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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씨의 뿌리를 찾아서/②담양 전씨(潭陽 田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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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6  15: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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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전씨 시조묘역(담양읍 연화리 소재) 관리소장인 전계문 씨
   
   
▲ 담양전씨 시조대제

현재 한국의 성씨(姓氏)는 280여개가 있다. 이 중 인구가 1000명 이상인 본관(本貫)은 860여개로 전체인구의 97.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후반기부터 담양人신문에서는 본관을 담양으로 하는 담양 국씨(潭陽 鞠氏)를 시작으로 담양 전씨(潭陽 田氏)를 포함, 담양군에 상주하고 있는 군민에 비례하여 상주 인구 순서로 계보를 연재코자 한다. 전통적으로 효(孝)를 중시하며 살아 온 우리 모두가 이를 계기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편집자 주

담양 전씨(潭陽 田氏)는 담양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의종 때 좌복야(左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전득시(田得時)이다.

담양전씨(潭陽田氏)의 시조 전득시(田得時)는 고려 때 전라도 담양(潭陽)에서 대대로 오랫동안 살아온 향리의 아들이다. 그는 고려 중엽 때 전라도 담양에서 출생하고, 현량과(賢良科)로 천거되어 고려 의종 때 좌복야(左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등을 역임하고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담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전희경(田希慶)의 아들 전록생(田祿生)은 야은공파(野隱公派), 전귀생(田貴生)은 뇌은공파(牢隱公派), 전조생(田祖生)은 경은공파(耕隱公派)로 계파가 나뉘게 되었다.

전득시의 8세손인 전가식(田可植)을 시조로 하는 연안 전씨, 전조생의 7세손인 전균(田畇)을 시조로 하는 하음 전씨행주(고양)전씨], 전실(田實)을 시조로 하는 예산 전씨 ,남원, 우봉, 평택, 개성 등은 담양 전씨에서 분파되었다. 담양 전씨 대동보에는 함께 등재하고 있다.

 

담양전씨 역대 인물

· 전록생(田祿生, 1318년~1375년) : 고려의 문신. 자는 맹경(孟耕). 호는 야은(埜隱).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제주사록(濟州司錄)․전교교감(典校校勘)을 지냈다. 1350년(충정왕2) 정동향시(征東鄕試)에 합격했다. 1357년(공민왕6)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간의(諫議) 이색(李穡), 사간(司諫) 이보림(李寶林), 정추(鄭樞) 등과 함께 염철별감(鹽鐵別監)의 폐단을 극론(極論)했고, 이 해에 전라도 안렴사(安廉使)가 되었고, 11월에 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남순(南巡)하게 되자 시어사(侍御史)로 왕을 호종했다. 1362년 전리총랑(典理摠郞)이 되고, 벼슬을 여러 번 옮겨 좌상시(左常侍)가 되었다. 이듬해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원나라에 가서 황태자에게 예물(禮物)을 드리고 돌아와 밀직지학(密直指學)이 되고 나중에 계림윤(鷄林尹)에 제수되었다. 그후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었고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제수받았다. 1371년에는 이색이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그는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를 선발하였다. 1373년 다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고 강녕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禑王)의 사부가 되었으며, 다음해는 개성부사(開城府事)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었고, 추화찬화보리공신(推化贊化輔理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 전귀생(田貴生) : 자(字)는 중경(仲耕), 호(號)는 뇌은(뇌隱), 시호(諡號)는 문혜(文惠). 고려 때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여 삼사좌윤(三司左尹)·밀직제학(密直提學)을 역임했다. 고려가 기울어지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이성계(李成桂)가 누차 벼슬할 것을 권유하자 굳이 사퇴하고 결국 절해고도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의 몰년(歿年)은 아무도 모른다. 두문동 72현으로 두문동서원에 배향됨.

