 유옥, 수호당 전주판관, 대제학 정기홍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내동마을은 얼그실마을 안쪽에 있다 하여 내동이라 하고 조선조 중엽에 작성된 창평지에 따르면 창평현 북면 내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내동 뒤에 부춘산이 있고 앞에 고내가 있어 ‘春川(춘천)’이라고도 부른다.

 

9)해곡3리 부동(富洞)마을

부동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860여년 전 천안김씨에 의해 개척되고 한말에 문화유씨, 밀양박씨, 나주정씨들이 입주하였고, 내동 뒷산인 부춘산 옆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부동이라 불렀다. 또 한 설로는 중국의 엄자능이 부춘산에서 풍류를 즐기고 노는 모습과 흡사하므로 부동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담양부 가면의 부동인데 군현과 동리의 통폐합으로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로 편성되었다. 광주호의 축조로 수리에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앞에는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봉산정류장이 있어 광주~담양간 통행이 편리하다. 마을에서 보면 송강정이 마주 보이고 쑥다리 위의 동강정 터에 청풍바위가 있다.

 

10)해곡4리 성덕(聖德)마을

성덕마을은 1380년경 성주현씨에 의해 개척되었다. 마을 뒷산이 부춘산이라 ‘부춘’으로 불러 오다가 조선조 중엽에 성덕이라 바꿔 불렀다. 이곳에 송강서원이 세워져 서원리라 하였다가 성덕리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1914년에 군현의 통폐합에 의하여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로 행정개편되었다. 부춘산 동쪽에는 옥산이 있고 서쪽에는 창평천과 증암천이 합류되어 흐르고 있다. 과거에는 100여호의 큰 마을을 이루었고 동쪽에는 화전정, 서쪽에는 동강정이 있다. 옛날에는 쑥다리 시장이 개설 되었고 주막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마을 전체가 연인정씨 들 땅이었고 그 땅을 서민들이 빌려 살아온 마을이지만 지금은 각 농가가 개인 땅으로 사들였다.

 

담양인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기자코너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담양군 담양읍 미리산길 28 별해리A 상가동 3층  |  대표전화 : 061)383-2772  |  팩스 : 061)383-9945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다 174호(2002.10.25)
대표이사·발행인 : 김동섭  |  편집인 부사장 : 김광찬  |  편집국장 : 정용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용택
Copyright © 2013 담양인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