· 전조생(田祖生) : 자는 계경(季耕). 호는 경은(耕隱). 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희경(希慶)이며, 어머니는 웅신서씨(熊神徐氏)로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성윤(成允)의 딸이다. 1336년(충숙왕 복위 5) 문과에 급제하였고,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왕이 그를 불러 두 왕자를 한(漢)나라 곽광(霍光)과 제갈량(諸葛亮)같이 보필하여줄 것을 부탁하였다. 1346년(충목왕 복위 2) 이제현(李齊賢)·이곡(李穀) 등과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찬정(撰定)하였고, 우탁(禹倬)을 따라 정주(程朱)의 성리학을 강명(講明)하였다. 1349년(충정왕 1) 찬성첨의부사(贊成僉議府事)에 제수되었고, 1351년 다시 찬성첨의부사에 올랐을 때 왕이 강화에서 손위(遜位)하자, 이강(李岡)·박사신(朴思愼)·한수(韓修) 등과 호종(扈從)하였다가 그길로 운둔하여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계자시(誡子詩)」와 「경학문(警學文)」을 지어 후진을 계도하였다. 태암서원(泰巖書院)에 별향(別享)되었고, 구산서원(龜山書院)·소계서원(蘇溪書院) 개성 두문동서원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 전자수(田子壽) : 자는 백인(伯仁), 호는 회정(晦亭)이다. 찬성사(贊成事) 경은(耕隱) 전조생(田祖生)의 장손이며, 전순(田順)의 장남이다. 고려 말 품계가 종이품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올라 첨의평리(僉議評理) 겸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을 지냈다. 사간(司諫)으로 강원도안렴사(江原道按廉使)가 되어 평해(平海:지금의 울진 지역)를 순시하던 중 뛰어난 산수에 반하여 벼슬을 버리고 양진재(養眞齋)에 은거하며 만년을 보냈다. 의령 태암서원(泰巖書院)과 울진 경문사(景文祠)에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

대동보의 내용 중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문무과 방목에서 확인되는 인물

· 전가식(田可植) : 호는 성암(省菴). 증조부는 문혜공(文惠公) 전귀생(田貴生), 할아버지는 전한(田漢), 아버지는 전무(田畝)이다. 1399년(정종 1)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정헌대부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 전균(田畇, 1409년 ~ 1470년) : 어릴 때 내시부(內侍府) 소속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동첨내시부사(同僉內侍府事)가 되고, 1447년(세종 29) 동판내시부사(同判內侍府事)를 거쳐 1452년(문종 2) 동지내시부사(同知內侍府事)가 되었다. 이후 품계가 숭록1468년 대부에 이르렀다. 환관으로 공신이 되고 품계가 1품에 이른 것은 전균이 처음이다.

· 전복(田馥): 전빈(田嬪)의 아우로 호는 형봉(衡峰)이다. 인조 때에 진사로 임인에 문과에 올라 예 조좌랑(禮曹佐郞), 공조정랑(工曹正郞)의 내직에서 만경현령(萬頃縣令), 신천(信川)군수, 강 진현감, 보성(寶城)군수, 풍기(豊基)군수, 안동(安東)부사를 역임하였는데 문명이 높았고 치민(治民)을 잘 하여 도처에서 명망이 있었다.

· 전실(田實) : 자는 약허(若虛)이고, 호는 구재(龜齋). 고려조의 경은 전조생의 증손이다. 당세에 문장이 높았는데 그의 백숙의 두 아들도 문명이 높아 당세에 삼소라고 하였다. 벼슬은 참사내첨시상의주부(參事內瞻侍尙衣主簿), 사축사별제, 은률(殷栗), 금천(衿川), 고령 (高靈), 현감에 있었다. 유고와 일록(日錄)이 전하고 있다.

· 전좌명(田佐命, 1424년 ∼ 1521년) : 호는 성암(性庵). 중종 어머니 정현왕후 윤씨의 외할아버지, 성종(成宗)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내고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에 봉해진 윤호(尹壕)의 장인이며, 중종 때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지낸 김계우(金季愚)의 외조부이다.

· 전윤평(田允平, 1455년 ∼ 1505년) : 조선 전기 문신. 야은(野隱) 전녹생(田祿生)의 6세손이며, 부총관(副摠管) 전수명(田守明)의 아들.

· 전윤(田潤, 1554 ∼1637) : 자는 경윤(景潤), 호는 야곡, 경은 전조생의 후예이다. 그 아버지 녕 부 직장 응진은 명종 갑인 7월 26일에 출생하여 별시 무과에 합격하고 내금부 선감주부(內禁府 繕監主簿), 훈첨사복장(訓僉司僕裝), 동중추북청진영(同中樞北靑鎭營), 울진, 해남현감, 울산, 영광, 고부군수, 인동부사를 거쳐 선조조에는 호성원종공신일동(扈聖原從功臣一等)에 기록되었다.

· 전언룡(田彦龍, 1555년 ∼ 1622년) : 조선 중기 무신. 야은(野隱) 전녹생(田祿生)의 10세손이며, 전필규(田畢奎)의 아들이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宣祖)를 의주(義州)까지 호종(扈從)하며 공을 세워 호종원종공신(扈從原從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다. 1894년(고종 31)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하였다.

· 전영방(田永芳, 1568년 ∼ 1597년) : 조선 후기 무신. 야은(野隱) 전녹생(田祿生)의 10세손으로 부친은 전두규(田斗奎)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무예와 지략이 뛰어났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장에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으로 녹훈(錄勳)되어 철권(鐵券)이 내려졌고, 전라남도 옥구 옥산사(玉山祠)에 배향되었다.

· 전득우(田得雨, 1574년 ∼ 1638년) :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시재(時哉), 호는 송애(松崖). 아버지는 총관 윤(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평양 대동문장(大同門將)으로 있었다. 이후 벼슬이 좌승지에 이르렀다.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 전벽(田闢, 1586년 ∼ 1659년)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서(滋墅), 호는 서정(西亭). 대복(大福)의 아들로, 대록(大祿)에게 입양되었다. 사후 좌승지에 추증되고, 평양 송호사(松湖祠)에 제향되었다.

· 전내적(田乃績, 1599년 ∼ 1655년) : 조선 후기의 문신·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공복(公復), 호는 석포(石浦). 부사 전득시(田得時)의 후손이다. 효행으로 1652년(효종 3)에 서빙고별검(西氷庫別檢)으로 천거되었다. 그 뒤 종부시주부가 되었다. 사헌부지평에 증직되었다.

· 전세록(田世祿) : 조선 중기 의병.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선천부사 기협(奇協)의 별장으로 의병을 모집, 그의 용맹에 탄복한 명나라 도독 모문룡(毛文龍)의 보고로 판관이 되고, 통정(通政)의 품계에 올랐다.

· 전만춘(田萬春) : 부호군(副護軍), 훈련첨정(訓鍊僉正), 전라우수우후(全羅右水虞候) 첨사(僉使), 벽동군수(碧潼郡守)

· 전만최(田萬最) : 전시원의 생부 , 칠원현감(柒原縣監)

· 전시원(田始元) : 1702년 무과 급제하여 선전관, 홍주 영장(營將), 금천군수, 보성군수 등을 역임

· 전시혁(田始赫) : 동중추증판돈녕(同中樞贈判敦寧) 전만춘의 차자. 경종 임인에 무과에 등용, 금부도사, 장기현감 역임했으며 임술 5월에 46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는데 남당 한원진이 조만에서 「功各奉爲親」이라 한 것은 평일에 그의 효행을 말한 것이다.

· 전운상(田雲祥, 1694(숙종 20)∼1760(영조 36) : 조선 후기의 무신. 시원(始元)의 맏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24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 전광옥(田光玉, 1694년 ~ 1761년) : 조선 영조 때 문관. 初名(초명) 始大(시대). 자 德種(덕종). 호 澗松堂(간송당). 본관은 행주(幸州). 父 嘉善大夫 龍驤衛副護軍 一成(가선대부 용양위부호군 일성). 문집에 ‘澗松堂集(간송당집 3권)’이 있다.

· 전일상(田日祥, 1700 ~ 1753) : 자는 희중(羲中), 호는 석천(石泉)이다.전운상의 동생 1661년(숙종 1)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관직은 내직으로 선전관(宣傳官), 어영수어천총도감(御營守禦千摠都監), 우림위장(羽林衛將),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를 역임하였고, 외직으로 고용첨사, 삼척영장, 단천·구성·거창·경원·칠곡·무산·창원부사를 역임하였다.

· 전천상(田天祥, 1705 ~ 1751) : 통어사 전운상의 넷째 아우. 자는 경문(景文), 호는 죽암(竹菴).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평을 받은 그는 경사, 병법, 술수 등에 능하였을 뿐 아니라 글씨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무진년에는 벼슬이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나주영장(羅州營將)으로 있었는데, 천품이 인자하여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왕의 새서도 받았다.

· 전은상(田殷祥) : 전운상의 재종이며 전시대의 아들이다. 영조 병오년에 무과에 오른 후 흥해군수(興海郡守)가 되었는데 고을을 잘 다스린 공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오르고 군민들은 비를 세워 송덕하였다. 영조 계사년 10월에 70세로 세상을 떠났고, 묘는 서부면 궁리에 있다.

· 전한상(田漢祥) : 전은상의 제. 청안현감(淸安縣監)

· 전광집(田光集) : 전운상의 맏아들 영장(營將)

· 전광국(田光勳) : 전운상의 둘째아들 칠원 현감,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 전광훈(田光勳, 1722 ~ 1776) : 자는 양경(楊卿)이다. 1722년(경종 3)에 자천(紫泉) 전운상(田雲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창원부사 재임 시 흉년이 들자 사재를 털어 고을 사람들을 구휼하였으며, 이같은 선행이 조정에 알려져 왕이 새서(璽書)를 내려 표창하고 마필을 하사하였다. 저서로는 《도요록(島擾錄)》이 있다.

· 전광렴(田光濂) : 훈련주부(訓鍊主簿), 청송부사(靑松府使) 법성첨사(法聖僉使)

· 전광우(田光羽) : 전일상의 맏아들, 법성첨사(法聖僉使), 부총관(副護軍)

· 전광윤(田光尹) : 전천상의 맏아들, 낙안군수

· 전광수(田光洙) : 전은상의 맏아들, 도총경력(都摠經歷)

· 전의현(田義顯) : 전광훈의 계자 생부

· 전광국 : 통정대부(通政大夫) 선전관, 훈련주부(訓鍊主簿), 횡성현감(行橫城縣監), 양덕현감(陽德縣監), 함경도 삼수부사(三水府使), 평안도 위원군수(渭原郡守)

· 전문현(田文顯) : 선전관 정조 1년(1777), 창성부사 정조 4년(1780) 전문현(田文顯)을 황해도 수군 절도사로 삼았다. 병마절도사

· 전덕현(田德顯) : 전은상의 손자, 선전관(宣傳官), 병마우후 (虞候),

· 전익현(田翊顯) : 부수찬(副修撰), 부호군(副護軍), 곡산현감(谷山縣監), 오위장(五衛將), 황해병사(黃海水使)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 전세진(田世鎭) : 선전관(宣傳官), 남해현령(南海縣令)

· 전우성(田遇聖) : 어면만호(魚面萬戶), 경주영장(慶州營將), 훈련판관(訓鍊判官)

· 전우룡(田遇龍) : 밀양현감(陽德縣監)

 

대한민국

· 전윤철(田允喆) : 전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부총리, 19,20대 감사원장 (경은)

· 전수안(田秀安) : 전 대법원 대법관(경은)

· 전용원(田瑢源) : 제13·14·16대 국회의원(경은)

· 전병헌(田炳憲) : 제17·18·19대 국회의원(경은)

· 전여옥(田麗玉) : 제17·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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